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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 연구의 최근 동향
지역문화 연구의 최근 동향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9.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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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25 11:02:24
‘지방’이라는 단어는 폐기해야 한다. 중앙이라는 헤게모니는 이미 지역을 ‘지방’으로 차별화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역연구자들은 ‘兩眼’을 가지고 ‘겹사고’에 능해야 한다. 어떻게 중심을 벗어날 것인가. 동시에, 어떻게 지역성을 구축할 것인가.

동아대 인문과학연구소가 발간하는 잡지‘문화·비평·사회’ 2호의 좌담 ‘오늘의 한국사회와 문화, 어떻게 볼 것인가’는 지역연구자의 고민들로 빼곡하다. 좌담에 참석한 이훈상 동아대 교수(역사학)는 “한국사에서 ‘지방’이라는 개념이 문화적 힘으로 작용해온 것이 천년 이상”이라며 심층적 구도 속에서 중앙과 ‘지방’의 이분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립’과 ‘한국’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연구원과 부대시설들이 ‘서울’에 있는 상황. 이제환 부산대 교수(문헌정보학과)의 말처럼 정보화시대에도 지역에서 정보가 생산될 수 없는 정보의 불균등한 생산구조. 중앙으로 흡수된 인재가 지역으로 배분되지 않는 학문풍토. 학문적인 종속은 이미 피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는 견해가 지역연구자들에게 지배적이다. 비판에 그치지 않고 중앙집권을 정면으로 대면하면서 학문적 이력을 쌓아갈 수 있을까. 그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 연구자들이 지역의 지킴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규모는 작지만 알찬 행보들이 드물게나마 눈에 띈다. 지역의 학맥을 드러내어 중앙-‘지방’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다. 실체로서의 지역문화를 추구하고 지역문화의 기원에 집착하는 것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평가가 주도적이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는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지역학맥 연구를 이렇게 평가한다. “퇴계나 남명을 연구하면서 그 주변에 초점을 두면 서서히 주변의 인물들이 부각되면서 지역의 학맥이 네트워크로 형성된다”며 “안동문화권, 경주문화권 등 지역문화의 계보를 그리다보면 중앙논리 속에서 주변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문제의 해결점이 드러나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이런 고민의 연속에서 박성봉 전 경북대 교수(역사학)는 ‘영남학’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한국문화와 영남문화’를 모색하는 반년간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중앙으로 회귀하지 않고 지역의 자생력을 도모하려는 시도는 문화기획의 형태를 갖추기도 한다. 지역의 대학연구소들이 서울의 브레인을 끌어와서 학문적 성취를 ‘빌어쓰기’하는 경우는 잦다. 그러나 김성국 부산대 교수(사회학)가 정치가들을 비판하던 맥락처럼 “지역에일시적으로 머무를 뿐 모든 교육과 삶의 기반이 서울에 있는 상황은 변화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물질적·정신적 ‘離乳期’를 거쳐야 한다는 것. ‘문화예술경영아카데미’의 실험을 통해 지역사회 문화예술자원의 개발과 그 방향을 모색하고 지역과 밀착된 실무자를 위한 교육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이훈상 교수는 ‘아스팔트 키드’를 말한다. 어디를 가든 내 ‘고향’으로 만들기 위해 ‘서울바라기’와 단절하려는 결기를 지닌 인간형이다.

지역문화를 책임질 활자매체의 역할도 상당하다. 인천의 ‘황해문화’, 부산의 ‘오늘의 문예비평’ 등은 이미 이런 역할을 자임하고 오랜 기간 고군분투 중이다. 영화제나 국제회의 등의 떠들썩한 이벤트들의 유치경쟁은 지역의 자발성을 꺾기 마련이라는 평가는 이제 일반적이다. 이런 지역의 움직임을 담아 올해 12월에는 영호남 인문과학연구소가 ‘중앙의 헤게모니와 지역대학 인문학의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고, 지역문화와 관련된 모임들이 2001년 하반기에 줄을 이을 예정이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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