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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전쟁-경제침체’논리의 함정
‘테러-전쟁-경제침체’논리의 함정
  • 김대환 인하대
  • 승인 2001.10.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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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김대환
인하대·경제학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지난 9월 11일 참사 직후 대(對)테러 전쟁을 선포한 미국이 주도하는 이 전쟁은 그 전개양태와 기간은 물론 결과에 대해서도 정확한 예측을 불허하는 그야말로 ‘21세기 전쟁’이다. 단순히 전쟁 때문만이 아니라 그 불확실성 때문에 세계경제의 전반적 침체를 우려하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 동안 바깥 사정에는 아랑곳없이 집안 주도권 싸움에 골몰하던 여야 ‘영수’를 한자리에 앉게 했다. 국방장관과 재경장관의 브리핑이 아니더라도 전쟁과 더불어 경제에 대한 걱정을 같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 공감대의 전개양상 역시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전쟁의 불확실성보다는 나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미 정부는 시나리오를 작성하여 유동적인 상황에 대응해 나갈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와 같은 나라 안팎의 사태전개를 관통하고 있는 논리는 ‘테러-전쟁-경제침체’이다. 즉, 폭력테러에 대해서는 천 배 백 배의 전쟁보복을 해야 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경제침체는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테러-전쟁’은 이미 현실로 전개되고 있으며 ‘전쟁-경제침체’는 불안심리 속에 자리잡아 가고 있다. 정부의 시나리오도 이 논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나리오에 앞서 정부는 테러에 대한 미국의 보복전쟁을 앞장서 적극 지지하였고 전비분담과 비전투병력의 파견을 약속함으로써 ‘테러-전쟁’의 논리에 이미 동참해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엄밀히 생각할 때, ‘테러-전쟁’은 오늘의 현실일지언정 필연의 논리는 결코 아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테러는 범죄이지 전쟁이 아니다.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을 해야지 전쟁을 벌일 일이 아니다. ‘범죄와의 전쟁’은 어디까지나 修辭이지 실제로는 語法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에 대해 실제 전쟁으로 대응한다면 처벌보다는 싸움의 의미를 부각시키게 된다. 이렇듯 우월적 지위의 훼손 문제를 제쳐두더라도,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 ‘잘해봐야 본전’을 크게 넘어서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미 전쟁이 벌어진 마당에서는 매우 선별적이고 제한적인 범위와 기간으로 국한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작성된 정부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경제성이 높은 전쟁회피 시나리오가 빠진 것은 유감이지만, 이제부터라도 확전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 안팎의 평화애호인들의 목소리에 보다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보다 필요한 것은 미국이고 미국 정부의 태도가 핵심적으로 중요하다는 데는 이의가 없지만, 노벨평화상을 받은 대통령이 이끌고 있는 정부로서는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테러와 전쟁의 관계가 항등식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경제침체의 관계도 반드시 일의적인 것은 아니다. 특히 이번 전쟁을 놓고 볼 때는, ‘테러-전쟁’과는 비교가 안되게 훨씬 복잡한 방정식이 ‘전쟁-경제’의 관계이다. 전쟁 자체는 건설이 아니라 파괴이고 그것도 단기간내의 대량파괴이기 때문에 인적·물적 파괴로 인한 전쟁지역의 경제적 손실은 불을 보듯 뻔하지만, 세계경제의 미국주도를 감안할 때 경제침체 일변도로만 예측·진단하는 것에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물론 여러 경우의 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쟁이 그 반대의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세계 평화애호인의 노력과 미국의 이익이 적어도 장기전이나 확전 이전의 지점에서 만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예측을 전제로 할 때, 세계경제의 타격은 그리 크지 않는 반면에 오히려 경기회복의 실마리가 제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전쟁의 자본 감가 및 정리 효과를 몇 배나 뛰어넘는 수준으로까지 사태가 진전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물론 최대의 문제는 불확실성이고, 따라서 국면변화에 따른 시나리오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전쟁-경제침체’의 항등식적 사고에 의해 한국경제의 구조적 방정식을 풀려는 노력이 약화되는 점만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전쟁이라는 커다란 상황논리를 내세워 경기부양 일변도로만 대응할 때 구조개혁의 노력은 소홀히 되거나 심하면 방기될 수가 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완의 조짐을 보이는 재벌개혁은 그 한 예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명분이 있더라도 전쟁은 이성을 둔화시키는 상황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에 편승하여 한국경제의 구조개혁 노력이 후퇴하는 것은 곤란하다. ‘죽음의 상인’이 돼서는 안되겠지만 ‘테러-전쟁’의 상황을 구조개혁의 박차로 연결시키는 의지와 더불어, 세계경제가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전쟁을 끝내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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