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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교수생활
행복한 교수생활
  • 이상수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07.03.26 09:3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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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로서 나는 지금 몹시 행복하다. 한두 해 전까지도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교수로서 나는 행복하기는커녕 불만투성이였다. 교수임용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열심히 수업준비하고 학생들과 어울렸지만, 머잖아 2% 부족한 느낌으로 고통을 겪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교수로서의 삶을 멈추려고 했다. 농법을 연구하고 재테크 책을 읽으면서 조기퇴직을 꿈꾸어보기도 했다. 각종 종교서적을 섭렵하면서 탈세속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아니면 일단 사직하고 나면 해법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이런 말을 했을 때는 남편의 일이라면 무조건 지지하고 후원해준 처도 화들짝 놀랐다. 거기에 대고 가난뱅이 아빠가 자식교육에 더 나을 수 있다고 괴변을 펼쳐보였다. 나는 심지어 내 인생에서 고난이 없었던 것이 나의 치명적인 한계라고 생각하고 고행을 꿈꾸기도 했다. 그것은 자학하는 패배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알량한 기득권 앞에서 정작 결행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그러한 자괴감이 또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인생의 반(半) 슬럼프에서 거의 빠져나왔다. 나는 더 이상 비관적이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다. 오히려 나는 경솔하게 사직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나는 재탄생했고, 나는 이제 종전의 내가 아니다.

나에게 새로운 비전과 재활의 힘을 준 것은 놀랍게도 ‘국민’이었다. 국민의 발견. 그것은 진정한 발견이었다. 자연이 거기에 있었지만 나중에 자연법칙이 발견되듯이, 국민이 늘 거기에 있었지만 나는 이제야 그것을 발견했다.

교육, 연구, 봉사라는 교수의 3대 사명도 다 해명되었다. 무엇을 교육할 것인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가르치면 된다.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면 된다. 무엇을 봉사할 것인가, 국민에게 봉사하면 된다. 또 국민을 매개로 교육과 연구와 봉사가 통합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아직 생각이 탄탄하게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대단한 발견이고 깨달음이었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은 국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람과 만나 토론하고, 조직하고, 실천하면 된다. 조금씩 방법이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이 일은 벌써 나에게 무한한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고 있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데에 교수직만큼 좋은 것도 드물다는 것을 알았다. 호구지책으로 삼고 있는 교육, 연구, 봉사가 모두 국민의 것임을 알았다. 국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한하고 명분이 서는 일이며 하면 할수록 더욱 신나는 일이다. 그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새벽부터 밤까지 일해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앞으로는 사람도 많이 만나고 싶다. 뜻을 같이 하는 동학과 밤새 토론하면서 일을 도모하고 싶다. 그리하여 이 행복을 그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다. 방학 때에는 뭔가 진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국민과 민중이 어떤 고통과 불편을 겪고 있는지 체험하고 싶다.

그렇게 살다보니 요즘은 건강도 생각한다. 밥을 꼭꼭 씹어 먹었더니 맵고 짜고 기름진 것에 대한 식욕도 많이 없어졌다. 술은 거의 안 먹거나 취하기 전에 그친다. 하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이다. 나이 40대 중반에 그래도 이만큼 정신 차리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속으로 인생 후반전을 슬며시 기대해본다. 

이상수/ 편집기획위원· 한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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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2007-04-11 06:15:59
'국민'의 갑작스런 등장을 이해?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겠습니다. 저는 올초에 먼 타국에서 그걸 느꼈습니다. 정확하지는 분명 않겠지만, 선생님께서 '국민'이라는 말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그것이 신명을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제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 만족적이었던 공부에 뚜렷한 목표가 생기고 방법론이 따라 나오고 의미가 부여되고, 어찌 신나지 않겠습니까? (어떤가요? 비슷한가요?) 성과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더 없이 기쁘겠지요. 인생 후반전 우수수 떨어지는 성과들에 한 없이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상수 2007-04-09 22:15:35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비논리적인 글이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저는 제 진지한 생각을 표현하고 했습니다. 그리고 논리적이기 보다는 직관적인 글을 써보았습니다. 논리적이 글은 메세지가 너무 빈약한 듯합니다. 요즘에는 비논리적인 글을 써보려고 일부러 애를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 어렵습니다. 이글은 사실 내가 도달하려는 비논리적인 글에 비하면 매우 논리적인 글입니다.
이 글에서 나는 교수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떨 때 진정으로 행복해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건전한 것의 의미에 대해서 써보았습니다. 그리고 교수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이어햐 하는지에 대한 내 생각을 보여주고, 공감이 있는지를 보고 싶었습니다. 역시 공감하지 못하는 분이 있다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사회 어딘가에 이 글을 공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썼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글로 인해서 그 분을 만날 날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나는 그런 기대와 믿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사실은 이글에 공감할 그 분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또 이 글은 나 자신에 대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교수생활을 잘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이 비논리적이지만 참 좋고, 애정이 갑니다. 참 이상하지요.

홍성국 2007-04-01 11:19:00
'행복한 교수생활'이라는 글을 읽어 본 느낌은 황당하다이다. 이 글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자 감을 잡을 수 없다. 교수생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다 갑자기 국민때문에 행복하고 열심히 직업을 수행하겠다고 한다. 국민이라는 키워드가 왜 갑자기 등장했는지 도무지 글의 논리적 전개를 의심치 않을 수 없다. 또한 교수가 좋은 직업이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자랑하는 느낌도 들고...그런데 교수가 좋고 괜찮은 직업이라는 것은 대체로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글을 다 읽고 난 지금 여전히 글의 의미가 혼란스럽다. 제발 글을 논리적으로 썼으면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