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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간 다리품 팔아 야생들풀 종자은행 구축
17년간 다리품 팔아 야생들풀 종자은행 구축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1.09.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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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14 10:26:14
한톨의 들풀 씨앗을 받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17년동안 누빈 한 학자의 노력이 국내 최대의 ‘토종 들풀 종자은행’을 탄생시켰다.

고려대 ‘야생초본식물자원 종자은행’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식물종의 대부분을 포함한 1백과 1천2백20초중에 속하는 4천4백39종의 종자를 수집한 것으로 밝혀져 주목을 받고 있다. 식물종 다양성 보호와 유전자원 확보의 첨병역할을 하는 곳이 종자은행이고 보면 그 성과는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순전히 한 교수의 무던한 고집과 집념으로 이룩된 성과라는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바로 그가 강병화 고려대 교수(54세·생태환경공학부).

강 교수는 1984년 고려대에 부임하면서부터 혼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남들이 잡초라 거들떠 보지 않는 초본식물의 종자를 모았다. 국내의 부박한 토착식물 종자 보존과 관리실태를 아는 사람이라면, 종자수집에 들여야 하는 공을 아는 연구자라면, 강 교수가 그동안 받아낸 4천여종 들풀 씨앗의 참된 진가를 감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야생 초본식물의 종자만을 찾아다녔다면.

“들풀의 종자를 받는 일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싹이 터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는 전 생육과정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지역에서만 자라는 들풀의 경우 때를 놓치면 씨앗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멀어도 달려가야 합니다.” 조금만 일찍가도 씨앗이 결실을 맺지 않고, 조금만 늦어도 씨앗이 떨어져 버리기 때문에 헛걸음하기 일쑤라는 것이 그의 설명.

“한 종자를 받기 위해 어떨땐 15~16시간을 운전하기도 했습니다. 정작 씨를 받는데는 5분밖에 걸리지 않는데도 말이죠.” 제주도의 들풀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새벽 비행기로 내려갔다가, 마지막 비행기로 돌아오는 강행군도 마다하지 않았다.

김교수는 지난해에만 씨앗을 받기 위해 1백96일 동안 산천을 헤집고 다녔다. 올해도 벌써 절반이상을 밖에서 보냈다. 그렇다고 강 교수가 강의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른 교수와 다름없이 학부 두 강좌, 대학원 한 강좌를 맡고 있다.

그가 이렇듯 들풀 종자의 수집에 고집을 부려온 것은 버려진 들풀이지만 유전자원의 효용성이 언제 증명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야생 식물은 저항성이 뛰어난 형질을 많이 지니고 있어 육종의 소재로 이용이 가능하고, 환경오염에 대한 식물개선법 재료로 쓰일 수도 있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는 식물자원을 이용하고 분석하는 기술은 축척돼 있지만, 재료 확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연구개발 속도가 느리다”며 “어떤 식물이든 유전자원의 종자확보는 응용연구를 위한 기초작업”이라고 강조했다.

종자은행측은 보유한 종자를 유전자원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국내연구자에게만 분양하고 있다. 또한 홈페이지(http://seedbank.korea. ac.kr)를 통해 98종의 자원식물 사진 8백장을 설명과 함께 수록해 학습장으로 제공하고 있다. 물론 이 또한 강 교수가 씨앗을 받으며 틈틈이 찍은 사진들이다. 종자은행측은 “앞으로 재정지원이 계속 뒷받침된다면 10년내에는 야생 초분식물의 70% 이상을 수집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들풀을 쓸모없는 잡초로 깎아내리는데 대해 강 교수는 하나의 지론을 들려준다. “엄밀한 의미에서 윤구병 선생 말대로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죠.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그는 아마 오늘도 들풀의 생육상태를 살피기 위해 어느 산천을 누비고 있을 것이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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