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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관점에서의 재해석 등 국제교류 중시
한중일 관점에서의 재해석 등 국제교류 중시
  • 교수신문
  • 승인 2007.04.2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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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기획시리즈(7) 실학 개념에 대한 논쟁

진재교 교수는 이전의 실학 연구가 민족주의와 근대주의로 점철돼 비판받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동아시아가 중국의 거대한 행보와 함께 생태환경과 인간성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21세기 실학이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재조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편집자주

‘실학’, 민족에서 근대로

實學은 20세기 한국학이 창안한, 한국학이 시민권을 부여한 학술 개념이다. 일본이나 중국은 자국의 학술사·사상사를 인식할 때 ‘실학’의 개념을 쓰지 않았다. 실학은 ‘虛學’에 대립하는 일반명사가 아니라, 17세기 중엽에서 시작하여 19세기 중후반 개항을 하한선으로 하는 새로운 학문경향이다.

이를 ‘동아시아’로 확대하면, 실학은 그 내부에 이미 ‘17세기(중국의 경우 16세기 후반)∼19세기’라는 역사적 개념을 담고 있다. 따라서 실학은 17세기 동아시아 질서가 재편되던 전환기로부터 19세기 서구에 문호를 개방하기 직전 시기까지 개혁과 개방을 강구한 사상으로 볼 수 있다.

그간 보여 준 개념의 혼선은 ‘실학’의 용어 자체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고려 말 이래 사대부들이 불교의 공허함을 배척하고 詞章學의 浮華함을 비판하면서 내세운 것도 실학이었다. 이때의 실학은 물론 성리학이다. 하지만 근대계몽기 지식인과 조선학 운동의 주도자들은 성리학을 ‘허학화’로 인식한 반면, 17세기 이후의 낙후된 현실 문제를 개혁하기 위해 고뇌하여 ‘경세치용’에 뜻을 두고 ‘이용후생’을 강구하는 방향으로 학문적 심혈을 기울인 비판적 지식인들의 학문 경향을 실학으로 정립시켰다. 이들이 실학의 개념에 성리학을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는 성리학을 ‘허학’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근대계몽기의 황성신문은 유형원에서 정약용으로 이어진 계보와 박지원을 하나로 묶어 ‘經濟政治學’의 개념으로, 장지연은 이들의 학문을 ‘經濟考據學’으로 체계화한 바 있다. 이후 실학이 근대적 학술로 주목을 받아 지금의 실학에 다가선 것은 1930년대 ‘조선학 운동’에서다. 홍명희, 안재홍, 정인보 등 민족주의 진영 인사들은 조선학의 원류로 실학을 재발견하여 문화운동을 추구하였던 바, 이는 조선의 후진적 특수성을 내세운 식민주의 사학에 대한 대응이었다.

실학은 1960∼1970년대를 통해 탈식민성을 극복하기 위한 내재적 발전론의 시각으로 재조명받았다. 내재적 발전론은 식민사관의 극복을 위한 민족주의, 서구 편향의 근대화론의 비판의식 등을 내부에 작동시킴으로써 실학은 민족의 주요한 정신적 자산으로, 학술의 중요한 성취로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동안 실학 인식과 실학 연구의 배후에는 언제나 ‘민족주의’와 그 쌍생아로서 ‘근대기획’과 ‘근대주의’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북한의 경우도 이러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북한의 ‘실학’ 연구 역시 근대를 이상적 방향으로 정한 점이나, 애국과 자주를 내세워 강한 민족주의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남한의 실학과 동질성을 보여준다. 최근 20세기가 보여준 실학의 성과는 21세기에 들어서 민족주의와 근대주의에 대한 반성적 사유와 탈근대의 논리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21세기 실학, 안과 밖을 넘어 동아시아로

