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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는 누가 만들었는가
한국의 근대는 누가 만들었는가
  • 교수신문
  • 승인 2007.03.1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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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기획시리즈 (1)
우리 안의 역사전쟁

21세기 우리의 미래는 누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
역사해석이 한국사회의 정치적 이슈로 부각

필자는 우선 역사해석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논쟁이 정치적 이슈로까지 부각된 점을 지적한다. 아울러 『해방전후사의 인식』,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근대를 다시 읽는다』를 통해 한국의 근대를 바라보는 다른 관점들을 제시한다. 필자는 이러한 논쟁이 미래 한국의 정체성 정립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간주했다. 근대를 넘어 탈근대의 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되는 지금, 우리 과거에 대한 좀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편집자주]

21세기를 맞이한 우리 사회는 매우 본질적인 논쟁의 와중에 있다. 이 논쟁은 매우 정치적이고, 촉급한 현재의 문제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논쟁은 다가 올 한 세기의 문제에 더 깊이 뿌리가 닿아있다.

21세기의 동아시아는 역사전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에서는 1997년 니시오 간지(西尾幹二) 교수를 중심으로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1945년 이전의 일본을 침략적 제국주의로 비판했던 기존의 역사관을 ‘자학(自虐)사관'으로 비판하고, 일본의 교과서가 “일본 근현대사 전체를 범죄의 역사로 단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 아시아 침략전쟁과 식민지화를 긍정하고, 미국에 의한 일본전범재판을 비판했다. 그들은 이러한 역사인식을 일본인들 스스로 독자적이고 자유롭게 역사를 이해한다는 의미에서 ‘자유사관'으로 불렀다. 니시오의 <국민의 역사>(1999)는 이들의 역사관을 대표하고 있다.

한중일 역사전쟁에 이어, 한국 안에서도 역사해석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전쟁이 전개되고 있다. 2006년 11월 30일, 서울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교과서포럼 제 6차 심포지엄’은 ‘4.19혁명회’와 ‘4.19혁명유족회’ 회원들에 의해 저지되고 폭력사태까지 야기되었다. 이들은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이 4.19혁명정신을 부정한다고 항의했다. 교과서포럼은 현행 교과서의 부정적인 근현대사 인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새 교과서를 2007년 3월에 출간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폭력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역사해석을 둘러싼 대립은 학문영역을 벗어나 한국사회 전체의 중요한 정치적 이슈가 되었다. 노무현 정부 출범이래 ‘과거사정리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된 것도 그 일례이다. 정부의 태도는 기실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 시민사회의 분노와 맞닿아 있다.

“이런 일본의 교활한 속셈보다 우리에게 더 무서운 것은 일본 우익의 준동을 두 손을 들고 반기는 해괴한 집단이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정통 보수·우익이라고 처신하는 한승조는 ‘고려대 명예교수·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라는 직함으로 일본의 우익잡지 월간 <정론> 4월호에 ‘공산주의·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이란 글을 기고했다. 글의 핵심은 일제지배가 한국인에게 축복이라는 것이다. … 위안부 비하 발언으로 할머니 가슴에 못 박은 이영훈 서울대 교수, … 이들은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극우 세력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 (송필경, ‘파블로프의 개들’ http://www.gunchinews. com/news)

왜 이처럼 대립이 확장, 격화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 논쟁이 단순한 과거 해석이 아니라 21세기의 한국이 어디로 가야하며, 어떤 나라가 되고자 하는가라는 국가목표 및 자기 정체성과 직접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 인식의 갭이 탄생한 것은 1980년대 후반 공산권의 붕괴와 민주화운동 시대의 종언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80년대 한국 사회의 역사적 과제는 민주화였다. 이를 뒷받침한 이념은 반외세·반자본을 주장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였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가 명백히 드러난 반면, 억압적이고 종속적으로 평가되던 한국 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했다.

이 새로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된 것이 안병직 교수(전 서울대 경제학과· 현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의 ‘중진국자본주의론’이다.(“중진자본주의로서의 한국경제”  <사상문예운동> 1989 겨울) 안 교수는 1984년 교토대학 경제학부 교수 나카무라 사토루(中村哲)의 논문을 읽고, 그의 비판적인 마르크스 독해와 독창적인 동아시아자본주의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87년 나카무라의 제의로 한일 경제사학자 16명이 ‘한국근대경제사연구회’를 결성했다. 동년 안병직, 이대근 교수(성균관대 경제학부)를 중심으로 낙성대연구소가 설립되었다. 그 결과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불리는 새로운 한국 근현대사의 이해방식이 탄생했다.

