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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강인숙의 <일본 모더니즘 소설 연구>
서평 : 강인숙의 <일본 모더니즘 소설 연구>
  • 교수신문
  • 승인 2007.03.2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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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문학 안의 타자, ‘일본 근대문학’

먼저 나는 소설 전공자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다. 한국 현대시 전공자가 일본 모더니즘 소설 연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무리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이 책은 일본문학 전공자가 꼼꼼히 읽어야 할 책일 듯하다. 이 책은 일본 모더니즘 작가들의 텍스트적 특질을 구조적으로 분석한 지극히 정치하고 성실한 연구서다. 그럼에도 일본문학과 소설장르에 일천한 내가 이 책에 대해 뭔가 말할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정년퇴임을 지난 지 한참인 나이든 여교수의 학문에 대한 진지한 열중과 성실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선생은 서문에서 1990년 초반 연구를 위해 일본에 갔다 몸이 안 좋아 귀국, 다시 연구 작업 시도, 다시 병을 얻어 작업을 계속할 수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한다. 죽을 때까지 학문을 한다는 것이, 학자로서 공부의 즐거움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선생은 그 거친 육체와의 싸움 속에서도 보여준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탄생하게 된 것이 강인숙 선생(사진)의 <일본 모더니즘 소설 연구>(생각의 나무, 2006)다.

조선 근대에서 문학의 정착이 이광수의 <文學이란 何오>(1916)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서 이광수가 문학이라는 단어를 literature의 번역어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은 근대문학이란 관념 내지 지식의 체계가 자생적인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암시한다. 여기서 외부라 함은 ‘일본’을 의미한다. 흔히 번역된 근대, 수입된 근대라고 말하듯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은 한국 근대 문학사를 이해하는 데 통과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당시 식민지 지식인들은 대개가 일본 유학파들이었으며 이들이 일본어로 번역된 서구사조를 학습하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던 바. 그런 점에서 한국문학에서 ‘모더니즘’, ‘리얼리즘’을 서구이론의 그것으로 직대입하여 설명하는 것은 중요한 굴절과정을 놓치게 되는 바다.


강인숙 선생의 연구 작업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출발한다. 한국 근대문학 연구에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일본문학과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다시 점검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강인숙 선생은 일본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격인 요코미쓰 리이치, 류탄지 유, 이토 세이의 텍스트를 집중적으로 분석, 유형화하고 세분하여 문학적 특징을 규명하면서 구체적 증거들을 찾는다. 일본 모더니즘 문학이 가지는 텍스트실험의 구체적 특징들을 찾아가는 탐색적 열정이 새롭다. 그리하여 이들의 작품이 서구 모더니즘을 어떤 방식으로 자기화했고 전 시대의 소설에 비해 어떤 반전통성을 실험적으로 드러냈는가에 전체적인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를테면 요코미쓰의 문체에서 비약적 인상적 문체가 신감각파(97쪽-98쪽)의 특징을 드러내는 방식에 주목하면서 기법적인 측면, 즉 내면심리 탐구, 복수시점, 문장에서의 짧은 호흡, 공감각적 비유, 빠른 템포의 반복적인 말들을 살핀다. 류탄지 유는 작품에서 무정부적인 자유와 초탈을 보여주면서 신흥예술파의 ‘난센스 문학성’을 드러낸다.(111쪽) 류탄지 유의 난센스적인 삶에 대한 추구는 유희와 쾌락과 미에 대한 추구와 연결된다. 이토 세이의 경우 그는 신심리주의적 관념성을 드러내면서 내면심리 묘사, 의식 흐름 수법의 가미, 내성적 주관적 의미의 분석적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309쪽) 그렇게 하여 일본 모더니즘 소설은 세 가지 특징으로 모아진다. 저자는 이를 ‘反프롤레타리아’, ‘현실이탈’, ‘감각주의’ ‘사소설과의 긴밀함’으로 요약 정리한다.

이와 같은 일본 모더니즘 소설의 텍스트적 특징, 구조적 의장(意匠)을 살피는 것은 한국 근대문학의 현대성이 성립되는 데 중요한 영향 통로를 추적하는 작업일 터.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자연주의 리얼리즘 소설은 일본에 들어와 일본 사소설 형태 고백소설, 그리고 객관소설로 두 방향으로 발전해간다. 이러한 일본식 리얼리즘 혹은 자연주의는 한국에 들어와 내면세계를 고백하는 소설과 식민지 어두운 현실을 그리고 사회성 강한 리얼리즘 소설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한국문학에서 나타나는 현실세계에 대한 반영은 식민체험, 이데올로기 전쟁이라는 급격한 근대화 역사의 분기점과 응당 관련이 있을 터.

이렇게 일본 모더니즘 소설(근대 소설)의 핵심적 특징들을 살피고 나니 최근 출판가에 범람하는 일본소설의 유행에 대한 어떤 근거들이 마련되는 듯하다. 최근 대학생들이 맹독하는 일본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도쿄 타워> 등은 그야말로 1990년대 이후 이념의 시대가 지나고 나서 발견하게 되는 소서사로서의 개인주의, 사소한 것으로서의 일상의 발견, 개인적 고백과 감각주의라는 한국 포스트모던한 시대적 흐름과 연결되는 바다. 1990년대부터 열풍이 불기 시작한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등을 환기해보자. 이념의 시대는 지나가고 개인주의와 감각적 실존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더라도 강인숙 선생의 <일본 모더니즘 소설 연구>는 한국문학, 문화의 제사회적 방식들을 근대초엽에서부터 그 시원을 찾아보는 중요한 덕목을 가진다. 한국 근대문학 연구에서 ‘근대성’ ‘모더니즘’의 특질, 그 연원을 찾는 과정에서 중요한 자료뿐 아니라 민족담론에서 좀 더 자유로워진 시각에서 한일 문학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각을 제공한다. 이는 저자가 밝힌 바 1930년대 한국 현대문학 연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후학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김용희 / 평택대·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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