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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로 분석, 조립으로 조합…“창의와 비평의 균형키워”
해체로 분석, 조립으로 조합…“창의와 비평의 균형키워”
  • 이재영 한동대 기계제어
  • 승인 2007.02.2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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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공학교육의 가능성

무술의 달인들은 허와 실을 분명히 한다. 허를 더욱 허하게 하고 실은 더욱 실하게 한다. 그래서 허를 공격당해도 전혀 타격을 입지 않는다. 그러나 실을 공격받는 순간 실을 허로 바꾸고 허를 실로 바꾸어 항상 실을 보호한다. 유연한 허와 실의 교체는 무예의 기본일 것이다.

▲ 수강자들은 기계를 분해하면서 분석하고 조립하면서 개별 참인 명제를 조합하는 훈련을 받는다.

최근 공학교육의 진흥을 위해 창의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양한 창의적 아이디어 발상법이 소개되고, 이것이 공학교육의 혁신의 중요한 요체로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창의성에 지나치게 매달리다 보니, 얼마나 엉뚱한 아이디어인가를 놓고 갑론을박하기 마련이다. 일견 의미가 있는 발상이어도 이것은 전혀 창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버려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판단이 되었어도, 이것이 실제로 구현되는 예는 매우 드물다. 그러면 마치 어떤 일반적인 사회현상의 법칙이라도 발견한 듯이 1%만 성공해도 대단한 것이라며 합리화에 나선다.

필자는 어설프지만 오랫동안 서예를 해왔다. 서도를 배우는데 가장 힘들고 지겨운 부분은 임서수업이다. 남이 쓴 글을 놓고 그대로 쓰려고 흉내 내는 수업이다. 그러나 참으로 희한하게 그 끝없이 흉내를 내던 임서수업의 끝자락의 어느 날 자신만의 글씨체가 튀어 나오는 신비로운 현상이 있다. 모든 서예의 달인들이 이 과정을 거쳤으니, 임서수업은 사실 우리 동양인이 내세울만한 대단한 교육 방법이 아닐 수가 없다.

도대체 끝없이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이 창의성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처음부터 괴팍하게 자기 길을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선생은 그저 좀 다르다 저쪽이 힘이 없다, 이런 추상적인 소리만 하니 마음의 고통은 더욱 증가하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신의 글씨가 툭 튀어나온다.

이런 방식을 수업에 도입해보기로 했다. 창의적인 생각을 위해 골몰하기 보다는 임서처럼 기존의 것을 흉내 내어 보라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일회용 카메라, 비디오테이프 감는 기계 등 주변에 흔한 싸구려 물건들을 구해오라고 했다. 해체 수업이 진행되었다. 이들 기계가 어떤 기능을 하는 지는 학생들이 더 잘 안다. 하지만 이들을 부수어 기계요소들을 찾아내게 하였다. 찾아낸 기계요소에 딸린 원리와 설계 지식을 조사하여 발표하게 하였다. 이러한 해체 지식을 통해 학생들은 각 요소를 분석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각 요소를 CAD로 그려 보라하자, 생전 배운 적이 없는 CAD 프로그램을 귀동냥을 배워 그려왔다. 어떤 학생은 그런 기계 제도에 흥미를 느끼기도 했다. 이후 프로그램은 조립 수업이었다. 이는 분석(analysis) 이후에 개별 참인 명제를 조합하는 조합(synthesis) 과정이다. 잘못 분해한 학생들은 이 부분에서 애를 먹었다. 애를 먹은 이유는 부주의하게 분해과정에서 손상시켰던 부분들이 조합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서서히 시스템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요소요소를 이어주고 지지하는 요소들의 중요성을 조립수업에서 인식하였다.

