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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단평]『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카이 하머마이스터 지음·임호일 옮김, 한대출판부刊)
[신간단평]『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카이 하머마이스터 지음·임호일 옮김, 한대출판부刊)
  • 교수신문
  • 승인 2001.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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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25 15:29:33
최문규 / 연세대·독문학

칸트, 헤겔, 마르크스,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독일 철학의 전통을 계승한 가다머는 백세를 넘긴 노철학자다. 이제는 이차문헌 세계에서 인용되는 철학자가 아니라 일차문헌의 반열에 오른 철학자다. 가다머의 영향사적 해석학은 전통과 현대를 두루 섭렵하는 가운데 독특하게 성립된다. 전통적 지평과 현대적 지평 간의 조우, 그리고 유동적인 이해 가능성의 열림, 예술작품의 대화적 가능성, 철학과 문학의 만남 등이 그의 사유의 핵심을 이룬다.
하머마이스터가 지은 이 책은 그와 같은 학문적 노정을 걸어온 철학자를 심도 있게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은 가다머의 삶을 단순하게 정리한 것이 아니라 가다머의 철학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데, 예컨대 해석학이라는 개념부터 가다머 해석학의 독특한 특징인 전통, 선입견, 기대지평, 이해의 역사성, 미적 미구별 같은 개념을 상세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이 책은 가다머 자체에만 제한돼 있지는 않다. 그는 가다머의 해석학이 동시대의 다양한 분야와 이론(문예학, 이데올로기비판, 해체론, 정신분석학, 실용주의 등)과 어떻게 접목되고 차이점을 형성하는지를 밝혀 주고 있다. 특히 데리다의 해체론, 정신분석학, 로티의 신실용주의에 대한 가다머의 비판적 시각을 정리한 점이 돋보인다. 이해 과정에서의 ‘균열’(rupture)과 관련하여 하머마이스터는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물론 해석학 또한 소통의 균열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해석학은 이해하지 못함에서 비로소 출발한다. 그렇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이 균열이 근본적인 것으로 관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由來의 공통성과 합의이다.” 이것은 ‘균열’과 관련하여 해석학과 해체론 간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예리하게 파헤쳐 주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근본으로의 회귀를 항상 염두에 두는 철학적 근본주의에 대항하고, 그 대신 다양한 담론 간의 대화가능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로티의 신실용주의와 가다머의 해석학이 서로 접점을 형성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예술의 사용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정치사회적 삶의 범례로서 예술을 강조하는 시각(로티)과 삶과는 거리를 두는 예술의 형이상학적 측면을 고수하려는 보수적인 시각(가다머) 간의 차이점이 매우 명증하게 분석되고 있다.
역자가 학제간의 공동 작업으로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을 이미 번역했던 경험을 갖고 있기에 독자는 해석학에 대한 ‘선이해’를 지닌 역자의 솜씨를 기대해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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