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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번역, 오역시비에 그쳐…상투적 번역이 더 문제”
“한국 번역, 오역시비에 그쳐…상투적 번역이 더 문제”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7.03.02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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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한국번역비평학회 초대회장 황현산 교수

한국번역비평학회 초대회장을 맡고 있는 황현산 고려대 교수
한국번역비평학회(회장 황현산)가 지난 3일 고려대에서 ‘번역비평,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창립 학술대회를 열었다. 번역에 관한 이론과 현장경험이 만난 의미 있는 자리였다는 평가다. 지난달 27일 학술대회에 앞서 학회장인 황현산 고려대 교수(불어불문학과·사진)를 만나 우리나라 번역의 문제점 및 번역비평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황 회장은 지난해 9월 학회 창립 이후 초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번역을 이론화하고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계기를 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학회를 만들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일반적으로 번역을 ‘우리말로 돼 있지 않은 텍스트를 우리말로 바꿔 소개하는 작업’ 정도로 여기는데, 이는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번역작업을 하다보면 두 언어에 관해 어느 때보다 깊이 있는 성찰이 이뤄진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시나 소설 같은 언어창작물 보다 오히려 번역이 담당하는 역할이 커요. 언어의 모든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번역은 인문학의 모든 주제와도 연결돼 있습니다.”

번역을 둘러싼 잘못된 인식은 번역비평의 한계로 이어진다. 황 회장은 ‘번역담론’의 문제를 꼬집었다. “한국의 번역은 늘 오역시비에서 그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을 통해 탐구하고 알아야 할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게 되죠. 번역은 언어를 분석하기에 굉장히 좋은 재료인데, 아직 우리나라 번역은 그 단계에 이르지 못 했다고 봅니다.”

본지가 지난 2005년부터 연재한 ‘고전번역비평- 최고의 번역본을 찾아서’를 언급하자 황 회장은 칭찬과 함께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번역의 중요성은 물론, 번역을 객관화하고 공공연히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데 교수신문이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연재물을 보면서 “오역이 많다, 잘 읽힌다” 정도의 논의를 넘어 체계적인 번역 담론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무엇보다 오역시비에 앞서 우리나라 번역작업이 안고 있는 근본장애로 ‘상투적인 번역’을 지적했다. “우리말로 쓴 것보다 더 우리말 같은 번역들”은 번역의 중요한 힘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 회장은 “상투적이지 않다는 것은 무한한 해석의 여지를 갖고 있다는 뜻인데, 소설이나 시에선 낯선 말도 용납하면서 유독 번역에서 낯선 용어가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고 비판한다. 이어 “낯선 것을 받아들이고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상투적인 번역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번역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기 위해 학회는 갈 길이 멀다. 황 회장도 “공개적, 객관적으로 번역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학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번역이론가와 현장번역가가 만나 번역에 관한 인식을 같이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자평한 그는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학술회의, 국제학술세미나, 월례발표회 등을 통해 번역에 관한 문제들을 다각도로 성찰해 나가겠다”고 학회의 향후 계획을 밝혔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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