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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美-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33>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한국의 美-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33>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 임남수 교수
  • 승인 2007.03.12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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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하는 모습 속에 강한 생동감이 일품

            

환상적인 불상미를 선보이는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이 어떤 이견도 없이 한국 최고의 금동 조각으로 선정됐다. 반가사유상은 왼쪽 무릎 위에 오른발을 얹고, 오른손 손가락을 뺨에 살짝 대어 명상에 잠겨있는 듯한 자세의 보살상을 말한다. 반가사유상은 현재 백제로 그 기원을 보는 설과 신라를 기원으로 보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임남수 교수는 신라를 그 기원으로 보고 있다. 본지는 이러한 임남수 교수의 주장과는 관계가 없으며, 뛰어난 조형감과 형태미를 자랑하는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의 미적 특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이 불상은 적어도 해외출장을 5번이나 다녀왔다. 한국의 수많은 문화재 중에서도 가장 많은 출장 기록이 아닐까. 천진한 미소를 가득 머금은 얼굴은 물론, 보관에서 대좌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의 완성도가 높아 전시회의 얼굴이 될 수 있으며, 상의 높이가 93.5cm로서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기 때문에 운반과 전시에 적당하다. 또한, 재질이 견고한 금동불이기에 쉽게 파손될 염려도 적은 점 등이 이 像으로 하여금 해외출장을 하게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像은 대좌에 걸터앉아 왼발을 내리고 오른발을 왼쪽 무릎위에 걸치고, 오른손은 손가락을 뺨에 대고 있어 마치 사유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반가사유상이라고 불린다. 먼저 이 보살상의 형식상의 특징을 머리의 보관부터 살펴보자.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이 보관은 정면에서 좌우 측면으로 곡선을 그리며 뒤쪽으로 이어진다. 이 관은 마치 3개의 산모양이라고 하여 삼산관으로 불리기도 했고, 연꽃잎 모양과 비슷하다고 하여 연화관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이 보관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보관의 형태가 원형을 이루고 있는 크라운(crown)이라는 점이다. 보살의 보관은 이 보살상이 쓰고 있는 크라운 형식과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이 갖추고 있는 티아라(tiara) 형식의 2종류로 나눌 수 있다. 궁정의 대관식이나, 연회에서 왕공 귀족들이 쓴 관을 상기해 보면 알 수 있듯이 크라운이 티아라보다 훨씬 격이 높음은 새삼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크라운 형식의 보관은 83호상 이외에 국보118호 평천리 출토 금동반가사유상, 경주 성건동 출토 금동반가사유상, 일본 나가사키 현 26성인기념관 금동반가사유상, 일본 코류지(廣隆寺)의 보관미륵상 등이 있다. 일본의 예를 제외하면 크라운 형식의 보관은 고구려와 신라의 반가사유상에서만 보이며 백제에서 알려진 예는 없다.

