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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과학사연구 40년과 한국근대과학 1백년
한국의 과학사연구 40년과 한국근대과학 1백년
  • 김재환 기자
  • 승인 2000.11.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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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연구, 정부주도서 기업주도로 변화
한국과학사학회 창립 40주년 학술대회

지난 3일부터 이틀간 한국과학사학회 창립 40주년을 맞아 ‘한국의 과학사 연구 40년과 한국 그대과학 1백년’을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는 한국의 근대과학과 과학사 연구를 회고하는 주목할 만한 시도였다. 이날 대회에서는 한국의 근·현대 과학 1백년, 한국의 과학기기, 과학과 윤리 및 종교, 과학기술과 사회, 양자역학 1백년, 생명과학과 사회, 조선후기 과학과 근대화, 의학·질병·사회, 동아시아 근대화와 과학기술 등 모두 8개 분과로 나뉘어 중견·소장 학자들의 논문이 발표됐다.
김근배 교수(전북대 과학학)가 발표한 ‘20세기 한국 과학기술의 발전과정’은 19세기 후반에서 최근까지의 과학연구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김 교수는 과학연구의 시기를 세시기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다.
첫 번째 시기인 1890년대는 과학자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등장했던 시기로 꼽힌다. 식민지 시대에는 일제의 지배에 맞서 ‘한국인을 위한 과학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식민지라는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사회·정치적 문제에 관여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과학계에 진출하면서 과학과 정치간의 간극이 벌어졌고, 과학행정마저도 과학자들의 개입없이 관료주도로 이루어지게 되는 전통(?)이 수립된 시기이기도 했다. 1920년대 중반 미국에서 최초로 이학박사학위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외국박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해방이후 ‘독립국가를 위한 과학건설운동’의 형태로 과학자들의 대사회적 운동이 활발히 벌어졌지만, 분단이후 불어닥친 매카시즘으로 끝을 맺고 급기야는 전쟁으로 이공계 대학졸업자의 35%가 넘는 과학자들이 월북하게 됐다고 한다.

근대과학, 수용에서 연구전통의 수립까지
50년대 중반이후, 초기에는 대규모 산업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아 이학연구에 집중됐지만, 박정희 정권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과학의 산업적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됐다. 김 교수에 의하면, 한국의 과학연구는 1959년에 세워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시작됐다. 그후, 베트남 전쟁 참전의 대가로 미국지원을 통해 세워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등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설립되면서 ‘정부주도의 과학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1967년 설립된 과학기술처는 이같은 움직임을 주도했다. 정부주도의 과학연구에서 기업주도의 연구로 바뀐 것은 1982년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된 특정연구개발사업 시행 이후. 정부가 기초연구 진흥의 원년으로 선포한 1989년 이래로 대학에서의 과학연구가 비로소 개화하게 됐다.
김 교수는 기업의 지원이 토대가 된 포항공대의 성공, 한국과학재단(KOSEF), 한국학술진흥재단(KRF)등의 설립을 통한 과학분야의 제도적 지원, GNP대비 연구개발비를 5%수준으로 끌어올리고 핵심기술의 수준을 제고하기 위한 ‘G7-프로젝트’, 노벨상 수상자 배출목적으로 세워진 고등과학원(KIAS)의 설립 등이 현재 우리나라의 과학연구 현황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김근배 교수가 과학연구의 과정과 역사를 성찰하고 있다면, 황상익 교수(서울대 의학사)는 ‘근대의학’의 역사를 되묻고 있다. 황 교수는 근대의학의 근대성은 “의학의 지식체계 및 방법이 지니는 과학성, 독점적 전문직으로서의 의사 지위, 의료제도와 의학교육제도의 개혁, 의학과 보건의료의 공공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고, 의학연구에 있어서는 해부학의 등장이 의학의 근대를 연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정리했다. 황 교수는 그러나, “근대의학은 과학적 속성을 얻은 대신 전통의학의 全人的인 속성을 잃게 됐으며, 의사는 고통받는 환자의 ‘따뜻한’ 동반자로부터 ‘차가운’ 과학자로 이미지와 실제적인 역할이 바뀌게 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오늘날 근대의학과 의사들에 대한 일반인의 바람과 요청은 전인적인 모습과 동반자의 역할을 복원하라는 것”이라고 의료계의 현실을 질타했다.
송상용 교수(한림대 과학사)의 회고에 의하면, 한국과학사학회가 창립된 것은 1960년으로 일본과학사학회(1941년), 중국과학기술사학회(1980년)에 비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것이다. 과학연구의 진전과 더불어 과학기술에 대한 역사적 원근법의 시각을 제공하는 과학사 연구도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이 송 교수의 진단이다.
김재환 기자 weibli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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