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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성사회의 반성과 과제’ 강연요지
‘한국 지성사회의 반성과 과제’ 강연요지
  • 정운찬 서울대 교수
  • 승인 2007.05.0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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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서울대 교수
[전문]'한국 지성사회의 반성과 과제'

정운찬 서울대 교수(경제학부)는 지난 4월 19일 열린 교수신문 창간 15주년 기념식에서 ‘한국 지성사회의 반성과 과제’라는 주제로 기념특강을 했다. 이날 정 교수는 지성인이 갖춰야 할 자세와 역할을 강조했다.  정 교수의 기념 특강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1. 참다운 지성인이란?
참다운 지성인이란 빛을 찾아내는 사람입니다. 동시에 그 빛을 통해 어둠을 밝히는 사람이 참다운 지성인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캄캄한 어둠에 싸여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갈림길에 마주쳤을 때, 우리나라 지성인들은 얼마나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빛을 찾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으며 찾아낸 빛을 통해 어둠을 벗겨내려는 사명감을 얼마나 갖고 있을까요? 지금의 지성인들이 충분히 그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평가를 얻고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전문가는 넘쳐나지만 존경받는 지성인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전문가들이 反知性的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도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도 원칙을 잃어버린 채,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이,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나라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어려운 도전이 닥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학자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성인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지식인은 시대가 요구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짠 맛을 잃은 소금이요, 가리워진 등불이 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지식인들은 뼈를 깎는 자기반성을 해야 합니다.

2. 지성인과 선비정신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옛날의 선비정신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학자나 전문가들은 옛날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만 강건했던 정신과 투철한 철학에서는 옛날에 비해 훨씬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孔子家語의 儒行解에서부터 몇 가지만 간추려 봄으로써, 우리 시대 지성인이 가져야 할 자세와 좌표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볼까 합니다.
먼저, 지성인은 自立하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실력을 닦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학문에 전념하는 사람입니다. 지성인이라면 무엇보다 자기분야의 연구에 철저해야 합니다. 밤늦도록 불을 밝히면서 자기 분야에 최고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학자든, 법률가든, 언론인이든, 예술가든, 영화인이든, 기업인이든, 자기 분야에서 만큼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지성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첫 번째의 사명입니다. 이를 통해서만이 지성인은 우리사회의 어둠을 밝혀 줄 새 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지성인은 남의 힘에 기대려는 구차한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보배로운 資質에 忠心과 信義를 품고 힘써 행하면서도, 자기의 가치가 저절로 남의 눈에 띌 수 있도록 해야지, 자격도 갖추지 않았으면서 자신을 과대선전 한다든지 남의 문전에 기웃거리며 스스로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자립한다는 것은 이런 정도의 자기 節制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세째, 지성인은 인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지식을 많이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성인은 충직한 마음과 신의를 자기 몸을 지키는 갑옷처럼 생각하고, 어짊과 덕망을 가지고 행동하며 처신하는 사람입니다.
金과 玉이 아니라 忠信을 보물로 삼으며, 仁義를 토지 얻는 것처럼 귀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말이 아니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돈 때문에 자살하고 돈 때문에 자식과 부모를 버리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우리 국민들이 모두 다시 한 번 되새겨봐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지성인이라면 財物 자체를 추구하기보다는 좀 더 높은 가치관을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넷째, 지성인은 옳은 것을 지키는 데 의지가 굳세고 강인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이 겁을 주어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병기로 위협하여도 겁내지 않습니다. 죽는 경우를 당하여도 자기가 지키려는 바를 바꾸지 않고 친하게 지낼 수는 있어도 겁을 내게 할 수는 없으며, 죽일 수는 있어도 욕보일 수는 없이 굳세고 강인해야 합니다. 지성인의 굳세고 강인함이란 그저 적당히 고집을 피우다 마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종교적 신념에 못지않은 차원 높은 경지인 것입니다.
