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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40대 교수를 괴롭히는 두 세 가지 것들
[테마] 40대 교수를 괴롭히는 두 세 가지 것들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09.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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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25 10:01:15

한 시대, 한 집단의 ‘허리’인 40대가 위기라고들 한다. 젊은 시절의 이상과 발목을 붙드는 현실에서 고민하며 허덕이느라 ‘돌연사 1위’라는 서글픈 순위를 목덜미에 매단 40대. 대학에서도 40대 교수들은 우울하다. 40대 교수들을 괴롭히는 안팎의 갈등들은 무엇일까.

연구비 타기 위해 ‘외적 관계 맺기’에 치중

올해 40살이 된 최아무개 교수(ㅅ대 기계공학부)는 연구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다. 전공 자체가 앉아서 하는 일이 아니기도 하지만,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는 40대에 들어서면서 ‘밖’에 나가는 일이 더욱 많아졌다. 연구비를 타기 위한 일종의 ‘순례’로, 관련 기업들을 자주 찾는다. 연구를 위해 연구비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교수가 보기에 요즘 교수들이 연구비에 혈안이 된 더 큰 이유는 ‘연구비=교수의 능력’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공계 교수들이 몸값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연구비’를 많이 타내는 것이다.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정작 연구시간을 쪼개면서 ‘외적인 관계 맺기’에 매달리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비단 연구비 뿐 아니라 논문 편수, 학회 활동, 용역 참여 등 모든 대외적인 활동들이 연봉제와 등급제에 곧바로 반영되는 ‘성적항목’들이다.

40대에 들어서면서 부쩍 여기저기 부르는 데가 많아진 것도 요즘 최교수를 괴롭히는 일 가운데 하나다. 30대까지는 ‘어리다고’ 끼워주지 않더니 40대가 되자 여기저기 불러대는 곳이 많다. 이곳저곳 ‘얼굴도장’을 찍느라 연구시간을 많이 잃는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매일 쌓이는 행정 잡무들도 만만치 않은 현실이다.
대학 내에서 40대 교수가 느끼는 세대간의 단절감 또한 크다. 50대의 보수성과 30대의 발랄함 사이에서 교수들의 당혹감은 적지 않다고 한다. 40대 교수들은 대학에 자리잡은 무렵인 90년대의 10년간을 ‘문화충격의 시대’로 기억한다.

샌드위치 세대-일상에서 느끼는 당혹감

김진석 건국대 교수(48세, 수의학과)는 대학의 환경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당황하며, 적응하지 못해 쩔쩔매는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낀 적이 많다. “선생 앞에서 담배 피는 남학생, 몇 년 새 부쩍 늘어난 담배 피는 여학생…당황하고 놀란 경우는 한 두 가지 아니다. 어찌할까 갈등하느라 수업을 진행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좋은 경험들이었다. 내가 자라난 시대의 눈으로 요즘 세대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모자 쓰고 들어오는 학생들을 ‘용서’하는 데 1년 걸렸다.” 이렇듯, 대학의 급변하는 일상은 40대 교수들에게 일종의 두려움이다. 김 교수는 아울러, 40대 교수들이 갖는 인간관계의 부박함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금 대학에는 50~60대 교수들이 가지고 있던 ‘낭만’ 혹은 ‘문화’가 사라진 지 오래다. 편안하게 술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하는 분위기도 없어졌다.” 경쟁을 부추기는 대학사회의 분위기 때문만이 아니라, 교수들의 성장배경과 환경, 의식이 달라지는 데서 오는 ‘차이’가 더 크다는 것이 김교수의 생각이다.

외적 갈등보다 더 큰 내적갈등

앞서 열거한 문제들에 앞서 40대 교수를 힘들게 하는 원인을 교수들 내부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홍승용 대구대 교수(46세, 독문과)는 교수들 스스로 학문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의식적으로 저항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게 된다”면서, 일시적인 ‘단맛’에 취해 성과위주의 풍토에 스스로 일조하고, 깊이 있는 학문연구를 기피하는 교수들의 태도를 비판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41세, 사회학과)는 40대 교수를 힘들게 하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로 ‘내적 중심의 급격한 변화’를 들었다. “40대 교수의 대다수가 한국 사회 격동기에 대학원을 다니면서 학문의 설자리를 고민한 이들이다. ‘민주화’라는 키워드가 상실된 시대에서 새로운 내적 질서를 확립하지 못하는 이들의 고민은 심각하다.” 김교수의 지적대로, 40대 교수들은 혼란기에 있다. 문화충격은 당혹스럽고, 학문의 현실은 이상과 멀찌감치 멀어져간다. ‘연구비’와 ‘등급’에 대한 강박감과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정년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는 불투명하다.

대학 안팎에서 쏟아지는 갈등들, 지적 기반이 얕은 학문적 풍토…어느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러나 제도적 갈등보다 큰 두려움은 학문의 열정과 교육의 열의가 사라져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세대와 세대를 잇는 학문의 중추로서 40대 교수가 제대로 설 수 있기 위해서 모색을 해야 하는 시기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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