분석과 조합의 과정을 끝내고 나서는 개선수업을 하였다. 이 시스템을 개선해 보자는 것이었다. 여기서 수없이 많은 아이디어가 명멸하였다. 이 순간을 학생들은 제일 고통스러워했다. 이미 공학적인 완성도가 상당한 제품을 개선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그래서 약간 엉뚱하지만 분해 과정에서 익힌 요소 기술을 이용하여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수서 곤충 로봇을 만드는 일을 해 보았는데, 많은 학생들이 소금쟁이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였다. 물론 그렇게 작게는 못했지만 20센티미터에 달하는 소금쟁이들을 만들어 뒤뚱거리는 풍경을 연출하였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기존의 교육 방식이나 창의적 공학 설계와 다소 다르다. 어떤 의미에서 이 들을 조합한 중간 단계의 교육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공학 교육은 원리를 교육하고, 각종 개발된 기계요소를 가르친다. 수많은 지식을 가르치고 나서, 예제를 풀도록 하고 나서 시험을 통해 학생의 실력을 평가한다. 이러한 방식은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이 이와 관련한 문제를 잘 풀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하는 일반적인 생각을 지지한다. 그러나 학교의 성적 우수 학생이 실제로 문제해결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되는 것으로 보아 기존 교육에 맹점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반면 최근 유행하는 창의성 교육의 경우, 창의적 아이디어 발상법으로 마인드맵을 위시하여 롤 플레이법, 트리즈 등 다양한 방식이 교육되고 있다. 트리즈의 경우는 물-장 분석을 통해 문제를 분석하므로, 자연과학의 원리에 정통한 사람에게는 문제해결의 가능성이 커지나, 다른 방식에서는 방법에 대한 평가를 해내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해체와 조합 그리고 창조의 단계를 거치는 창조적 모방 교육은 차별성을 갖는다. 그러나 창조적 모방 교육은 기존의 교육을 더욱 살찌운다. 창조적 모방의 과정에 학생들은 호기심을 갖게 되고, 호기심으로 출발한 학습은 가장 강력한 학습동기를 유발하므로, 기존의 교과목 수업이 당연 활기를 띄게 마련이다. 필자가 실험적으로 행한 교육을 통해 한 가지 경험한 사실은 타과 교수들로부터 들은 즐거운 핀잔이었다. "바로 교수님 수업이지요?", "왜 그러세요?", "어제도 어는 학생이 찾아와 이것저것 한 시간을 묻고 떠났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에 궁금함을 품은 학생을 생산할 수 있다면 교육의 반은 성공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모방은 창조성을 말살 시킬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모방이 갖고 있는 부정적 시각이 존재한다. 모방으로 끝난 공학은 윤리적 지탄을 받아야 하나, 모방을 창조의 길로 뚫어낼 때 창의성 교육의 맹점을 해결하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그것은 창의적 사고(creative thinking)가 항상 간과하기 쉬운 비평적 사고(critical thinking)를 키워주기 때문이다. 비평적 사고 없는 창의적 사고는 결과물을 낼 수가 없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현실화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공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좋은 공학의 대부분은 신의 창조물을 모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생체 모방 공학(biomimetics)이란 것이 아마 그 중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모방의 과정에서 비평적인 사고를 충분히 습득하고 이를 통해 창의적 사고가 잠재의식에서 자라날 때 그 모양과 방향을 정해주게 된다면 이는 상호 보완적이며 실제적이다.

이제 우리는 오른발과 왼발처럼 창의적 사고와 비평적 사고를 갖추어야 한다. 창의성을 발휘할 순간에는 비평적 사고가 허가 되고, 비평적 사고가 발휘될 순간에는 창의적 사고가 허가 되는 허와 실의 간단없는 굼실거림이 있어야 한다. 교수는 전 과정에 비평을 해주는 마에스터로서 존재할 필요가 있다. 공학교육의 국제화를 위해 공학인증 등이 중요하게 거론되는 요즘,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교육 방식에 주목하고 그것에서 세계적인 교육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존재함을 심각하게 바라 볼 때가 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

이재영 / 한동대 기계제어공학부 교수, 한동글로벌에디슨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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