여러 가지 기준을 다 충족시키는 완벽한 지성인이 되기 어렵더라도 우리는 늘 지성인됨에 부끄러움이 없는지 자신을 성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3. 법조인, 언론인, 학자의 역할과 책임
지성인의 영향력을 확대시키기 위해서 특히 법조인과 언론인, 그리고 학자의 역할과 책임이 막중합니다.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빌헬름 뢰프케는 나라가 발전하려면 법관, 학자 그리고 언론인이 훌륭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세 가지 부류의 전문가 집단이야말로 우리사회를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어야 할 최후의 보루인 것입니다. 다른 모두가 자신의 이익만을 극대화한다고 해도 법조인, 학자, 그리고 언론인만큼은, 자기 이익의 극대화보다 좀 더 높은 차원의 원리에 의해 움직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자기역할을 해낸다면 그 사회는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먼저, 법관은 개인과 개인사이의 분쟁에 대한 판결을 내리고 그에 따르는 징벌을 결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법조인은 사회 속에 살면서 반드시 지켜야할 규범이 무엇인지를 시민들에게 가르쳐주는 사람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판단해 주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법조인이 바로 서지 못하면 옳고 그름이 없어지고 사회는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법조인 스스로 자기 실력을 닦으며, 따뜻한 인격을 갖춘, 외압에 휘둘리지 않는 강한 정신의 법조인 상을 확립해야 합니다. 특히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 시대를 맞아 개인과 개인사이의 분쟁의 모습이 매우 다양해지고 사회적 가치관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 법조인들도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과 폭넓은 사회과학적인 식견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음으로, 학자의 역할과 책임이 누구보다 막중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학자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여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내고 창조적인 지식을 창출해 내야 합니다. 지난 수 십 년간 우리 학자들은 해외로부터 선진 과학과 기술을 전수받아 사회 전 분야에 확산시키는 기능을 비교적 잘 수행하였고 이를 토대로 우리경제도 고도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방을 통한 양적 팽창’이 아니라 ‘창조를 통한 질적 성장’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창조적인 지식을 창출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논문과 책을 통해 우리 사회와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자기가 발견한 빛을 어둠을 밝히는 데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아직 우리 대학사회가 관료적인 사고에 젖어 가급적 변화를 피하고 뒤로 미루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장 지성적이어야 할 대학사회가, 누구보다도 먼저 변화를 만들어내고 사회전체에 확산시켜야 할 대학사회가, 어떤 경우는 오히려 일반 조직보다도 변화를 싫어하며, 심지어 가끔씩 비지성적인 일들까지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개탄스럽습니다.
끝으로 언론의 역할과 책임도 막중합니다.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은 대중에게 여론을 전파하는 매체로서의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의 기능 가운데 사실을 사실대로 전달하는 기능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흥미위주의 보도에 열중한다면 그러한 보도는 誤報일 수밖에 없고 그런 일이 쌓일 경우 언론 스스로 자기 손발을 묶어 버리는 일이 되고 맙니다.
물론 언론도 하나의 기업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언론은 자신의 이익에만 치중해서는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듣기 괴로운 비판을 듣더라도 어디까지나 언론 스스로는 비판론자들의 의혹과 비판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지를 스스로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사회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에도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정치가 혼탁하고 아무리 사회에 어둠이 드리워져 있다고 해도 법조인과 학자, 언론, 그리고 우리사회의 지식인들이 지성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이 하고 바로 서 있을 때 그러한 혼탁과 어두움은 오래 갈 수 없으며 우리 사회도 제 위치를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사회와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가장 일차적 사회적 자본입니다. 또한, 사회 각 영역에서 다양한 지성인들이 제 역할을 수행할 때 우리 정치도 이전투구의 政爭에서 벗어나고 우리나라의 앞날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目前의 표계산에만 몰두하는 구태에서 벗어나 국민들을 위해 나라 걱정을 대신하는 지성적 태도가 정치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정치가 국민들이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생업에 몰두하도록 만들 수 있기 위해서도 지성인의 더 큰 역할과 헌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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