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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평가법 '리셋' 하고 싶은 이유
성적평가법 '리셋' 하고 싶은 이유
  • 남진희 상명대 교수
  • 승인 2007.04.23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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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단에서 교양과목을 가르친 지 8년째 접어들었다.

매 해마다 모든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1학기엔 움직임의 교육, 2학기엔 무용감상법을 가르치고 있다.가급적이면 다양한 학과의, 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골고루 청강하여 무용에 대한 상식과 교양을 갖추었으면 하고 기대한다.

새 학기 첫 주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강의는 시작된다. 강의계획서를 나누어 줄 때, 강의목표와 강의계획에 따른 수업방법 등을 설명하는 나의 눈빛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초롱초롱한 학생들의 시선은 나를 설레게 하면서도 한 편으로 부담을 갖게 한다. 왜냐하면 무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여태 무용을 제대로 접해보지 못했던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무용을 가르친다는 것은, 무용의 예술적 이해와 무용의 사회적 역할 그리고 생활 속에서 무용의 의미를 인식하는 첫 걸음을 내딛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그에 따른 사명감으로 사뭇 어깨가 무거울 때가 많다.

그러나 근래에는 교양과목 강의에 부담을 갖는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 말 그대로 교양과목으로서 무용강의는 학생들이 그 동안 쉽게 접하지 못했던 무용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가섰기 때문이다.

내 고객들이 수업을 즐기고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최고의 강의를 선사하고 싶다. 생활 속 곳곳에 녹아있는 무용을 발견하고, 잠재된 무용의 흥미를 일깨워 무용을 즐기고 참여하는 인구가 확대되는, 순수무용의 대중화를 위한 작은 발판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이다. 그러나 흥미롭고 즐거운 한 학기가 끝나고 성적 평가를 할 때면 마음이 무겁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 아무리 철저한 변별력으로 평가를 해도 상대평가제로 희비가 엇갈리는 학생은 항상 생긴다. 성실하게 열심히 수강한 학생들에게 그에 맞는 성적을 주고 싶은데 아쉽게도 차점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학기 중에 학과의 사정에 따라 학술세미나나 학과행사 등으로 공결신청서를 제출하는 학과가 많다. 이 때 동점자의 경우 출석률이 더 좋은 학생에게 1점이라도 더 나은 성적을 줄 수밖에 없다.

개강 초에 ‘최선을 다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무용을 전혀 접한 적이 없더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公約이 뜻하지 않게 空約이 되어버리는 것은 학생으로서도 나로서도 괴로운 일이다. 성적을 평가한 후 몇 일간 그 학생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실제로 전공과목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앞선 예와 같이 학과 전체의 행사에 성실히 참여했다는 이유로 노력한 만큼의 성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은, 학기말 채점 때문에 고민하는 교수들이면 모두 공감하는 사항이다.

현재의 상대평가법 자체가 갖는 모순과 불합리성으로 교육현장은 더 큰 모순과 각박함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학급에서 함께 공부하는 친구의 노트를 찢어버렸다는 학생의 이야기는 먼 이웃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상대평가제로 성적에 매여 사는 바로 이 시대 우리 학생들의 고통이다.

스스로 실력을 쌓도록 이끌어주고, 자유롭게 사고하도록 창의력을 넓혀주는 넓은 교육의 장으로서 대학이 제 기능을 하려면, 친구나 상대보다 나 자신을 이기게 하는 교육을 하려면, 실력과 노력이 상대적으로 평가받는 냉정한 사회와는 다른 자신만의 절대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하려면 이에 합당한 교육체계가 지원되었으면 한다.

나는 내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이 성적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절대평가제로 되돌리고 싶다. 그렇게 해서 소수의 학생일지라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성적 때문에 좌절을 느끼거나 성적관리를 위해 재수강을 해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또한 나의 무용 강의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여 무용을 외면하거나 도외시하는 학생이 없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비록 뜻하지 않는 성적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더라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므로- 무용을 이해하고 즐기며 인생을 사랑하고 젊음을 만끽하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되길.

남진희
상명대·무용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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