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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사회적응 교육 위한 ‘베이스 캠프’
인성·사회적응 교육 위한 ‘베이스 캠프’
  • 강민규 기자
  • 승인 2007.05.06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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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기숙형 대학’ 안산 한양대 창의인재교육원

최근 대학 기숙사에서 학생들의 기초소양 및 인성 교육, 외국어 교육을 실시하는 ‘기숙형 대학’ 프로그램이 확산되는 추세다. 지난해 처음으로 본격적인 기숙형 대학을 운영하기 시작한 한양대 안산캠퍼스를 찾아가서 구체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교육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양대 안산캠퍼스의 명물, 붉은색 18층 쌍둥이 건물. 방만 7백여 개, 수용인원은 1천4백72명. 오후 수업이 시작되는 1시가 다가오자 밝은 얼굴의 학생들이 무리지어 건물을 나선다. 건물 양쪽으로는 2백여 대의 자전거들이 줄지어 서있다. 도대체 무슨 건물일까?

다름 아닌 신입생 기숙사 ‘창의인재교육원’이다. 자전거는 강의를 듣기 위해 먼 거리를 가야 하는 학생들의 것이다. 그런데 신입생만 1천4백여 명씩이나 한 동에 입주하는 기숙사가 또 있을까?

창의인재교육원은 단순한 기숙사가 아니다. 신입생들을 입주시켜 기초소양과 영어, 그리고 ‘인성과 사회생활방법’을 교육하는 곳이다. 이른바 ‘기숙형 대학’인 셈이다. 신입생 전원이 의무적으로 1학기와 2학기에 각각 절반씩 입주해야 하니 수용인원도 많을 수밖에 없다.

한양대 안산캠퍼스는 2006년 1학기부터 이 같은 신입생 의무 기숙사 입사제도를 시행해오고 있다. 주입식 위주의 고등학교 교육을 막 마친 신입생들이 대학에 와서 겪는 혼란을 막고 진로설계와 사회생활 적응을 돕는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따라 신입생들은 방과 후에도 창의인재교육원에서 여러 가지 ‘과외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 핵심에는 ‘멘토(mentor)’ 제도가 있다. 학과가 서로 다른 신입생 20명이 한 그룹을 이루고 이들을 두 사람의 멘토가 지도한다. 멘토 중 한 명은 대학원생, 나머지 한 명은 3,4학년 학부생이다. 대학원생 멘토는 주로 학습 지도를, 학부생 멘토는 생활 지도를 담당한다.

건물의 방 배치도 철저히 이러한 체계에 맞춰져 있다. 한 층당 복도 양측으로 11개씩의 2인1실 방이 있는데 이 11개 중 10개의 방은 한 그룹에 속한 신입생 20명이 사용하고, 나머지 한 방은 이들을 지도하는 멘토들의 방이다. 22명의 멘토-멘티(mentee)들은 방과 후 활동을 함께할 뿐 아니라 일상생활까지 함께 한다.

방과 후 활동은 ‘FinD-SELF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말 그대로 자아를 발견하고 개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으며 크게 인성 및 기본소양 교육과 영어교육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인성 및 기본소양 교육의 세부 프로그램으로는 △미래 설계, 자기정체성 찾기, 시간관리법 등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는 ‘마이 라이프 로드맵’ △동료들과 함께 영상물 촬영, 공연 등을 준비하는 ‘팀 프로젝트’ △한양대 선배 및 교수 초청 특강 등이 있다. 1주일에 두 번 1시간씩 진행되는 영어교육 프로그램은 회화, 독해, 작문 강의로 이뤄져있다. 창의인재교육원 박준원 교육지원팀장은 “인성 및 기본소양 교육의 경우 시간관리법, 공부방법 등 현행 대학 정규수업의 영역에 포함되기 어려운 분야를 다루고 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처음에 ‘기숙사 강제 입사’ 방침에 적잖이 당황했고 처음 보는 학생들, 멘토들과 팀을 이뤄 매일 함께 생활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자 서로 금새 친해졌고 배우는 것도 많아졌다. 지난해 2학기에 창의인재교육원에서 생활했던 오세찬씨(경영학과 06)는 “처음에 팀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에는 귀찮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서로 다른 전공의 학생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 있어 무척 즐거웠다”며 “친구들에게 나를 다 보여주지 못한 것이 오히려 아쉬울 정도”라고 말했다. 팀 프로젝트로 벨리댄스 공연을 했던 이현지씨(인문대 06)는 “댄스 강사인 멘토 언니에게 춤도 많이 배웠지만 시간활용이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매우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많은 것을 배우기는 ‘가르치는’ 멘토들도 마찬가지다. 낯선 신입생 20명을 상대로 매일 강의를 하고 고민을 들어줘야 하기 때문에 이들도 교육학, 심리학 석사 이상 학위를 소지한 창의인재교육원 연구원들로부터 매주 교육을 받는다. 신입생들과 교류하는 ‘현장’에서 얻는 것은 더욱 크다. 지난해 두 학기 동안 멘토로 활동했던 강재은씨(전자컴퓨터공학과 석사과정)는 “그동안 내가 묻어두고 있었던 고민에 대해 학생들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새삼 나를 반성하게 됐고, 학생들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반면 한계도 있다. 방과 후의 교육인데도 인성 및 기초소양 교육과 영어 교육 영역에서 각각 1학점씩 부여하고 있어 학생의 부담이 커지기도 하고, 때로는 강의가 형식적으로 흐르기도 한다. 2006년 1학기에 멘토로 활동했던 송영미씨(생화학과 석사과정)는 “‘마이 라이프 로드맵’ 프로그램이 성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활동으로 전락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또 교육기간인 한 학기 동안 신입생들이 동아리 활동 등 다른 대학 문화를 접할 기회가 크게 줄어든다는 단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의인재교육원은 우리나라에서 기숙형 대학의 모범이 되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미 연세대, 서강대 등 여러 대학들이 이곳을 벤치마킹해 기숙형 대학을 운영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의인재교육원은 조만간 입주 기간을 한 학기에서 1년으로 늘릴 계획도 세우고 있는데 이는 신입생과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대체로 높기 때문이다. 박 팀장은 “지난해에는 강제입사를 두고 항의 전화가 많이 왔지만 올해는 거의 없다”며 “학부모들도 학교 측이 신입생의 생활을 어느 정도 통제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민규 기자 scv21@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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