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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통계수치와 ‘정상’
[學而思] 통계수치와 ‘정상’
  • 윤가현 전남대
  • 승인 2001.09.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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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25 11:20:51
윤가현/전남대·심리학

심리학 연구에서 어떤 행동이나 태도 등이 정상인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통계적 기법을 응용한 기준이 가장 보편화되어 있다. 통계적 기준에서는 정상분포곡선의 양극단에 해당될 경우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다고 해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심리학 연구들은 양극단 중에서 정적 측면보다도 부적 측면의 내용에 관한 것들이다. 정서차원의 예로 행복감보다도 우울증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한 편이며, 지적 차원에서도 영재보다도 정신지체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또 양극단 중에서 아예 정적 측면의 내용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연구내용은 부적 측면인 단방향의 기준에 의해 설정되었더라도 영가설 기각수준을 인색하게 책정하여 연구결과를 양방향의 기준에 의해 검증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역시 단일차원에서 측정되고 있는 연구내용들도 정상 여부의 판가름은 한 방향에만 쏠려 있다. 우울증에 대한 예를 다시 들면, 이를 행복감과 반대의 차원이 아니라 단일 속성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 때에도 어느 정도 우울한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것이지 얼마나 우울하지 않는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후자는 이미 정상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치부나 금기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근자에는 사생활이나 비밀이라는 차원에서 연구대상에 포함시키지 못했던 성행동이 바로 그러한 면에서 해석된다.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서 규정하는 성행동의 정상여부는 기본적으로 통계적 기준에 의하여 쉽게 설명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 기준은 한 문화권의 동시대인들이 받아들이는 사회규준의 동조여부에 따라서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이는 성행동의 정상여부 기준이 시공간적으로 변하고 있으므로 절대적이지 못하다는 뜻이다.
역시 성욕 표출의 정상 여부에 관한 문제는 생존이나 자기보존의 본능적 속성과 관련이 크므로 생각보다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인간과 동물의 본능이 서로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만이 그러한 본능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여러 가지 본능들 중에서도 생존과 가장 원초적으로 관계된다고 믿고 있는 공격성이나 성욕을 억제할 수 있었기에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가 가능한 문화와 문명을 창조하여 오늘날까지 유지·발달시켜왔다. 이러한 면에 따라서 인간의 성 행동 연구에서는 가능하면 본능의 개념을 도입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일부 사회생물학자들은 암컷을 다스리는 수컷 동물들의 성향을 보고 축첩이나 매춘, 성폭력 등에 관련된 남성들의 성 행동을 설명하려고 했다. 이는 남성들의 공격성향이나 성욕을 정당화하고 당연시하면서 여성과 달라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러한 입장이 고수된다면 다른 동물들의 성향과 인간의 성향간의 구별이 어려워진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암수의 관계가 과거로부터 거의 불변이지만 사람의 경우 남녀의 관계는 그 동안 자신들이 창조하여 존속시켜온 문명의 혜택으로 20세기 후반부터 너무나도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성 행동을 여기에 연루시켜 표현하자면, 인간은 종족보존이나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에서 동물과 차이가 커지고 있다. 동물은 전자의 본능에 의존하지만, 인간은 인지적인 능력이 뛰어난 탓으로 전자와 후자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차원에서 또 상황에 따라서는 후자만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성행동이 표출되고 있다.
산업화 사회 말기부터 시대에 따른 상대성 때문인지 성 행동 정상여부의 기준적용에서 성별의 문제는 재조명되고 있다지만, 연령에 따른 적용은 어떠한가. 아직도 성인보다도 청소년이나 아동에 관련된 성행동의 정상 여부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성욕을 표현할 수 있는 자격에서 청소년과 아동은 성인과 거리가 멀어 정상범주에서 벗어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어린 청소년의 경우는 그렇다고 치고 간혹 나이가 많은 노인들의 성 행동도 정상의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세인들까지 알게 모르게 통계적 기준에 집착하듯이 살아가는 것은 바로 평균에 가까운 계층만을 정상으로 여기려는 강자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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