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로서 나는 지금 몹시 행복하다. 한두 해 전까지도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교수로서 나는 행복하기는커녕 불만투성이였다. 교수임용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열심히 수업준비하고 학생들과 어울렸지만, 머잖아 2% 부족한 느낌으로 고통을 겪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교수로서의 삶을 멈추려고 했다. 농법을 연구하고 재테크 책을 읽으면서 조기퇴직을 꿈꾸어보기도 했다. 각종 종교서적을 섭렵하면서 탈세속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아니면 일단 사직하고 나면 해법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이런 말을 했을 때는 남편의 일이라면 무조건 지지하고 후원해준 처도 화들짝 놀랐다. 거기에 대고 가난뱅이 아빠가 자식교육에 더 나을 수 있다고 괴변을 펼쳐보였다. 나는 심지어 내 인생에서 고난이 없었던 것이 나의 치명적인 한계라고 생각하고 고행을 꿈꾸기도 했다. 그것은 자학하는 패배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알량한 기득권 앞에서 정작 결행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그러한 자괴감이 또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인생의 반(半) 슬럼프에서 거의 빠져나왔다. 나는 더 이상 비관적이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다. 오히려 나는 경솔하게 사직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나는 재탄생했고, 나는 이제 종전의 내가 아니다.
나에게 새로운 비전과 재활의 힘을 준 것은 놀랍게도 ‘국민’이었다. 국민의 발견. 그것은 진정한 발견이었다. 자연이 거기에 있었지만 나중에 자연법칙이 발견되듯이, 국민이 늘 거기에 있었지만 나는 이제야 그것을 발견했다.
교육, 연구, 봉사라는 교수의 3대 사명도 다 해명되었다. 무엇을 교육할 것인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가르치면 된다.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면 된다. 무엇을 봉사할 것인가, 국민에게 봉사하면 된다. 또 국민을 매개로 교육과 연구와 봉사가 통합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아직 생각이 탄탄하게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대단한 발견이고 깨달음이었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은 국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람과 만나 토론하고, 조직하고, 실천하면 된다. 조금씩 방법이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이 일은 벌써 나에게 무한한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고 있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데에 교수직만큼 좋은 것도 드물다는 것을 알았다. 호구지책으로 삼고 있는 교육, 연구, 봉사가 모두 국민의 것임을 알았다. 국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한하고 명분이 서는 일이며 하면 할수록 더욱 신나는 일이다. 그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새벽부터 밤까지 일해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앞으로는 사람도 많이 만나고 싶다. 뜻을 같이 하는 동학과 밤새 토론하면서 일을 도모하고 싶다. 그리하여 이 행복을 그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다. 방학 때에는 뭔가 진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국민과 민중이 어떤 고통과 불편을 겪고 있는지 체험하고 싶다.
그렇게 살다보니 요즘은 건강도 생각한다. 밥을 꼭꼭 씹어 먹었더니 맵고 짜고 기름진 것에 대한 식욕도 많이 없어졌다. 술은 거의 안 먹거나 취하기 전에 그친다. 하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이다. 나이 40대 중반에 그래도 이만큼 정신 차리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속으로 인생 후반전을 슬며시 기대해본다.
이상수/ 편집기획위원· 한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