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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의 다양한 스펙트럼
지방분권의 다양한 스펙트럼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9.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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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25 11:06:04
‘지방분권’이 다시 한번 학계의 어젠다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중앙’과 ‘집중’의 벽은 여전히 공고하다. 최근 지자체 단체장의 권한을 제한하는 내용의 지방자치법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전체 인구의 46%, 대학의 41%, 공공청사의 84.8%, 1백대기업의 본사 95%가 수도권에 몰려 있고 줄어들 기미는 없다. 정부의 수도권공장총량제 운영계획이 발표되면서 비수도권에 공장유치 상담이 줄고 지역경제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거세다. 지금, 다시, 지방분권을 주장한다면 과연 어떤 실효를 거둘 것인가.

이런 가운데 지난 3일 발표된‘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전국지역지식인 선언’이 눈길을 끌고 있다. 선언문은 △지방자치의 내실화, △주민자치의 참여민주주의를 통해 실질적 민주화의 실현, △지역패권주의의 극복, △한국사회의 새로운 지역중심의 발전모델 제시, △지방에 결정권, 세원, 인재의 분배, △’지방분권특별법’ 제정과 ‘지방분권추진위원회’의 설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선언은 지역연구단체인 한국지역사회학회(회장 황한식 부산대 교수), 대구사회연구소(소장 김형기 경북대 교수), 전남사회연구회(회장 나간채 전남대 교수) 등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상, 지방분권은 십 수 년 전 학계의 화두였던 지방자치에서 한 걸음 완화된 입장이다. 자치를 위해서는 최소한 분권이 필요하다는 현실적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제와 재정, 교육과 문화의 분권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적 차원의 분권은 내실 없는 구호가 되기 쉬운 까닭이다. 대구경북지역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형기 교수(경제학)는 “지방분권이 되어야 자치가 가능하다”며 “분권은 정치적 차원만이 아니라 교육문화까지 포괄하면서 지역의 ‘내발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방분권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균점론·균등론 등 분권론 내부 입장차

그러나 분권론을 주장하는 지식인 내부에도 합의점 이외에 입장차가 엄존한다. ‘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전국 지역지식인선언 추진위원회’광주전남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나간채 전남대 교수(사회학)에 따르면 “지역 간의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서 지방분권이 일방적으로 진전된다면 지역 간의 불균형은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균형발전이라는 기본원리를 고려하면서도 현재 불균형적으로 저발전된 지역에 대해서는 특별한 고려와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균점론’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병두 대구대 교수(지리학)는 “영남 쪽은 지방 권력을 이양하는 ‘균등론’이지만, 수도권 바깥에 있는 충청도 지역은 경제력이 수도권으로 역류하는 현상이 일어 타격이 크다”며 지방분권 주장의 내부사정을 함께 파악해야 한다고 조심스레 지적한다.

공간지리학적 접근을 통해 중앙과 지역의 불균형을 해소하자는 파격적인 주장도 있다는 사실은 지방분권의 실현이 지난한 일임을 반증하고 있다. 성경륭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분권화의 유일한 길은 중앙정부를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가령 농림부는 전남으로, 해양수산부는 부산으로, 산업자원부는 대구로 이전할 때 발생하는 효과를 조심스레 점치고 있는 것이다. 성 교수는 현 상황에서 가능한 지방분권의 형태를 연방제로 설명한다. “국가중심, 대기업중심, 서울중심의 국가체제가 IMF를 기점으로 기능을 다했기 때문에 권력의 분권, 자원의 분산, 산업의 분업이라는 ‘3분정책’이 필요하다”며 지방이 입법권, 행정권, 조직권, 재정권을 지닌 미국식과 독일식의 연방제를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민주주의 정착과 지방자치의 상관관계라는 한국적 특이성에 따라 달라지는 분권론의 해석을 통해 연방제를 비롯한 지방분권론의 한계를 보완하는 입장도 있다. 박광주 부산대 교수(행정학)는 “지방자치 문제가 제기된 맥락은 권위주의 정부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중앙집권적인 체제에 틈을 내야 한다는 민주화 운동의 큰 틀에서 그리고 원칙론적인 차원에서 이뤄졌다”며, 지방정부와 주민들 사이의 관계는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박 교수는 “연방제 문제는 지방정치공동체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뤄지면서 독자성을 가질 때의 문제”라고 전제하면서, 생활정치의 차원에서 본다면 지역공동체 내부에 대한 첨예한 문제의식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방정부·지역주민 관계에 방점

문제는 지역의 독자성과 자생성의 문제로 옮아온다. 위로부터 정의된 체제보다는 아래로부터 만들어가는 지역성의 문제야말로 지방분권론이 간과하기 쉬운 지점이다. 최병두 교수는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참여하지만 교수노조 하자면 거부한다”며, “지역의 자생적 힘을 키워나가고 지역에 뿌리를 두는 활동에 더욱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지역기층주민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자발적인 자신의 자구, 자강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역주의가 필요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것이 가지는 양면성에서 지역주의에 대한 왜곡된 측면들이 강조될 경우에는 다른 ‘날’이 무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지방분권의 노력과 더불어 지역성을 규명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함을 역설하면서도 학회활동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지역학회가 서울에 있는 전국학회의 지부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몇몇 시민단체를 제외하고는 지역의 자생성을 위한 노력이 미미하다는 것. 지식인 지방분권선언이 가지는 정치적 함의는 다채롭지만, 그 내실을 채우기 위해 지역을 현장으로 하는 조용한 연구들이 병행돼야 한다는 최 교수의 지적은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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