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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 <진보평론> 들뢰즈·가타리 특집판 발간
화제 : <진보평론> 들뢰즈·가타리 특집판 발간
  • 김재호 기자
  • 승인 2007.03.26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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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횡단의 철학 … ‘맑스주의 진화’

<진보평론>이 창간 이후 처음으로 ‘들뢰즈·가타리’라는 한 가지 특정 주제를 다루고 있어 화제다. 진보평론 제31호 2007년 봄 호는 들뢰즈·가타리 문헌목록과 용어설명까지 곁들였다. 편집자인 이성백 서울시립대 교수(철학)와 박영균 건국대 강사(철학)는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야기된 맑스주의의 균열 속에서 “알뛰세-발리바르의 맑스주의와 라클라우와 무페식의 급진 민주적 전략과 리오타르를 비롯한 ‘해체’와 푸코의 근대성에 대한 탐구와 전복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캉 및 데리다와, 들뢰즈·가타리와 맑스의 마주침이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일종의 ‘맑스주의 진화’라고 할 수 있다.


편집자는 80년대식 운동이 권력화하면서 일상에 상흔을 남긴 역사적 사실을 지적했다. 마치 정지우 감독의 단편영화 ‘생강’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차이들’과 다양한 소수자들은 철저히 외면당했다는 것이다. 들뢰즈·가타리는 “모든 존재자가 아우성치는 존재의 함성을 우리에게 들려주”기 위해 새로운 운동의 실천방식을 제시하려고 한다. 또한 편집자는 자본이 강요하는 동일성에 끊임없이 노동자들이 매몰되는 현상을 보며 맑스주의의 무능함을 목도했다. 들뢰즈·가타리가 제시하는 차이와 횡단의 철학이 필요한 이유다.

이성백 교수는 19일 기자와 만나 “들뢰즈·가타리 정치이론이 야기하는 논쟁보다는 연구의 관심과 지점을 세세하게 드러내는 식으로 기획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들뢰즈·가타리는 좌파의 이론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진보평론>의 이번 특집을 통해 그들의 이론이 확산되는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특집은 철학, 이론, 현실, 실천 네 부분 15개의 논문으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주제인 ‘철학 내재성과 생성의 존재론(철학)’에서 김명주 부산대 강사(철학)는 “질 들뢰즈의 ‘바깥의 존재’”라는 논문을 통해 사유의 무능력이 가진 무능력함을 오히려 강조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돌발적인 충격’에 의해 사유한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거의 ‘홀로주체성’의 사유 속에서 생각한다. 왜냐하면 서양철학의 전통을 이루고 있는 ‘코기토’의 명제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들뢰즈·가타리는 “사유할 수 없는 어려움에 봉착해서 우리의 공통감과 양식에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 바로 사유의 구조가 지닌 본성”임을 강조한다. 사유의 방식이 전통적으로 욕망하는 주체를 규정했다면 새로운 사유방식은 새로운 욕망론을 제기한다.

‘들뢰즈의 욕망이론과 분자혁명(이론)’을 다루고 있는 두 번째 부분에서 홍준기 한국정신분석상담연구소장은 라깡의 관점에서 들뢰즈를 들춰내고 있다. ‘들뢰즈의 욕망이론: 라깡적 관점에서의 비판적 고찰’의 논문에서 그는 “들뢰즈는 정신분석을 자본주의적 영토화의 ‘결정적인’ 매개로 간주”하지만 라깡의 결여라는 것은 ‘자유의 빈공간’이고 오히려 “주체와 타자 사이에, 그리고 주체 속에 주체를 억압하는 타자로부터 거리를 제공하는, 주체의 자유의 공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홍준기 소장의 주장은 “들뢰즈는 ‘충만함’만을 허용하는 존재론적 관점을 취할 뿐이며, 라깡은 ‘충만함과 결여의 변증법’ 속에서 인간 주체와 욕망을 사유한다는 차이가 있다”로 요약된다.

김재인 서울여대 강사(철학)는 ‘개인들이 일제히 발포하기 위해서는 총사령관이 꼭 필요한가?’에서 일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주체와 생산에 대한 개념을 들뢰즈가 전복시키고 있다고 적었다. ‘현실과의 마주침(현실)’이란 특집 세 번째 주제에서 그는 들뢰즈의 실천 존재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의식과 의지란 주체 이전에 존재한다. 주체란 의지 또는 욕망들의 복합 작용이다. “욕망의 모델은 공장이며, 욕망은 생산 활동, 끊임없는 실험, 실험적 조립, 유랑하는 수련이다.” 공장은 인간들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욕망에 대한 연구는 정치학이 된다. 결국 ‘나’가 사라지는 분열증은 현실과의 밀착 속에서 실천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한다. 미리 주체가 정해진, 합목적성을 띤 실천이란 가짜 실험이기 때문이다. 이 논문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총체적 계몽이 가능한지는 기자에게 의문으로 남았다.

 마지막 ‘욕망의 미시정치와 되기(실천)’에서 민진영 전남대 강사(불문학)는 “일탈은 여성으로서의 삶이겠지만 이탈 혹은 도주는 여성-되기의 삶”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이 될 것인가? 여성-되기를 할 것인가?’라는 논문에서 그는 “궁극적으로는 여성-되기란 여성주의 담론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것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되기’란 모방이나 기억이 아니라 “자기 영토에서 벗어나 탈영토화하는 유목적 삶”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유목적 ‘주체’라는 것이 설정되지는 않는다. 들뢰즈·가타리의 이론이 여성주의 운동에 적합하지 않은 이유이다. 여성주의 운동은 어쨌든 여성적 주체성을 재정의하고, 몰적 투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몰적(molaire)이란 통계 법칙에 따라 기능하여 정확한 미세함, 차이, 특이성의 효과를 버리는 경직된 침전화를 나타낼 때 쓰는 용어이다.

이성백 교수는 들뢰즈·가타리에 대한 국내외의 논의에 대해 “구경꾼의 시대는 갔다”며 동시대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연구경향에 대해서 지적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올해 6월 열리는 제4회 맑스코뮤날레에서도 들뢰즈·가타리에 관한 논의가 두 개의 섹션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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