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3:50 (토)
20세기 후반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20세기 후반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 송병선 / 울산대·중남미문학
  • 승인 2007.03.02 0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전 번역 비평: 보르헤스의 『픽션들』

'최고 번역본을 찾아서' 이번 회는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이다. 송병선 교수는 이 작품이 20세기 후반에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강조한다. 번역의 문제에서는 가독성과 해당국의 수용가능성이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편집자주]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은 20세기 후반의 문학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사회, 과학, 철학 등에 걸쳐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다. 이런 점에서 문학이 사회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변화시킬 수 있는 혁명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대의 대표적인 고전이기도 하다.

‘픽션들’은 1960년대부터 서구에 본격적으로 수용되어 영향을 끼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험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뒤늦게 그 진가를 인정받는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문단을 지배했던 민중문학은 보르헤스를 ‘엘리트 문학’이며 민중성과 괴리를 두고 있다고 성급하게 판단하면서 ‘수용불가능’한 것으로 인식한다. 그것은 이 작품이 보여주는 문학혁명을 감지하지 못한 채, 단지 그들의 시각으로 토착적 문화자산에만 관심을 두면서 그들의 눈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엘리트 문학’으로 치부한 탓이다. 이후 국내의 사회?정치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1980년대 말부터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이 소개되면서 보르헤스는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하고, 이제 ‘픽션들’은 문학을 비롯한 많은 분야에 영향을 끼치면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여겨지고 있다.  

90년대 중반에 비로소 널리 알려진 보르헤스

보르헤스의 ‘픽션들’ 번역은 1980년대 초부터 진행된다. 1982년 중앙일보사에서 출간된 김창환 번역의 ‘죽지 않는 인간’은 40여 편의 보르헤스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픽션들’의 대부분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의 국내 상황 때문에 이 번역본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보르헤스를 제대로 알리지도 못한다. 이후 1992년에 박병규 번역의 ‘허구들’(녹진출판사)이 출판되면서 본격적으로 보르헤스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된다. 같은 해에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김춘진 번역본에는 ‘픽션들’에 수록된 4편의 단편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1994년에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어 황병하 번역의 ‘픽션들’(민음사)이 출간되면서 보르헤스는 비로소 우리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다. 1995년에는 국문학자인 이남호가 ‘보르헤스 만나러 가는 길’에서 8편의 단편을 번역하면서 해설을 덧붙이기도 한다. 이들 네 개의 번역본은 다른 언어권에서 흔히 발견되는 대동소이한 번역이 아니라, 역자들이 직접 번역한 것이라 모두 다른 번역본이다. 여기서는 정식 저작권 계약을 통해 출간되어 현재 ‘공식 번역본’으로 자리 잡고 있는 황병하의 번역에 국한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판본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황병하의 ‘픽션들’에는 스페인어판 원본에 없는 ‘알모따심으로의 접근’이 수록되어 있다. 스페인어판에서도 ‘픽션들’은 여러 변화를 겪는다. 1944년 수르(Sur) 출판사에서 출간된 초판본은 모두 2부로 나뉘어져 있고 ‘알모따심으로 접근’이 1부에 들어있다. 그러나 이 초판본의 2부에는 단지 6편의 단편만 수록되어 있다. 이후 결정판이라고 일컬어지는 에메세(Emece) 출판사 판본에서는 이 단편이 빠지고 대신 ‘끝’, ‘불사조교파’와 ‘남부’가 추가된다. 이후 ‘알모따심으로 접근’은 ‘영원의 역사’에 수록된다. 이렇듯 역자는 자의적으로 ‘알모따심으로 접근’을 수록하지만, 이 단편이 ‘픽션들’의 모든 작품들의 특징을 예시하고 있으며 아직 ‘영원의 역사’가 번역되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할 때,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장점으로 다가온다.

이제 번역의 문제로 들어가자. 사실 보르헤스의 작품을 번역한다는 것은 험난한 일이다. 그것은 보르헤스가 현학적인 내용을 구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문체가 집약적이고 다의적 의미가 담긴 형용사와 부사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보르헤스가 사용하는 형용사와 부사는 작품의 응축성과 매우 관련이 깊기에, 설명식의 번역을 하면 작품의 밀도가 떨어진다. 또한 보르헤스의 번역은 유려한 문체보다는 건조하고 비감정적인 문체를 요구한다. 그러나 번역자의 개성에 따라 문체는 바뀔 수 있고 다의적 단어의 해석은 번역자가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달려있기에, 여기서는 누락되거나 명백하게 오역된 경우에 한정하여 지적하고자 한다.

