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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性’과 ‘여자의 性’은 왜 다를까
‘남자의 性’과 ‘여자의 性’은 왜 다를까
  • 교수신문
  • 승인 2007.04.2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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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섹슈얼리티의 진화> 도널드 시먼스 지음 | 김성한 옮김 | 한길사 | 2007

인간의 성 특성과 관련해 가장 논쟁의 여지가 적은 관찰사례들로부터 논의를 시작해보기로 하자. 외설잡지와 영상물의 주요 구매자들은 여성보다는 남성이다. 이는 성매매에서도 마찬가지다. 성을 파는 쪽은 여성이고 구매하는 쪽은 남성이다. 강간 또한 거의 대부분 남성에 의해서 저질러진다. 만약 이러한 현상이 특정한 사회나 문화에 국한되어 나타나고 있다면 논의는 사회문화적 특성을 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문화적 특성과 무관하게 그러한 현상이 모든 인간들에게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것이라면 남성과 여성의 성 특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남과 여’ 성은 정서상의 차이

진화심리학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는 시먼스는 <섹슈얼리티의 진화>에서 사회문화적 차이와 무관하게 남성과 여성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상이한 성 정서와 행동을 보이고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그는 남녀의 이러한 성 차이를 진화론의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하는데 논리적 간결성과 명료성의 관점에서 상당부분 성공한 듯하다. 통계, 심층 인터뷰, 동물행동학과 민속지학의 연구결과 등 다양한 관찰 자료를 종합해 볼 때 남성과 여성은 매우 주목할 만한 성 정서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먼저, 남성은 가능하면 다수의 성 파트너와 관계를 맺고자 하는 반면에 여성은 선택적으로 관계를 갖고자 한다. 다음으로 남성은 시각에 노출된 여성의 육체에 강하게 반응하는 반면에 여성은 복합적인 감각작용을 통해 반응하는 경향이 강하다. 나아가 남성은 육체적으로 젊고 건강한 여성을 선호하지만 여성에게서 남성이 젊고 건강하다는 사실이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대신 그들은 남성의 사회적 지위에 주목한다.

시먼스의 이러한 입론은 두 가지 점에서 다분히 논쟁적이다. 첫째, 이 입론은 페미니즘 진영과의 대결을 불가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페미니스트들은 성 정서와 행동의 차원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여성 또한 남성과 마찬가지의 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 불평등에 기반하는 통제기제들에 의해 억압되고 있을 뿐이다. 궁극적으로 여성의 성적 해방을 추구하는 이러한 논증에 맞서 시먼스는 단호하게 주장한다. “여성이 성적으로 해방되길 기다리는 ‘억압된 남성’이라는 개념은 포기되어야 한다.”(316쪽)

둘째, 인간의 행동을 사회와 문화의 통제와 규제 메커니즘으로 설명하는 사회학적 시각에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뒤르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러한 시각에 맞서 시먼스는 사회 또는 문화 결정론이 갖는 모호성을 공격한다. 그는 개별자로서의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고 구속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사회란 과연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 논의는 왜 시먼스가 ‘초개인적 개념’을 거부하고 개별적 행위 논리에 의지해 인간의 성 정서와 행동을 설명하려는가를 이해하게 한다.

모든 생명체, ‘이기적 경쟁자’

저자는 진화생물학에 입각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을 ‘이기적인 경쟁자’로 파악한다. 여기서 그는 진화론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들이 자연언어와의 관계 속에서 가지게 되는 혼동과 긴장을 언급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듯이 시먼스는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이기적’이란 용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의 ‘이기적’이란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것임을 강조한다. 예컨대, 한 사람이 이기적이란 사실은 그 사람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사회) 속에서 그리고 그 사회가 지향하는 특정한 목적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다.

