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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_일본, 유교연구에 대한 다른 방법론 제시
해외동향_일본, 유교연구에 대한 다른 방법론 제시
  • 교수신문
  • 승인 2007.03.1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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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중서는 유교 국교화의 확립자인가 … 2천년 정설의 허상

‘한무제(漢武帝) 때 동중서(董仲舒)의 헌책과 오경박사(五經博士)의 설치에 의하여 중국에서 유교가 국교화되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정설이자 기본 상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설이나 상식에 경종을 울리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뒤집는 매우 주목할 만한 책이 일본에서 출간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05년에 汲古書院에서 출판된 후쿠이 시게마사(福井重雅) 씨의 저서 <漢代儒敎の史的硏究-儒敎の官學化をめぐる定說の再檢討->(한대 유교의 사적 연구-유교의 관학화를 둘러싼 정설의 재검토-)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같은 해에 고희의 나이로 와세다(早稻田)대학을 정년퇴임한 저자가 이 문제에 관하여 1967년에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이래 근 40년간 꾸준히 연구해 온 성과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저자 후쿠이 씨에 의하면 이 책은 ‘한대 유교’를 대상으로 ‘사적 연구’를 시도한 것이다. 이때 말하는 사적 연구란 ‘역사적’, ‘사료적’ 연구를 말한다. 즉 유교의 사상 내용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평가하며 또 그것에 입각하여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중시하는 종래의 철학사적 방법론이 아니라, 사료에 보이는 개별적 구체적인 역사 사상(事象)을 실증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진위 여부를 논증하는 방법론을 뜻한다. 이러한 방법론적 접근이 이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주제를 다룬 연구들과의 내용적 차별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책에서 저자가 규명하려는 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한무제 때의 유교의 국교화 및 그 논거가 되는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유림전'(儒林傳)과 '동중서전'(董仲舒傳)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논증의 출발점은 오경박사의 설치나 유교의 확립이 동중서의 헌책에 의한다는 기록이 <한서>에는 있으나 <사기>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그는 그 원인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통하여, 그 유명한 ‘천인삼책(天人三策)’의 상주문이 빠져 있고 또 중앙정국이나 출세가도와는 전혀 무관한 이력의 소유자로 묘사하는 <사기>의 동중서상이 바로 동중서의 실상이고, 그 상주문을 작위적으로 삽입하여 한대 유학의 확립의 제1인자로 묘사하는 <한서>의 동중서상은 허상임을 밝힌다.

그렇다면 반고가 이러한 사실무근의 동중서상이나 유교의 독존화라는 허구를 ‘날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반고와 동중서의 관련성을 양한(兩漢) 교체 시기의 시대사조와 유향(劉向)ㆍ유흠(劉歆) 부자를 매개로 한 반고의 독특한 사상 경향에서 찾는다.

먼저 전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한말기(前漢末期)에 유향과 유흠은 ①한요후설(漢堯後說)과 ②그것에 대응하는 한화덕설(漢火德說)을 창도하고 ③또 이들 부자에 의하여 <좌전>(左傳)이 현창되었다. ④그런데 또 한편으로 이 시기에 도참(圖讖)이 활발히 ‘조작(造作)’되었는데 그들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러한 시대사조 속에서 위의 학설의 근원으로서 시대의 주목을 받게 된 존재가 다름 아닌 동중서였다고 한다.

다음으로 후자에 대해서는 이러한 시대의 동향과 추세에 감화되어 반표(班彪)와 반고 부자도 위의 4가지 사상에 경도(傾倒)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러한 사상을 주축으로 <한서>를 편찬할 때 자신이 묵수(墨守)하는 위의 4가지 사상을 공유하는 처음이자 유일한 존재로 동중서를 주목하면서 그의 전기(傳記) 전체를 다시 쓰게 된다. 그 결과 <한서> '동중서전'을 집필할 때 <사기> '동중서전'을 거의 유일한 저본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부분을 해체하고 증식시킴으로써 동중서를 유교의 체제화에 공헌한 최대의 공로자로 대서특필하게 된다. 사실무근의 동중서상은 이러한 경위로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한서>가 성립한 이후 이와 같이 미화된 동중서전은 점차로 확대 해석되어 갔는데, 그 결과 그의 책문을 무제가 받아들였다는 근거 없는 억설이 탄생함과 동시에 유교의 국교화와 결부시켜 선전하고 전승하게 되었다. 한무제 때 동중서의 진력에 의하여 유교가 국교화되었다는 종래의 정설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가공(架空)의 속설은 오늘날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역사적 사실로 승인되어 2천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연면히 유지되어 왔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유교의 관학화의 분기점을 어느 시기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우선 그 ‘절대연대’를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기본인식과 유교가 체제화되기까지는 약 220년이라는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유교가 전환하는 분기점을 전한의 선제(宣帝)와 원제(元帝) 사이의 시기로 설정한다. 그 이유는 선제 이전의 시대는 유교가 아직 황제나 국가에 의하여 유일한 사상으로 공인받지 못하였고, 원제 이후의 시대가 되어야 비로소 황제는 물론 관민 일반에 추대되는 국가의 정통 사상으로 성립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위의 정설이나 상식에 의존하여 논의되어 온 유교에 대한 사상적 평가나 이론구조 및 그 역할과 의의 등에 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그 밑바탕에서부터 전혀 다른 시각에서 재고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이다. 즉 ⑴유교는 종교인가, ⑵중국 역사상 서양적 개념의 ‘국교’(국가종교)는 존재하였는가, ⑶유교는 과연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의 이론체계로 요청될 만큼 필연적인 고유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는가, ⑷그것이 국가의 윤리사상으로 관학화하는 시기와 그 분기점은 언제이며 그 역사적 필연성은 어디에 있는가, ⑸위서와 도참사상은 유교의 관학화에 어떠한 작용과 역할을 하였는가, ⑹동중서ㆍ유향ㆍ유흠ㆍ반표ㆍ반고로 이어지는 학문적 사상적 계보와 경향은 어떠했으며 <한서>의 편찬에 어떠한 작용을 하였는가, ⑺이른바 정사(正史)의 사료적 성격과 가치는 어떠한가, ⑻양한 교체 시기라는 시대상 속에서 동중서전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 학설과 위치는 어떠한가 등등이 그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한대의 학술을 거론할 경우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도 그 해답을 제시해야 할 학문적 과제가 주어졌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승률 / 동경대·중국철학

필자는 동경대에서 '곽점초묘죽간의 유가사상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楚地出土資料と中國古代文化>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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