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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제4회 비판사회학대회’
[학술대회] ‘제4회 비판사회학대회’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9.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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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25 10:57:36
‘신자유주의’, ‘세계화’ 는 우리에게 단어이면서 동시에 구호다. 이 어휘들에는 한국사회가 맞닥뜨린 위기와 고난의 원인이라는 원망이 덧씌워져 있다. 마땅히 가치중립적이어야 할 단어들만으로 감정적 호소가 가능했던 이유는 거기에 있다. 한국산업사회학회(회장 이은진 경남대 교수)가 주목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한국적 문맥에서 해석한 ‘세계화'

제4회 비판사회학대회가 지난 21일부터 이틀동안 중앙대에서 열렸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시장전제주의 체제’라는 주제를 내걸고 ‘세계화와 사회변동’, ‘산업과 노동’, ‘정치 및 사회운동’의 3개 분야 33개의 논문이 발표됐다. 조직위원장을 맡은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의 의의가 “세계화를 과도하게 일방적인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는 기존 학계의 논의에 대한 비판”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면접, 구술, 설문조사 등의 방법을 동원해 구체적 현실에서 출발한 논문들이 눈길을 끌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노동자의 삶의 질 변화’를 쓴 박재규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설문을 통해 노동자의 일상생활이 악화된 정도를 추적했다. 박 연구원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구조조정 프로그램과 동일시하고 있는데,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유연성’의 도입과 노동강도의 강화가 이뤄진 이후 정리해고·비정규직 고용·신규채용 억제 등을 노동자가 어느 정도 경험했는지 설문한 결과를 제시했다(쥱 참조). 앞의 설문이 독립변수였다면 그에 대한 종속변수로 노동자의 삶의 질 변화를 묻고 있다. 이 설문에서는 고용불안, 가정의 경제생활, 여가생활, 사회적 형평성 등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드러났다(쥲 참조). 박 연구원은 노동자 대다수가 지난 3년 동안 자신의 삶의 질이 크게 하락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사회계층과 작업장의 지위 변수, 응답자의 교육수준과 산업 분야에서 발생한 차이를 고려할 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노동자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보다 오히려 노동자의 위치에 따라 매우 차별적”이었다는 것도 박 연구원이 작업 끝에 내린 값진 결론이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와 윤정향 씨(중앙대 사회복지학 박사수료)의 공동발표문 ‘비정규 노동의 개념정의와 유형화에 관한 연구’는 경제위기 이후 늘어난 비정규직 노동의 사회계층 규정에 시사점을 던져줬다. 공동연구자들은 1990년대 이후 서구를 비롯한 산업화 국가에서 증가추세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이 ‘외부화된 고용관계’로서 새로운 노동수취방식임을 강조했다. 이들은 경제위기 이후 전체 임금노동자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전형적인 고용형태로 자리잡은 비정규 노동을 유형화하여 사회계층적 지위를 세분화해냈다.

비정규 노동자의 유형과 범위에 대한 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논의는 이성균 울산대 교수가 발표한 ‘노동시장변화와 노동유연성 : 기업의 불안정 취업자 활용을 중심으로’에서 이뤄졌다. 이 교수가 ‘불안정 취업자’라 지칭한 임시·일용직 노동자, 한시적 근로자, 비전형 근로자, 시간제 근로자의 비율은 조사자의 범위설정에 따라 17.6%에서 58.4%까지 줄기도 하고 늘기도 했던 것. ‘불안정 취업자’가 증가하는 현상을 이 교수는 ‘수량적 유연성’(numerical flexibility)의 유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지난 1970년대의 경제위기와 80년대까지의 장기 불황기에는 정리와 해고 절차를 쉽게 하고 상용노동자의 수를 줄이며 ‘노동의 외부화’를 시행했다. 한국의 사업체들은 인력의 양적 조절과 일시적 결원보충을 위해서 각각 37.9%와 27.4%가 ‘수량적 유연성’을 활용하지만, 비용절감효과를 위해서는 활용하는 정도는 24.2%에 이른다는 것이 설문결과. 이 교수는 ‘불안정 취업자’들에게 정규직과 동일한 보상체계와 인력관리체계를 적용해야 할 것이라 대안을 제시했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유달리 젊은 학자와 학문후속세대들의 발표가 많았다. 남북화해와 평화공존에 목소리 높이는 오늘에도 여전히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월북’과 ‘월남’의 주제가 신진학자들의 시선을 통해 해석됐다. 조성미 씨(이화여대 석사과정)는 ‘월북자가족의 생활경험과 ‘월북’의 의미체계’에서 우리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인 폭력이 드러나는 간접적이고 이차적인 체계를 월북자 가족들의 공포 속에서 밝혀냈다. “월북자 가족이 자신들을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난 존재로 여기고, 월북자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월북의 의미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또 다른 축”이라는 것. 김귀옥 경남대 북한대학원 객원교수는 ‘이원화된 월남 이산가족 정체성의 사회역사적 기원’에서, 비반공적이었던 월남인이 반공의 코드에 맞춰지는 이유를 ‘이원화된 반공주의’를 통해 설명하기도 했다.

구속중인 강정구 교수 서명운동도

한편, 한국산업사회학회 회장직을 맡기도 했던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학술대회장에 참석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강 교수는 원래 ‘분단과 전쟁의 상처로서 이산가족’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주최측은 지난 ‘2001민족통일대축전’ 방북 이후 구속수감 중인 강 교수를 위해 학술대회장에 ‘비어있는’ 자리 하나를 마련했고, 구명운동을 위해 ‘강정구 교수는 석방되어야 합니다’는 서명서를 돌리기도 했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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