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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서평]『한국경제, 재생의 길은 있는가』(이병천·조원희 편, 당대 刊)
[쟁점서평]『한국경제, 재생의 길은 있는가』(이병천·조원희 편, 당대 刊)
  • 유종일 / KDI 국제정책대학원
  • 승인 2001.09.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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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25 15:57:19
유종일 / KDI 국제정책대학원·경제학

한국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세계경제침체와 맞물려 국내경기의 침체가 심화되는 가운데 미국의 심장부에 대한 대규모 테러공격의 여파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IMF위기를 겪으면서 그 한 원인이 되었던 금융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은 별반 개선되지 못한 채 대외개방 및 대외의존성의 심화, 고용안정성 및 소득분배의 악화, 그리고 재정건전성 악화라는 새로운 문제들이 대두되었다는 점이다.

한국경제의 살길에 관해 주류 담론은 철저한 구조조정과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질서 확립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IMF가 요구하고 DJ정부가 내세운 것일 뿐 아니라 학계와 언론계를 포함한 여론주도층 사이에 광범하게 공유되고 있는 인식이다. 물론 모두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구조조정의 칼날 아래 직접 놓여있는 재계와 노동계에서는 많은 저항이 있어왔다. 올 들어 경제는 어려워지고 DJ정부의 정치적 입지가 약화되면서 이러한 저항은 힘을 얻고 있다. 규제완화만이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재계의 주장에 정부가 거의 굴복하는 양상이 전개되고, 노동계는 드디어 DJ정부의 경제개혁을 ‘신자유주의’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전면적 거부와 저항을 표명했다. 경제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다. 그렇다고 DJ식 개혁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정황에서 일군의 진보적인 학자들이 경제개혁의 대안을 연구하여 내놓은 ‘한국경제, 재생의 길은 있는가’는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아니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진보적 대안 모색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 온 이병천 교수와 조원희 교수가 제도경제연구회와 참여사회연구소에서 진행된 공동연구의 성과물들을 묶어낸 것이다. 과거의 진보적 담론이 흔히 높은 추상수준에서 전개되었던 것과는 달리 금융개혁, 재벌개혁 등 구체적 사안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진지한 대안모색을 담고 있다.

그러나 편저자들도 밝히고 있듯이 다양한 필자들간에 통일된 시각과 접근방법이 공유되지 못함으로써 하나의 일관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금융기관 소유지분 제한이나 재벌체재의 해체 여부에 관해 상반된 견해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제도연계적이고 혁신주도적인 사회적 시장경제”(59쪽)에 대한 비전과 “국내외 독점자본에 대한 민중적·사회적 통제와 그를 위한 국가의 근본적 변혁”(556쪽)에 대한 비전이 상충하고, “노동운동진영이 재벌개혁을 자신의 과제로 설정하고 시민운동진영과의 연대”(233쪽)를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과 시민운동이 “정부의 신자유주의에 편승한 경제개혁운동”(515쪽)을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현재 우리 나라 진보진영의 스펙트럼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입장들이 그나마 공유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이고,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여러 글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경제개혁 프로그램 전체를 신자유주의로 규정짓고 반대하는 것은 현실인식으로서도 운동전략으로서도 동의하기 어렵다.

DJ정부의 경제개혁을 신자유주의로의 이행프로그램으로 보는 것은 무리다. 본서에서 주장된 내용만 추려봐도 “현재 정부의 경제력 장악력은 … 공공연하고 확고”(73쪽), “노동시간단축의 실현은 … 정부의 정치적 결단이 핵심”(320쪽), “DJ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은 … 신자유주의적 노선이 아니라 … 국가복지노선”(399쪽), “DJ정권은 이전 정권들과는 달리 기업별(노조)조직 체제에 대해 상당히 유연한 접근을 보이고 … 노동정치가 ‘노사정위원회’라는 초기업단위 정치기구를 중심으로 진행”(478~9쪽) 등 신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요소들이 많다. 이 외에도 재벌개혁이나 공정거래 및 금융감독 강화를 규제완화를 신봉하는 노선인 신자유주의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두고 신자유주의를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결국 모든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DJ정부의 개혁의 난맥상이나 정책적 오류들을 모두 신자유주의 때문에 비롯된 문제로 치부하는 것도 견강부회다.

진보적 대안의 궁극적 실체가 무엇이 되든 경제 각분야에서 책임성·투명성·공정성을 확립하고 이러한 토대 위에서 경쟁력 향상과 사회통합을 조화롭게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기초이다. 이를 위한 개혁에 진보진영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도 중요하거니와, 그럼으로써 급격한 자본시장 개방과 외환자유화, 인력조정 중심의 구조조정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더욱 실효성 있게 반대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현실성 있고 정교한 연구가 뒤따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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