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적 성과는 대중과 공유해야”
“학문적 성과는 대중과 공유해야”
  • 강민규 기자
  • 승인 2007.05.06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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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인문·사회서 전문번역가 남경태씨


인문·사회과학서 전문 번역가 남경태씨(47세·사진). <고대 세계의 70가지 미스터리>, <문학과 예술의 문화사> 등 70여권의 책을 번역했고 <종횡무진 역사> 시리즈, <한 눈에 읽는 현대철학> 등 10여권의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

80학번인 그는 대학생 시절 <제국주의론>, <공산당 선언> 등 사회과학 고전들을 번역하며 번역 일에 눈을 떴다. 졸업 후에도 출판업계와 자연스럽게 인연이 닿아 백산서당에서 5년간 일했고, 90년대 초부터는 이념서적보다는 인문학 대중서 번역에 주력해오고 있다. 매년 평균 열 권에 달하는 책들을 번역하는 와중에도 직접 책을 쓰는 ‘강행군’을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

“번역을 하다 보니 외서에 대한 동경이 점점 사라져갔어요. 내용이 빈약하고 대중적이지도 못한 책들을 보면 차라리 제가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책을 쓰기 위해 따로 수업을 받거나 연구를 할 필요는 없었다. 번역 일이 곧 공부였기 때문이다. “번역을 하려면 저자보다도 더 꼼꼼히 읽어야 한다”는 남씨는 한권 한권 번역할 때마다 많은 책을 읽었고, 또 그 과정에서 관심 분야를 넓혀 나갔다. 실제로 그가 직접 쓴 책만 봐도 그 분야는 서양철학사, 동양사, 한국사 등으로 다양하다.

남씨의 집필활동 영역은 학계의 사각지대에 가깝다. 1994년 그가 집필한 <상식 밖의 한국사>는 원래 역사학자들의 기고집으로 기획됐는데 쓰려고 하는 교수들이 없어 그가 직접 쓰게 됐다고 한다. 원로·중견급 교수들은 ‘대중서를 쓰는 것은 노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인식이 강해 쓰기를 거부했고 젊은 교수들은 자료의 실증성을 중시하는 학계 분위기 때문에 실증자료가 없는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를 꺼려했다는 것이다. 남씨는 “신채호도 조선상고사를 쓸 때 실증자료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밖에 없었지만 이두문 등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해 쓸 수 있었다”며 실증성의 덫에 갇히지 않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남씨의 책들은 대부분 쉽게 풀어써져있다. 학문의 대중화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중간지대에서 학계의 연구를 대중에 소개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외국에는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는 ‘writer’들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아무리 학문적 성과가 뛰어나도 그것이 대중들과 공유되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것이다.

남씨의 이 같은 견해는 곧 교수 사회에 대한 쓴소리로 이어진다.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성과를 알아줄 만한 집단 밖에서는 학문의 ‘외화’ 작업을 좀처럼 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대중과의 소통작업은커녕 같은 학과 교수끼리라도 연구 분야가 다르면 교류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남씨는 비판한다.

“경제학과 교수인 한 선배가 그럽디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대학생 필독서라고들 하지만 사실 경제사 전공서적이라 다른 전공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데 다른 교수들이 내용도 잘 모르면서 읽은 척을 하더라고요. 잘 모르면 서로 물어보고 알려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교수 사회의 폐쇄성에 대한 비판은 번역 작업에 있어서도 똑같이 성립한다. 번역가가 갖춰야 할 능력들 중 우리말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남씨는 “교수들의 나쁜 번역은 대부분 우리말능력이 부족한 데 따른 것”이라며 “학생이나 대중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면 쉽고 훌륭한 우리말을 구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생계 걱정 없는 ‘번역공무원’이라는 것이 생겨 여유롭게 양질의 번역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농담을 던지는 남씨. 그는 “번역은 택시운전과 비슷해서 나이가 들어도 번역료가 올라가거나 일이 달라지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계속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번역하고 집필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민규 기자 scv21@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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