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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경쟁시대 대학의 진로
● 무한경쟁시대 대학의 진로
  • 교수신문
  • 승인 2001.10.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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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7 11:32:26
김문원 / 공주대 원자핵물리학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고 급속한 변화가 예상되는 역사적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과 정보산업의 발전은 인류의 일상적인 생활방식까지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으며, 지식혁명과 인터넷 혁명이 세계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지식과 정보가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며, 교육이 혁명적으로 개혁되지 않으면 향후 전개될 지식기반사회의 대열에서 낙오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고 있다.

1980년대 이래 세계 각국은 이처럼 격렬한 변화 속에 도래할 위기를 감지하고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 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특히 대학교육의 질 관리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대학이 그야말로 폭발적인 양적 팽창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팽창의 그늘 속에 우리 대학들만이 가지고 있는 여러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백화점식으로 세분화된 전공영역 구분, 전공계열 또는 학과간의 폐쇄성, 취업에만 연연하는 직업주의적 응용학문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학사 운영 등은 시급히 개선돼야 할 과제이다. 양적 팽창의 이면에 가려진 열악한 대학교육 시설과 여건도 취약하기만 한 우리나라 대학의 재정 구조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고등교육 학령인구의 감소 추세는 대학교육의 질과 효율성을 논하는 것이 사치스러울 만큼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대학의 존립기반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교육개혁정책이 표류하는 이유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된 이후 세계 각국은 좋든 싫든 우루과이라운드가 표방하는 새로운 무역질서에 보조를 맞추어 시장을 개방하게 됐다. 교육부문에 있어서도 세계 각국은 교육 서비스는 물론 교육관련 산업의 문호를 개방하는 등 국제적 교육개방의 시대에 들어서게 됐으며, 세계의 교육시장을 상대로 생존과 발전을 위한 개혁과 전략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식과 산적한 문제들, 그리고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대학 안팎의 환경 변화는 대학으로 하여금 강도 높은 개혁과 구조조정의 메스를 들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1982년에는 대학교육협의회에서 대학평가의 개념을 도입하였으며, 1994년에는 사회적으로 대학교육의 질을 공인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는 평가인정제도로 전환되기도 하였다. 이후 학부제, 연봉제, 특성화 등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대학개혁의 전략과 제도적 개선책들이 주로 정부의 권장과 주도로 시도되어 오고 있으나,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지도 못한 채 좌충우돌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모 일간지 보도에 의하면, 서울대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91년 20.8명이었으나 2001년 9월 현재 21.9명으로 10년 동안의 개혁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한다. 교수 1인당 평균 강의시간도 주당 10.2시간으로 지난 10년간 오히려 늘어났다고 하니 세계적 연구중심 대학을 지향하는 서울대의 개혁정책 자체가 표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국가적으로 가장 우선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 제1의 대학이 이럴진대, 다른 대학들이 처하고 있는 상황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경쟁과 적자생존은 자연의 섭리이다. 자연계의 생명체든 사회 조직체든 어느 것이든지 자신의 생명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생존과 진화를 위한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자기 자신에 맞는 생존방식을 찾아나간다. 토인비는 역사와 문명도 도전과 응전의 기제에 따라 적자는 생존하고 부적자는 도태하거나 화석화된다고 하였다. 유기체든 사회조직이든 자신의 생존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을 때, 살아남을 수 있으며, 진화와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혁 당사자 스스로의 노력, 즉 자율성이다. 타율과 강제가 부과하는 짐이 무거울수록 도태되거나 화석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토인비는 그의 문명이론에서 밝히고 있다. 옷이 몸에 맞지 않으면, 옷을 줄일 수도 있고, 몸을 옷에 맞출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누가 옷을 줄이고 몸을 관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인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자율에서 시작되는 정글의 생명력

지난 10년 간 서울대의 개혁 실상을 보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소박한 교훈은 대학 외부의 강제가 내부의 근시안적인 접근을 야기하고 자율성을 해친다는 사실이다. 국가로부터의 지원이라는 열매가 달콤한 매력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각 대학이 처한 환경에 적절한 응전을 가로막는 족쇄가 됨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아프리카의 드넓은 초원과 밀림에 설정된 국립공원에서 살고 있는 동식물들의 삶에 공원 관리자가 개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찌 보면 방임하는 것 같지만, 그들이 처한 환경에 따라 스스로의 대응방식을 조절하며 생존해 나가도록 하고 있다. 인간이 개입할 경우 오히려 공원 내 동식물들의 자연스러운 질서와 평형을 깨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수, 학생, 교직원 등 대학 구성원들이 대학의 이념과 본질에 충실한 의식의 개혁과 책무성이 전제돼야 하겠지만, 무한경쟁시대를 맞이하여 각 대학이 나아갈 길은 각 대학의 생명의지와 자율적 판단에 의해 결정돼야 하며,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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