이어서 오른쪽 무릎에 주목해보자. 83호 像의 무릎 끝은 매우 크며, 바깥쪽으로 호를 그리듯이 휘어져 튀어나왔다. 경쾌하여 상승감을 불러일으키기는 반면, 표현 그 자체는 과장되어 있다. 이와 같은 무릎 표현은 경주 성건동 출토 반가사유상, 경북 봉화군 북지리 출토 석조반가사유상 등 신라의 반가사유상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앞서 소개한 일본의 두 반가사유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현재 출토지가 확실한 백제의 반가사유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다음으로 오른쪽 정강이를 덮은 옷자락이 대좌의 상단에 늘어져 마치 언월도 모양으로 약간 걸려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옷자락 표현은 앞서 소개한 신라의 반가사유상, 그리고 일본의 두 반가사유상과 공통되는 특징이다. 이에 비해 출토지가 명확한 백제의 반가사유상, 예를 들어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의 좌협시 반가사유상이나 부소산출토 석조 반가사유상 등은 오른쪽 정강이를 덮은 옷자락이 정강이에 마치 물결모양으로 휘감기는 모양으로 나타나 있어 83호상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왼쪽 무릎 정강이 부분을 살펴보면, 정강이의 측면에는 J자 형태의 옷주름을 새긴 반면, 정면에는 옷주름을 새기지 않았다. 이 표현은 왼쪽 정강이의 양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예는 앞서 소개한 국보118호 금동반가사유상, 경주 성건동 출토 금동반가사유상과 일본의 두 반가사유상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상술한 바와 같이 83호상의 특징으로는 크라운 형식의 보관, 오른쪽 무릎과 그 밑의 옷자락, 왼쪽 정강이 표현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특징들은 국보118호 금동반가사유상, 경주 성건동 출토 금동반가사유상, 일본 나가사키현 26성인기념관의 금동반가사유상, 일본 코류지의 보관미륵상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불상들은 제작연대에 따른 양식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어느 특정한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더욱이 이 특징들은 서산 마애삼존불이나 부소산 출토 반가사유상 등 출토지가 확실한 백제의 반가사유상에서는 아직 확인된 바 없으므로, 83호상 계통의 반가사유상이 백제에서 유행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신라지역에서 조성되어 신앙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관점을 바꿔 83호상의 얼굴과 손, 발, 옷주름 등의 세부 표현을 살펴보며 양식상의 특징에 주목해보자. 83호상의 얼굴은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소년의 통통하면서도 둥근 모습이다. 입은 살며시 다물면서도 미소를 머금어 깨달음의 희열을 나타내며 조각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어서 양손과 손가락, 오른발의 발가락은 마디와 살집이 과장됨 없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었으며, 오른발은 발바닥과 발가락의 연결이 살아있는 소년의 부드럽고 귀여운 손과 발을 잘 재현하였다. 이에 비하여 왼발은 경직된 모습이며, 연화대좌 또한 이질적이어서 후대에 보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83호상은 부드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인체 표현이 이뤄져 삼국시대 불상의 백미로써 7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이며, 백제는 침류왕 원년(384)이었으므로, 83호상은 불교 전래부터 약 3백년 가까이 지난 후에 제작된 것이다. 3세기에 가까운 기간 동안 한국의 불상은 어떤 길을 걸어온 것일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으로 서울 뚝섬 출토 청동여래좌상을 들 수 있다. 양어깨에 법의를 걸친 통견 착의에 두 손을 배 앞에서 모아 선정에 든 모습이다. 이러한 형식은 인도의 초기 불상에서 많이 보이는 것이며, 중국에서는 3-5세기에 유행했으므로 뚝섬 출토상은 한국으로의 불교 전래 당시 성행하였을 불상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불상의 정면, 즉 머리의 육계에서 대좌에 이르는 수직선을 그어 보면 거의 정확히 좌우대칭으로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5cm정도로 작기 때문에 조형상의 제약은 있었겠지만, 불상의 신체 비례도 비교적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측면에서 보면, 머리 부분의 두께에 비하여 가슴과 무릎의 두께가 매우 얇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다시 말해 이 불상의 제작자는 불상의 정면 모습만을 중시하고, 측면은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조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뚝섬출토상의 뒤를 잇는 불상이 국보119호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이다. 불상의 명문중 ‘己未年’ 간지와 불상의 양식 고찰에 의해 539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像의 특징으로 오른손은 시무외인, 왼손은 여원인을 맺으며, 통견의 착의법을 취하되 법의의 끝이 왼팔에 걸쳐 몸 바깥으로 흘러내리는 형식을 들 수 있다. 광배에서 대좌까지의 높이 16.2cm, 불상의 높이 9.1cm로 작은 불상이기 때문에 간소한 표현이지만 두터운 법의와 좌우로 퍼진 옷자락, 대좌의 소박하고 도톰한 연화 등은 매우 강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像 또한 광배에서 대좌에 이르기까지 좌우대칭 구도이며, 특히 육계에서 하반신의 옷자락에 이르는 부분은 이등변삼각형의 구도에 끼워 맞춘 듯하다. 또한 양발 위에는 옷주름이 마치 차곡차곡 접혀 있어 사실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83호상은 소년의 통통하면서도 둥근 얼굴, 양손과 발의 자연스러운 살집과 마디의 표현 등을 볼 수 있으며, 옷자락에도 천이 만들어내는 질감과 주름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83호상의 상승하는 오른쪽 무릎은 뚝섬 출토상이나 연가7년명상에서 신체를 구속하고 있었던 좌우대칭이나 이등변삼각형 구도를 시원스럽게 깨뜨리고, 새로운 조형예술의 세계를 알려주고 있다. 깨달음의 미소는 작가로서의 성취를 이룬 佛師의 희열을 나타낸 것으로도 해석하고 싶다.

 



임남수 / 영남대·미술사학
 
필자는 일본 와세다대(早稻田大)에서 ‘廣隆寺의 창립과 이전’ 이란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주요저서로는 ‘廣隆寺史の硏究’가 있다. 분담집필로는 ‘한국조각사논저해제’와 ‘藥師寺’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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