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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대에 띄우는 등기우편] 크기들에 대해서
[인터넷 시대에 띄우는 등기우편] 크기들에 대해서
  • 교수신문
  • 승인 2001.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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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25 09:51:31
강은교 / 동아대·국문과

필그림케이, 아직도 마음이 어두운지?
크기에 대해서 어제 이야기 한 것 말이다. 간판의 크기에 대해 이야기하였었지?거기 가면 커다란, 너무 커다란 간판이 나를 압도한다고. 더구나 그것이 밤하늘에 푸른빛으로 비추어지고 있을 때는 기괴한 느낌까지 들었다고.
집에 돌아올 때 그 느낌은 더 커졌다고. 우리 집 앞 빌딩들도 거의 간판으로 몸을 싸고 있고, 그 중에는 입간판이 길거리까지 나와 있는 것들이 많은데, 그 중에는 ‘돼지세상’이라는, 돼지고기 전문 식당의 너무 큰 간판이 눈에 띈다고. 그 간판은 늘 나에게 ‘너희들은 모두 돼지이노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고.
아무튼 너무 커지고 있다. 간판이 커지듯 문명의 크기도 너무 커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문명의 크기와 거기 비례한 ‘욕망의 크기’, ‘분노의 크기’도 따라서 한없이 커져 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뉴욕 쌍둥이 빌딩에서 일어난 폭파사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무너진 빌딩의 크기도 어마어마하지만, 거기에 부딪쳐 건물을 폭삭 주저앉힌 비행기의, 그 뜨거운 제트 엔진의 크기도 어마어마하다. 또한 그 제트 엔진을 ‘110층도 무너뜨릴 수 있도록’ 달군 테러리스트들의 자살 폭파라는 극한의 ‘분노의 크기’, 정말 어마어마하다. 거기에 그 테러의 주인공으로 지목받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의 재산, 또한 어마어마하다. 그는 온갖 곳에 은행이며 마켓이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오사마 빈 라덴은, 기사에 의하면 또 인터넷의 왕이라고도 한다. 이메일 하나로, 위성전화 하나로 미국과 그렇게 멀리 떨어진 거리에 있는 중동에 앉아서 그 큰 일을 계획하고 지휘하였다고 한다.
옛날과는 달라진 ‘距離의 크기’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정보화라는 거인은 세계를 어마어마하게 가까울 수 있는 距離로 만들었고(그 괴물 거인이 지구를 손아귀에 넣어 우그러뜨리는 모습을 나는 자주 생각한다), 반면 거기 비례하기라도 하듯 인터넷은 우리의 욕구들을 한없이 크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욕구의 크기’는 ‘초능력의 분노한 인간(Super-Empowered Angry Man-뉴욕타임스 프리드먼)’을 태어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지금 ‘분노의 크기’는 ‘문명의 크기’를 압도하고 있다. ‘죽음의 크기’도 ‘생명의 크기’를 압도하고 있다. 이 한없이 커지고 있는 ‘크기들’이 원래의 제 크기로 돌아가는 날은 언제일까, 110짜리 빌딩이 연기를 뿜으며 한순간에 주저앉는 장면을 보면서 어젯밤 번역하다만, 중동의 시인 K.지브란의 시 몇 구절을 떠올려 본다.
“…이들 집 속에 그대들은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가.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 그대들은 평화를 간직하고 있는가. 그대들 힘을 보여줄 말없는 충동인 평화? … / 손님으로 찾아 와서는 이윽고 주인이 되고, 드디어는 주인의 또 주인이 되는, 음흉한 자인 안락? // 아, 그 자는 길들이는 자가 되어 갈고리와 채찍으로 그대들을 보다 큰 욕망의 꼭두각시가 되게 한다. / 비록 그자의 손은 비단결 같을지라도 그자의 가슴은 쇠로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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