자연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진화는 어떠한 구체적인 목표도 존재하지 않으며 개별적 생명체를 넘어서는 집단이나 조직상의 필요성과도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진화는 오직 한 생명체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환경에 적응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사회생물학에서 ‘이기적 특성’과 ‘이타성’이라는 용어 사용 방식은 이들 용어들의 일상적인 사용 방식과 다르다.”(118쪽)

시먼스의 논의는 진화생물학을 기초지우는 주요 개념들과 논쟁의 핵심들을 환기하는 작업에서 출발하고 있다. 예컨대, ‘자연환경’, ‘자유의지와 결정론’, ‘정신의 진화’, ‘이기성’(제2장) 등이다.

이후 저자는 인류의 성 특성과 관련해 논쟁의 주요한 주제인 여성의 오르가슴과, 발정기의 상실을 논의한다. 그가 이 두 가지 문제에 접근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인간의 성 특성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적응의 필요 속에서 ‘진화’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는 저자가 이후에 논의하게 될 남성과 여성의 성 특성에 관한 진화론적 설명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기초적 논의이다.

시먼스는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다음과 같은 논증을 인용하고 있다. “사회학적·생물학적 관찰은 인간에게서 아내를 다수 확보하려는 이러한 경향이 자연스럽고 보편적이라는 것을 시사하며, 환경과 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제약만이 그러한 성향들을 어느 정도 억압할 수 있다.”(266쪽)

시먼스는 이러한 논의를 밀고 올라가 “선(先)문자 종족들 사이에서는 여성을 놓고 벌어지는 남성들의 경쟁이 삶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전도된 것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269쪽)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논증은 결국 남성들이 갖는 번식을 위한 경쟁(제5장)의 논리를 함축하고 있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생명과 종을 계속 유지하고자 한다. 이는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이며 그러한 목적을 위한 궁극적 행위는 번식이다.

번식을 위한 전략의 차이

그런데 번식과 관련해 남성과 여성은 각각 상이한 전략을 따르고 있다. 전략의 상이성은 번식을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이 감수해야 할 비용의 차이에 기인한다. 시먼스의 논리를 따라가 보자. 남성은 번식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거의 없고 심각한 위험부담으로부터도 떨어져 있다. 반면 여성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그 이후의 양육 투자 등에서 커다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러한 차이는 궁극적으로 다음과 같은 논리로 이어진다. “남성은 번식이 가능한 어떠한 연령층의 여성과 성관계를 맺어도 번식의 측면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조건이 동등한 상황에서, 성 파트너의 수가 많을수록 남성이 얻게 되는 번식이익은 커진다.”(353쪽)

이와는 달리 “여성이 다수의 파트너와 성관계를 욕구할 경우 번식의 측면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오히려 매우 큰 손실을 입을 것이다.”(354쪽) 시먼스가 언급하고 있는 ‘쿨리지 효과’, 즉 수컷이 여럿의 암컷과 교접하고자 하는 현상은 번식전략과 관련된 이러한 차이가 인간에게만 국한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분명 포유류에게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356쪽) 번식을 위한 전략의 상이성은 남성이 여러 파트너와 성관계를 맺으려 하는 반면에 여성은 선택적으로 관계를 맺으려 하는 경우만이 아니라 외설잡지와 영상물에 대한 남성의 강한 자극, 부부교환, 강간, 성매매 현상 등 역시 효과적으로 설명해낸다고 시먼스는 주장한다.

남성과 여성의 성 특성을 진화론에 기초해 설명하는 시먼스의 논리는 분명 ‘간결’하고 ‘명료’하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이론적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논리적 간결성과 명료성을 구축하기 위해 저자가 끌어들이고 있는 자료들은 일관되지 못한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으며 어떤 경우 과도한 상상력이 개입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도 인정하고 있듯이 인간의 성 특성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일은 주제의 성격상 불가피하게 사회과학과 윤리학과의 긴장을 촉발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는 엄격한 진화론적 논리에 입각해 사회와 규범의 변수를 최소화하면서 논의를 이끌어갔지만, 그 두 변수가 갖는 현실적 무게를 인지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하상복 / 목포대·정치외교학
필자는 파리9대에서 ‘한국의 정치변동과 문제의 동학(1979-1992)’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르디외&기든스(세계화의 두 얼굴)>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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