그간 새로운 학풍으로서의 실학에 대한 집요한 관심은 ‘유학(성리학)=망국론’의 암묵적 전제 위에 지속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더러 실학과 성리학의 관계를 단선적으로 파악하여 실학을 성리학의 대립 항으로 놓은 다음 성리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거나, 또는 실학을 성리학의 단선적 연장으로 인식하는 등 속류적 실학연구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실학은 성리학에 대한 부정적·비판적 성격을 발전시킨 것이지만, 성리학의 축적 위에서 개화하였다. 이 점에서 양자를 역동적으로 재포섭해야 실학과 성리학의 연속과 단절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진 교수에 따르면 이 책은 그 당시 세계의 대세와 조료를 전망했다.
이 모두 ‘안’에 대한 지나친 강조와 민족과 근대적 편향이 보여준 폐해다. 하지만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세계의 대세와 조류를 전망한 것이나 정약용, 이강회, 최한기 등의 인식이 海洋에까지 이른 것을 감안하면 실학은 ‘밖’에 대해서도 시선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간 이의 대안으로 실학의 근대성 비판과 탈근대성으로의 연구방향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방향의 극에는 ‘탈실학’이 자리 잡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실학이 전망했던 시대가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상치되는 것만도 아니다. 서구 주도의 근대(역사적 근대)가 근대의 유일한 코스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실학이 경장과 개혁을 통해 기획한 방향의 결과는 곧 서구 주도의 코스와 다른 ‘근대’일 터, 이러한 의미에서 실학의 ‘근대성’은 인정할 수도 있다. 실학의 ‘근대성’은 일반적 근대성과 서로 부합하는 면도 있지만, 서로 부합하지 않는 점도 적지 않다. 이제 실학을 ‘탈근대’의 시각으로 보거나, 실학을 해체하기보다, 근대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실학이 비전으로 제시한 것이 다른 점, 통하지 않는 면을 연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방향으로 넓혀야 기존의 성과도 되살아날 뿐만 아니라 실학 연구도 보다 풍부해 질 것이다. 20세기에 발견한 소중한 정신 자산인 ‘실학’을 용도폐기하거나 해체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간 ‘안’의 문제에 시각을 맞추고 연구에 치중했다면, 21세기 실학 연구는 ‘밖’을 내다보며, 일국적 시각을 넘어 이 시대의 문제로 환원시킬 필요가 있다. 여기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동아시아’다. ‘동아시아 실학’ 연구가 정기적으로 개최되어 중국과 일본의 학술사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실학은 동아시아 공통의 학술용어로 정착하는 듯하다.

나아가 자료의 지속적 발굴과 함께 실학의 일국적 시각을 넘어 동아시아 삼국을 하나의 학문 단위로 묶어 ‘동아시아 실학’을 통해 새로운 해석 및 이론의 가능성까지 모색하고 있다. 이는 그간 ‘민족주의’와 ‘내재적 발전론’에서 중시되지 않았던 방향이다. 최근의 실학은 일국적 시각을 넘어 국제교류를 중시하거나, 한·중·일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실학을 재해석하고, 실학의 새로운 길로 해양을 설정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초에 학술의 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논의를 통해, 이제 실학은 과거시제가 아닌 현재시제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왜 다시 실학인가

19세기 후반 전후로 서구주도의 근대 세계질서와 대면한 개항 이후 실학의 성과를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일군의 지식인에 의해 재인식되었듯이 21세기 실학은 전 지구화 시대에 대응하여 방대한 실학의 학적 축적 속에서 문명의 틀을 전환시키는 혜안을 찾아 활용할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최한기가 해운으로 천하의 물산이 통하게 할 경우 큰 財利를 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나, 정약용과 이강회 등이 해양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 學知의 방향을 열어 둔 것은 그간 발견하지 못한 실학의 새로운 길이다. 이는 실학이 西勢東漸이라는 세계사적 조류에 대한 사상적 대응의 산물임을 의미한다.

동아시아 삼국의 근대는 서양의 충격과 관련이 있지만, ‘서양발’에 대한 충격과 함께 그것에 대응한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실학의 새로운 길, 즉 해양을 향해 학지를 연 것은 서세에 대응하고 전 지구적 개방에 대응하는 적극적 방향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실학을 다시 읽고 해석해야 일국사적 시각을 넘어 그간 주목하지 않았던 실학의 세계사적 의미도 제대로 해명할 수 있지 않겠는가.

더욱이 지금 동아시아는 중국의 거대한 행보와 함께 생태환경과 인간성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발전논리에 대한 회의와 함께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과 실천 또한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FTA를 축으로 전 지구적 개방과 소통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가속화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세계사의 조류에 실학의 방대한 학적 축적이 그 대응의 단서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21세기에 ‘왜 다시 실학인가?’에 대한 이유의 답인 셈이다.

진재교 / 성균관대·한문교육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이계 홍양호 한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조후기 한시의 사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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