오역과 더불어 누락된 문장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치명적인 오류는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논고’의 한 부분에서 나타난다. 번역본에는 “역사가 역사를 복사한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203쪽)라고 되어 있지만, 원본은 “역사가 역사를 그대로 복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전율에 떨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역사가 문학을 그대로 베낄 수 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인데……”라고 되어있다. 오역과 더불어 한 줄이 누락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대목은 이 단편뿐만 보르헤스의 문학세계 전반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핵심내용이기에 더욱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한편 ‘죽음과 나침반’의 마지막에서는 “그(샤를라흐)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런 다음 아주 조심스럽게 방아쇠를 당겼다.”라는 부분이 빠져 있다. 이 대목은 형사 뢴로트의 운명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미로의 중심에 도착한 인물의 운명을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다른 단편들과의 긴밀히 연결된다. 이런 점에서 마지막 부분의 누락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한편 20세기 후반의 고갈된 현대문학에 새로운 생명력을 제공해주었다는 평가를 받는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의 경우에도 심심치 않게 오역이 눈에 띈다. 황병하는 “예를 들어 I부의 28장을 시험해 보자. 이 장은 돈키호테가 무예와 문예의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개진하고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83쪽)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이것은 “<문(文)과 무(武)에 관해 돈키호테가 행한 흥미로운 연설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붙은 I부의 38장을 살펴보자.”로 옮겨져야 한다. 여기서 번역자는 38장을 28장으로 잘못 적고 있으며, 또한 ‘돈키호테’ 38장의 소제목을 보르헤스의 글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것은 번역자가 원문의 구두점 사용을 소홀히 여긴 결과라고 여겨지며, 향후 전개될 내용이 상호텍스트를 통해 고갈의 위기에서 신음하고 있던 서구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핵심 역할을 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역시 중대한 오역이라고 볼 수 있다.

숫자의 오류는 보르헤스의 대표적 단편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에서도 반복된다. “멤피스 본에서는 제12권에서 목격되는”(48쪽)이라고 되어 있지만 12는 11의 오류이다. 그러나 이런 실수는 번역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것이라고 보인다. 이런 사소한 실수는 다른 단편에서도 자주 눈에 띈다. 가령 ‘남부’에서 “그는 복음주의 교파의 목사였다”(273쪽)라고 번역하지만, 스페인어에서 ‘iglesia evangelica’는 개신교 교회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는 개신교 교회의 목사였다”라고 옮겨져야 한다. 또한 같은 작품에 있는 “사실 그는 대칭과 가벼운 시간적 혼란을 좋아했다.”(276쪽)라는 대목은 “현실은 대칭과 약간의 시대착오를 좋아한다.”로 번역되어야 한다. 여기서 황병하는 주어와 시제를 잘못 파악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한편 ‘칼의 형상’에서는 “나는 최근에 북쪽 지방을 지나다가”(191쪽)로 되어 있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북쪽 지방들을 여행했을 때”라는 것이 정확한 번역이다. 그리고 ‘픽션들’에 실린 여러 단편에서 황병하는 ‘체스’와 ‘장기’를 구별하지 않은 채 거의 예외 없이 ‘장기’라고 옮기고 있지만, 배경과 인물에 따라 상이하게 번역하는 게 좋다고 보인다. 이런 실수들은 작품 전체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지장을 주지는 않지만, 번역의 신빙성에 많은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가독성과 해당국의 수용가능성이 중요

외국작품을 우리말로 옮길 때는 번역의 충실도뿐만 아니라 가독성과 해당국에서의 수용 가능성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황병하의 번역본에는 많은 역주가 달려있다. 아마도 이것은 1994년 출판 당시 역자가 보르헤스의 작품에서 언급되는 많은 인물과 지명 혹은 철학적 지식에 대해 독자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에 기인할 것이다. 특히 리얼리즘 사조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에서 독자들이 ‘픽션’, 즉 허구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읽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고, 실제로 그 당시에는 그런 노력이 요구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르헤스의 ‘픽션들’이 정식으로 출판된 지 13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문학은 많이 바뀌었고, 독자들도 더 이상 리얼리즘에 집착하지 않는다. ‘픽션들’이 20세기 후반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현실의 지시물을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사용하고, 기존에 진리라는 이름으로 수용되거나 이성적으로 포장된 모든 것이 결국의 인간이 만들어 낸 또 다른 허구임을 깨닫게 하면서 이루어진다. 이제는 그런 지시물을 허구로 읽으면서 ‘픽션들’이 보여주는 허구적 이야기의 참맛, 즉 독자들의 호기심 유발, 교묘하게 구성된 서스펜스, 뜻하지 않은 결말 등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번역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송병선 / 울산대·중남미문학

필자는 Pontificia Univ. Javeriana에서 ‘<여인들의 유희>와 <거미 여인의 키스>에 나타난 상호텍스트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르시아 마르케스, 보르헤스 등의 소설을 번역했고, <보르헤스의 미로에 빠지기> 등의 저서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