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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참관기] 한국아메리카학회 주최 ‘세계화 시대의 미국’
[학술대회참관기] 한국아메리카학회 주최 ‘세계화 시대의 미국’
  • 박진임 평택대
  • 승인 2001.10.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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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7 11:40:39
박진임 / 평택대·영문학

지난 9월 21일부터 이틀동안 인천 송도호텔에서 한국아메리카학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을 다녀왔다. 몇가지 인상을 지적하고 싶다. 시기적으로 미국의 9·11테러사태 이후 열린 학술행사였고, 또 주제가 ‘세계화 시대의 미국’이었던 만큼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조 연설을 맡은 리챠드 펠스(Richard Pells) 교수는 세계문화는 미국의 매스미디어가 세계에 전파하는 것을 세계 시민이 수동적으로 흡수하는 단순구조에 바탕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각 지역의 특수성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늘 변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스테판 수미다(Stephen Sumida) 교수의 논지는 미국 문화의 기원에서 다양성을 찾는 것이었다. 그는 덕치주의로 대표되는 유교의 이상과 실천성이 직간접으로 토마스 제퍼슨의 정치사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주장했다.

우리가 미국문화를 설명할 때 모델로 드는 것으로 일찍이 용광로가 있었고, 야채 수프, 치킨 샐러드를 거쳐, 이제는 피자가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동일성과 다양성의 공존이다. 사실, 미국 문화는 늘 이 양립하기 힘든 두 이질적인 요소를 폭력적으로라도 묶어 두려는 시도 속에 자라 왔다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미국문화가 포용을 바탕으로 하는 탄력적인 것이며, 세계 문화 또한 펠스 교수의 지적처럼 유연하게 미국문화를 수용한다고 볼 수 있을까. 문화비평가 프레데릭 제임슨은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문화는 기존의 그 어떤 형태의 식민주의나 제국주의보다도 깊이 지역문화에 침투하고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제임슨의 지적대로 이러한 문화의 동일화가 갖는 위험은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를 꿈꾸는 법을 잊어버리게 한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토착문화는 한번 파괴되고 나면 회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다른 발표에서 제임슨이 우려한 바와 같은 문화 동일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민정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의 영어 배우기 열풍이나 과도한 영어의 사용은 세계화라는 이름의 서구 흉내내기임을 지적했다. 이재협 교수는 미국 법정에서는 단일한 법적 기준을 모든 문화적 소수 인종들에게도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점을 비판했다. 미국 사회가 문화다원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는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고 수정을 촉구한 것이다.

누가 다양성의 공존을 위협하는가

마지막 종합토론 시간에는 미국의 테러 사태를 화두로 한 토의가 이루어졌다. 먼저 킹콕 정(King-Kok Cheung)교수는 테러를 뒤따르는 미국내 아랍계 미국인에 대한 역테러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개인을 국가와 혼동하지 말고 국가를 개인과 혼동하지 말아야한다”고 했다. 미국이 진정으로 힘을 갖는 길은 ‘무한정의’ 또는 ‘불굴의 자유’라는 그럴듯한 이름 아래 보복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타자에 대한 관심과 이해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필자 또한 본 학회의 논문 발표자로서 미국 군인들이 월남전 당시에 저지른 5백명의 월남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발표를 했다. 1960년대의 이 사건은 세계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학살에 참여한 사람들 중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월남전이후 분열된 자국의 통합을 호소했다. 그의 논지는 “지구상의 어떤 강대국도 기억으로 인하여 두고 두고 분열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 현 부시 대통령이 ‘무한정의’를 언급할 때, ‘무한’의 내포는 ‘절대로 용서하거나 잊을 수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을 것인가? 무한정의, 무한 자유를 주장하기에 앞서 미국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없는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다시 한번, 이번 테러에서 미국인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다른 곳 아닌 여기에서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그동안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류의 비극으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져 보호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문학비평가 슬라보예 지젝이 표현한 바와 같이, 미국은 ‘역사를 떠난 휴일’을 오랫동안 누려온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제 미국은 역사에 동참하여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와 같은 인류의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세계화’와 ‘미국’, 이틀간의 토의로는 결코 충분할 수 없는 이 주제는 더 연구해야 할 과제를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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