식민지근대화론의 입장은 ‘내재적 발전론’과 대립된다. 내재적 발전론은 1) 식민사학의 한국역사 정체성론 극복, 2) 민족주의 사관의 원론적 수탈론 극복을 위해, 한국사회에도 근대적 발전을 향한 내적 동력이 존재했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를 위해 조선후기로 거슬러 올라가 ‘자본주의맹아론’, ‘실학의 근대성’, ‘식민지 수탈성’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김용섭의 조선후기농업사연구, 이우성의 실학연구,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 대표적 업적이다. 식민지근대화론은 이를 비판하고, 조선후기에 오히려 내적 발전의 동력이 쇠퇴했으며, 한국의 근대화는 식민지 지배를 통해 가능했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들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가치를 배제한 엄격한 경제 데이터를 구축하고, 과학성을 입론의 기초로 삼았다. 이런 관점에서 식민지근대화론은 내재적 발전론 또는 식민지 수탈론을 학문이 아닌 “제국주의 비판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비판한다.

두 이론의 대립은 학문적으로 경제학과 역사학, 사회과학과 인문학, 과학적 접근과 이념적 접근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한국 역사에 대한 보편사와 특수사, 지역사와 일국사, 국제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이기도 하다. 식민지근대화론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동아시아사 및 세계사와 연동된 부분사로 이해한다.

식민지근대화론은 사실 아시아와 한국에 대한 서구의 전통적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19세기말 한국을 기술한 서구의 논자들은 한국이 그 내부에 근대적 발전의 동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직 외부의 충격에 의해서만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들의 입장은 식민사학 형성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한국학 연구는 처음부터 이 관점에 기초하여 이루어졌다. 현대의 대표적인 논자는 커밍스와 에커트이다.



다른 한편 한국 자본주의론으로부터 시작된 논쟁은 역사학 전반으로 확대되어, 1990년대 이후 근현대사 전체를 재해석하려는 입장이 나타났다. 1980년대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인식을 대표하는 저술은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 1979. 이하 <인식>)이다. 이 책은 1989년 제 6권까지 출간되었다. <인식>은 3개의 이념, 즉 민족주의, 민중주의, 민주주의를 축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의 헌사는 “민족의 참된 자주성은 광범한 민중이 주체로서 역사에 참여할 때에만 실현되며, 바로 이런 여건 하에서만 민주주의는 꽃피는 것이다.”(송건호)로 시작하고 있다. 이 민주주의는 다분히 사회주의적이다. 또한 해방후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파악한다. 대한민국은 반민중적, 반민족적, 반민주적 유산의 산물로서, 독점자본의 수탈, 미제국주의의 지배, 독재정치의 억압으로 점철된 역사이다.

<인식>에 대항하며, 80년대 말 이후 성장해온 새로운 역사관을 대표하는 대항 저술로 간행된 것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전2권; 책세상, 2006. 이하 <재인식>)이다. <재인식>은 한국 근현대사를 발전과 자유의 역사로 본다. 북한 사회주의의 역사야말로 부정되어야 할 유산이다. 뿐만 아니라 식민지기를 발전의 뿌리로 재인식한다.



<재인식>은 <인식>이 민족지상주의와 민중혁명 필연론에 기초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재인식>은 이른바 ‘민족’이란 상대적이고 인위적인 개념이며, 한민족이란 의식도 일제의 식민지배로 인해 소멸위기에 처한 한국인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운명공동체 의식이라고 본다.(이영훈) 게다가 민족주의는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이념”이다.(박지향) 한국 민족주의와 관련하여 <재인식>의 논적은 강만길의 ‘분단시대의 역사학’이다.(이영훈)

민중혁명론에 관련하여 <재인식>은 <인식>이 북한의 입장을 추종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최장집·정해구는 해방 전후 한국의 역사적 과제를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박헌영의 ‘8월 테제’의 기본논리와 정신과 동일하다. 그런 관점은 실증에 바탕을 둔 근대 역사학이 아니다. <재인식>은 ‘역사의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한다. 역사가는 단지 사료에 기초하여 사실만을 말할 뿐이다. 인간에 대한 형이상학적 전제도 부정한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인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일 뿐이다. 그것은 현대 진화론적 생물학, 혹은 경제학적 전제에 기초해 있다. 그런 역사관을 ‘문명사’라고 말한다.

