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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이명원·김윤식 사태로 본 학계 현실
[쟁점] 이명원·김윤식 사태로 본 학계 현실
  • 구모룡 (한국해양대·동아시아학과)
  • 승인 2000.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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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弟 카르텔 철폐…근대적 사제 관계 수립계기로
문학평론가 이명원(서울시립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중퇴)씨가 김윤식 서울대 교수의 표절사실을 밝힌 논문으로 학계가 파문에 휩싸이고 있다. 이 사태는 학계를 지배하는 서울대 패권주의에 대한논란으로 더욱 확장되고 있다. 이에 관해 문학평론가 구모룡 교수의 견해를 들어 본다.

화제가 되고 있는 ‘이명원-김윤식 사태’는 현금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문학계에 긍정적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 본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제도와 관행에 내재한 문제의 축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사태의 진전은 우리 학계와 사회가 피할 수 없이 거쳐가야 할 토론의 과정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를 앞세우면서 먼저 이번 사태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들고자 한다.

첫째, 표절 시비. 이명원씨의 논문이 목표한 바가 김윤식 교수의 표절에 있는 것이 아니고 후기 김윤식의 일본 경도 현상(현해탄 컴플렉스)을 밝히는 데 있다는 점에서 표절 시비는 이씨의 의도와 무관하게 침소봉대된 현상임에 틀림이 없다. 아울러 이러한 이씨의 지적에 대하여 김교수가 ‘실수’를 인정함으로써 이씨의 논문은 실수의 무의식적 기제를 파헤쳤다는 점에서도 성공작으로 인정된 셈이므로 논문과 관련한 문제는 일단락되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다 알다시피 국문학자로서 김윤식 교수의 영향을 입지 않은 이 없으며 그를 알고 싶은 욕망에 한번쯤 시달리지 않은 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씨의 학문적 패기는 김윤식 교수에 대한 존경에 연원한다고 할 수도 있다. 김교수가 그의 패기와 용기를 인정한 것도 이씨가 품은 순수한 의도를 그가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씨에서 발단된 표절 시비는 일로 확산되고 있다. 당연한 것이 표절이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 아님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씨의 논문은 김윤식 학문의 체계나 그 글쓰기 전반에 대한 연구의 시발에 불과한데, 과장된 표절시비가 이씨나 김교수의 생각과 무관하게 이들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쪽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둘째, 사제 카르텔과 서울대 패권주의 시비. 따지고 보면 이명원씨도 넓은 의미에서 김윤식교수의 제자에 속한다. 그것은 이씨의 선생이 김교수의 제자이기 때문인데 이는 전근대의 학맥 관계에 비출 때 그렇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전근대적 사제관계에 따른다면 이씨의 논문은 사문난적에 몰려 축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휘황한 근대의 태양 아래서 봉건적 사제관계의 퇴행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씨의 김윤식 비판을 들어 이씨의 서울대 출신 선생들이 제도적, 상징적 권력을 동원하여 이씨를 억압한 것이다. 물론 나는 여기서 그들이 중재자의 역할을 맡지 않았을 것이라고 억측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결과는 그들이 이씨가 서울시립대 박사과정 자퇴라는 최악의 상황을 선택하도록 하였고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식을 죽였다는 오명을 얻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씨의 선생들은 똑똑한 제자를 포기한 것일까? 여기에 서울대주의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잠복해 있는데, 이것이 어떠한 합리적 비판도 용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제 관계의 형성도 불가능하게 한 것이다. 알다시피 이씨의 선생들도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지성으로 알려진 비평가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알려진 지성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씨와 더불어 김윤식이라는 큰 산을 넘는 힘겨운 작업을 계속할 수는 없었던 것인가. 이씨를 제자로 생각했다면 그들은 이씨를 억압하고 축출하기보다 그가 학문적으로 성숙하는 과정을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명원-김윤식 사태는 한국 학계와 사회의 성격논쟁으로 비화하고 있는데 이는 이번 사태가 많은 과장을 포함하고 있지만 앞서 말한 대로 생산적인 귀결로 가는 과정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증거가 된다. 확실히 이번 사태는 신화나 금기는 해체되어야 할 학문의 적이며 합리적 비판과 토론이 학문을 발전시킬 유일한 장(場)의 작동 원리임을 확인하게 하였다. 어떤 점에서 이명원씨에 의해 제기된 김윤식 비판은 더 많은 이명원들의 보다 심도 있는 연구에 의해 종합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한 존경과 권위는 어떠한 비판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나 억지로 봉합된 귄위는 그 어떤 불합리한 권력 못지 않게 쉽게, 빨리 훼손되고 해체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김윤식 연구는 이 땅의 후속세대 국문학도들이 안고 있는 핵심 과제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란스런 출발에도 불구하고 이명원씨의 작업은 인정되어야 하고 그의 학문적 미래도 보장되어야 한다. 아울러 이번 사태와 더불어 봉건적 사제관계를 철폐하고 근대적 사제관계를 형성하는 학문 운동의 계기도 만들어져야 한다. 사제 카르텔은 비단 서울대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사회에서 어느 대학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로 하여금 늘 자신을 밟고 넘어설 것을 주문하는 위대한 스승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나는 김윤식교수가 그런 스승 가운데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가 곤경에 처했다. 그 원인의 처음은 그 자신에서 나왔고 그 다음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명원씨는 하나의 단서에 불과하다. 그런데 김윤식을 연구한 이명원씨도 곤경에 처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곤경에 처해야 할 이유를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씨에게 학문적 장래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전근대적 관계에 속박되어 있으면서 근대나 탈근대를 외치는 사기꾼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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