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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제약이 자유와 부자유 판가름
외부 제약이 자유와 부자유 판가름
  • 교수신문
  • 승인 2007.04.1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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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자율 (4) 자유사상 변천사-<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교수신문은 자유사상이 어떠한 역사적 맥락을 갖고 흘러왔는지 고전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근대사상의 핵심 을 조명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은 ‘대학과 자율’이라는 문제를 좀더 본질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시도다.  전문 필자들로부터 자유사상 변천사에 굵직한 발자욱을 남긴 저서들을 들여다봤다. / 편집자주 

오늘날 하나의 정치적 가치를 표상하는 단어로서 ‘자유’는 개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의 일종이라든지, 또는 정치사회를 조직하는 기본적인 원리의 한 요소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자유라는 말 자체는 동양의 전통에서도 간혹 사용된 적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의 정치적 이념으로서는 서양에서 유래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양말에서 자유에 해당하는 단어로는 fri-, 또는 fre-의 형태를 띠는 게르만어 계열과 liber-의 형태를 띠는 라틴어 계열이 있는데, 두 형태 모두 어원적으로는 ‘아끼고 사랑하는 한 식구’라는 의미와 관련되고, 그로부터 ‘노예가 아닌 정상적인 가족 구성원’을 가리키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한편 개인의 생활에서 권력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을 인정하는 의미, 즉 소극적 자유에 해당하는 정치적 이념은 기원전 24세기 수메르 지방의 도시국가 라가쉬에서 최초로 나타난다고 한다. 개인에게 재산을 팔도록 강요할 수 없게 하고, 범죄자를 처벌할 때에는 먼저 혐의 내용을 명시해야 한다는 절차를 개혁 군주 우루카지나가 규정한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에도 개인의 권리라든지 법 앞에서 평등 같은 관념이 어느 정도 나타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관념들이 형체를 갖춘 고전 시대의 대표적인 사례는 로마의 공화정과 로마법이다.

로마 공화정은 다양한 정치세력이 불확실성 속에서 서로 경쟁하는 와중에서 공적 가치가 생성된다는 발상을 기초로 한 혼합정체였다. 집정관과 원로원과 민회가 각각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이념을 대표하면서 서로 견제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균형점에서 공공의 혼이 표상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자유 시민들은 특별한 억압을 받지 않고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가 있었고, 그러한 로마 시민의 권리를 기초로 로마법의 체계가 이루어졌다. 로마 공화정에서 유래하는 시민적 자유에 관한 관념은 13세기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나 16세기 영국 개혁가들의 정치의식에서도 준거로 작용하였다.

소극적 자유의 이념을 핵심 원리로 삼아 정치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인 자유주의 체제는 영국 혁명의 결과로 현실 속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영국 혁명에 사후적 정당화의 논리를 제공한 로크는 경제와 도덕은 철저하게 사적인 영역으로 보면서, 정치권력은 오로지 폭력이나 사기 또는 절도와 같은 범죄를 색출하고 처리하기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루소는 인간의 도덕적 완성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에서 자유를 이해함으로써, “강제 당함으로써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적극적 자유의 개념에 단초를 열어주었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라는 구분은 토머스 힐 그린이 국가에게 개인의 소극적 권리를 보호하는 데에 그치지 말고 도덕을 증진하는 적극적 역할을 주문한 데서 비롯한다. 루소나 그린처럼 자유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국가나 교회나 집단이나 당이 개인의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강제하면서 그로써 그 사람이 더욱 자유로워진다고 말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난다.

이사야 벌린은 그런 식의 어법은 ‘현란한 손재주’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론적으로는 명백한 언어의 남용이고 실천적으로는 끔찍한 재앙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성장이나 안전과 같은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서 자유를 유보하는 일이 정당화되는 일은 언제든 있을 수 있다. 때로는 미래의 자유를 위해서 현재의 자유를 유보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설령 목적이 미래의 자유라 할지라도 현재 개인의 자유는 제약을 받는 것이지, 자유를 유보하는 바로 그 행위로 말미암아 자유가 증진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언어의 왜곡은 소극적 자유와 관련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나 스토아주의 식으로 자유를 정의한다면 외부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상관없이 나는 내면적인 자유를 구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벌린은 자유라는 말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개념의 변별력을 희석시킬 뿐이라고 경고하였다. 자기 맘대로 행동하는 데에 어떤 외부적인 제약이 가해지느냐 여부를 가지고 자유와 부자유를 판가름하는 것이 자유의 개념으로서 더욱 일상적이고 더욱 자연스럽다는 주장이다. 일상적인 자유의 개념을 능가하는 어떤 의미를 추구하려는 와중에 자유와 강제를 뒤섞어도 좋은 듯한 함의를 남겨두어서는 원래 추구하고자 했던 의미를 구현하기는커녕 일상적인 자유의 의미에마저 손상을 입히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박동천 / 전북대·정치외교학

필자는 일리노이대에서 소크라테스를 비트겐슈타인의 시각으로 해석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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