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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개념정치
진보의 개념정치
  • 김학이 /동아대·독일사
  • 승인 2007.04.09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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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정치의 계절이다. 교수들이 움직이고 있다.
신기하다. 한국은 여전히 대통령이 되는 데 교수의 지원이 필요한 나라인 모양이다.

나 같은 시골의 무명소졸도 교수인 바에야 틀림없으니, 나로서도 그런 모양새가 뿌듯하고 자랑차다. 다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내 개인의 신상과는 전혀 무관하기에, 그 모든 흐름은 내 곁을 그저 무심하게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교수들 사이의 소위 ‘진보논쟁’만은 나의 주의를 끌었다. 어린 시절부터 존경했던 노대가들의 기고도 있었고, 대학원 시절 내가 끙끙거리면서 읽었던 책의 번역자도 참여하고 있으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역시 유명한 학자는 그냥 유명한 게 아니다. 나는 읽는 글마다 설득되었다.

‘중도통합’, ‘민주세력과 운동세력의 분리’, ‘대중의 정당정치화’ 등 각자의 입장이 분명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줏대 없는 나에게는 모두가 옳았다. 묘한 구석도 있었다. 남북문제를 제기한 어느 노교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논쟁에 사용되는 단어와 개념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것들이 이리저리 결합되면서 한국의 지식인 정치문화 전체가 쪼개지고 보태지고 있었다. 제기된 물음이 시원치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진보가 무엇이냐’, ‘그 이념을 어떻게 언어화할 것이냐’, ‘그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 등은 인문학자라면 누구든 비켜갈 수 없는 질문이다. 다만 교수들의 논쟁에서 눈을 떼어 인터넷 서핑을 한 시간만 해보면 참담한 현실과 만나게 된다. 수많은 네티즌들의 눈에 교수란 그저 ‘먹물’일 뿐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지식의 넓이와 깊이에서 자신들과 별 차이도 없으면서 교수라는 딱지 덕분에 폼생폼사할 뿐인 이 사회의 거품들.
 그렇다고 해서 ‘이념’에서 한 발 물러나 ‘민생’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교언영색이다.

이념과 민생의 분리가 도대체 가능하다는 말인가. 나는 다만 진보와 좌파라는 개념을 둘러싼 ‘개념정치’가 현실적 적실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느낄 뿐이다. 개념사를 전공하는 동료 역사가로부터 내가 배운 바는, 정치적 개념은 근본적으로 다의적이고 모호하기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그 자체로 운동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개념은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기대를 현재로 모을 수 있고 따라서 대중을 동원한다. 또한 그 때문에 정치적 개념은 사회적인 것만이 아니라 역사적이다. 그러므로 좌파든 진보든 그 내용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시공간에 의하여 규정되고 변화한다.

물론 그 개념들 속에는 불변의 사회적인 내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중의 역사적 현실 외에 또 무엇이겠는가. 대중, 심지어 과거에 같은 책을 함께 읽고 공명했으며 이제는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외면하는 개념이 어느 짝에 쓰일까. 공명을 얻지 못하는 단어는 더 이상 정치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생경한 이론이거나 그 생경함을 덮기 위해 일상어로 포장한 구호에 불과하다. 이 글을 쓰는 순간 한미 FTA가 합의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텔레비전을 켜니 정치가들과 교수들이 토론을 한다. 배울 것이 많은 유익한 토론이다. 그런데 교수라는 딱지가 붙은 어느 인사가 배기량에 따른 자동차 세제의 개편을 설명하다가 곧장 ‘국민의 건강권’을 걱정한다.

걱정의 내용에는 공감하지만 환경,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일자리, 노동조합의 전망 등이 동일선상에서 검토되지 않는 한 ‘국민의 건강권’이라는 단어는 그 즉시 정치적 개념에서 구호로 전락한다. 하기야 나도 마찬가지다. 연구도 구호, 수업도 구호, 정치 참여도 구호, 술자리 안주도 구호. 그야말로 인생이 구호다. 그리고 그 언어들 사이로 둔탁한 권력의지가 삐죽 몸을 내민다.

 존경하는 선배 교수 하나가 어느 날 내 어깨를 치며 깨우쳐주었다. “이봐, 영국의 토니 블레어와 한국의 김대중씨를 비교해보면 누가 좌파야? 음.. 김대중씨야.” 내게는 그 순간 프랑스의 역사가 모리스 아귈롱이 1871년 파리코뮌의 진압 이후 수립된 프랑스 제3공화정의 정치 지형을 ‘우파, (중도파가 아니라) 좌파, 극좌파’로 나누면서 ‘기회주의 공화파’ 정치가들, 군대를 동원하면서까지 노동을 탄압하는 동시에 노동자들의 결사권을 보장했던 그 집단을 기막히게도 좌파로 자리매김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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