그러나 <재인식>은 다시 <인식>을 좌파적으로 보지도 않고, <재인식>을 우파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보다 <인식>의 수준이 낮다고 비판한다. <인식>이 편향적, 이상주의적, 단면적인 반면, <재인식>은 균형적, 현실주의적, 복합적이다. 그러나 수준 문제를 제외하고 그 결과인 정치적 의미만 본다면, <재인식>은 민족주의보다 국가주의,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를 지향한다. 북한은 악의 집단이다. 이 때문에, “경제성장사학에는 복지·분배·환경·평화·연대 등을 탐색하려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선망이 자리잡고 있다. 경제성장사학의 귀착점은 신자유주의다”라는 비판을 받는다.(정연태, 카톨릭대 교수)
<재인식>의 편집자는 박지향(서울대 서양사), 김철(연세대 국문학), 김일영(성균관대 정치학), 이영훈(서울대 경제학)이다. 식민지근대화론의 주요한 이론가인 이영훈 교수가 참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식민지근대화론의 외연적 확장으로 볼 수 있다. 필자 중 한국 역사학계의 학자는 한 사람도 없는 반면, 미국과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국학 연구자가 대거 참여하고 있다. 즉, 한국사 연구자들과 국내외 한국학 연구자들이 대립구도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1945년 이후 근현대사의 역사인식은 제 3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2006년 11월, <근대를 다시 읽는다>(전2권; 역사비평사. 이하 <다시 읽는다>)가 간행되었다. 이 책은 먼저 <인식>의 세계해석과 역사인식이 현실에서 설명력을 다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인식>이 탄생된 배경은 “저 암울하고도 위대한 ‘80년대’라는 시대”였다. 다른 한편 <재인식>은 새롭다기보다 <인식>의 영향력이 소진된 결과 나타난 반사이익과 같은 것이고, <인식>의 지평이 확장되지 않은 결과 자초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재인식>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명백히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냉전적 진영논리로 채색”되었다고 본다. 그것은 혐오감을 준다. <재인식>의 퇴행성에는 논리적 빈곤과 역사해석의 한계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박지향 교수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재인식>은 “김대중 정권 이후 의식화·행동화한 이른바 ‘보수우익’의 정치적 이해에 복무하면서 시대착오적인 좌우 대립에 편승하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재인식>은 자본주의와 국가를 선으로, 사회주의와 민족을 야만으로 보는 이분법에 기초해 있다. <재인식>은 변종근대주의이다. 그리하여 “<재인식>은 <인식>의 문제를 조금도 극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인식>을 다시 정당화하는 기능까지 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왜 이런 역설적 사태가 발생했는가?

<다시 읽는다>는 <인식>과 <재인식>의 차이가 민족과 국가를 정언명제로 한 해석의 차이일 뿐이라고 본다. 즉, 이들의 역사적 정체성은 무엇보다도 민족적·국가적 정체성이다. 양자는 사실 쌍생아이다. <다시 읽는다>는 그 논쟁에서 한국 인문학의 위기, 나아가 탈근대사회에 조응하지 못한 정신의 지체를 발견하고 있다. <재인식>이 <인식>을 근대학문에 못 미치는 ‘신화’로 비판하는 한편, <다시 읽는다>는 양자 모두가 시대에 뒤떨어진 근대적 담론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한다.

<다시 읽는다>의 이념적 지향은 두 가지이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개발지상주의와 국가주의로 요약되는 근대주의와 제국주의의 쌍생아로서의 민족주의, 이 양자를 모두 넘어서는 역사를 새롭게 인식해야 하는 일이다.” 즉, <다시 읽는다>의 극복대상은 국가주의, 근대주의, 민족주의이다. 그런 의미에서 탈국가주의, 탈근대주의, 탈민족주의, 요컨대 포스트모더니즘을 철학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 즉, 기존 관념의 해체와 새로운 구축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읽는다>는 <인식>과 <재인식>이 방법론적으로 실증주의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한다. <다시 읽는다>의 방법론은 문화론과 언어론에 기대고 있다. 그것은 삶의 모든 층위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상사’를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택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계급이나 민족, 국가 등의 패러다임이 해방의 거대담론 속에서 또 다른 억압을 정당화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일상적 “억압에 대한 저항”은 <다시 읽는다>의 정신적 동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인간해방론이다.

이처럼 이 논쟁들은 단순한 역사논쟁이라기보다 21세기의 한국 민족, 혹은 국가, 문명이 무엇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미래 한국의 정체성을 둘러싼 철학적 논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는 중층적이었다. 전근대가 부정되고 근대로 나아간 것이 아니다. 둘이 착종된 채 근대로 나아갔다. 그러나 근대가 소화되기도 전에 벌써 탈근대의 현실이 우리의 삶 속에 들어와 있다. 돌이켜 보면, 서울 올림픽은 한국 근대의 성공을 자축하는 뒤풀이이자 탈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그러나 IMF사태라는 파산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훨씬 통절하게 알렸다. 수많은 사람과 문화, 자본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고 있으며, 인터넷은 새로운 지식과 사회집단, 정치운동을 만들어 내고 있다. 코스모폴리탄적이고 노마딕한 현실은 이미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 이해에 우리의 앞날이 달려있다. 모든 논쟁은 시대라는 자궁에서 탄생된다. 이 논쟁을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우리 삶의 질을 결정지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의 논쟁은 보다 부드럽고 심오하며,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취해야 할 이론(theory)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attitude)이다. 우리의 기획은 참된 대화를 위한 긴 장정이다.

김영수 / 국민대·동양정치사상

필자는 서울대에서 '고려말과 조선조 건국기의 정치적 위기와 극복과정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저서로는 '건국의 정치(여말선초 혁명과 문명 전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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