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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공간만을 담은 기품 있는 절제미
필요한 공간만을 담은 기품 있는 절제미
  • 이상해 / 성균관대 건축학
  • 승인 2007.02.0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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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란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 사당을 말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 최고의 사묘건축으로 단연 종묘정전을 으뜸으로 뽑았다. 조선왕조 5백년의 역사와 정신이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종묘는 유교 건축으로서 사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단순하고 절제된 기품있는 미를 보여준다.


 

서울에 있는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거나 왕실과 관련된 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그 중에서도 악(樂), 가(歌), 무(舞)로 구성된 종묘제례악에 맞추어 행하는 종묘제례는 그 자체로 탁월한 무형유산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무형적 가치 이외에, 종묘는 외부공간이 자아내는 신성함과 엄숙함으로 종묘를 찾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주는 건축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종묘의 중심을 이루는 정전 일곽은 사방으로 네모나게 담장으로 둘러 싸여 있고, 남쪽 담장 중앙에는 신문(神門), 동쪽에는 제례 때 제관이 출입하는 동문, 그리고 서쪽에는 악공과 종사원이 출입하는 서문이 각각 나있다.

종묘제례를 거행하는 모습. 종묘는 왕조의 상징이기도 하다. 유교문화권 가운데서는 종묘가 유일하게 보존되어 운영되고 있다.

 

남문인 신문을 통해 묘정으로 들어갈 때 받는 공간적 감동은 가히 충격적이다. 신문의 가운데 문은 원래 혼령이 다니는 통로이다. 이 신문에 들어서면 정전 일곽은 죽은 자의 공간이 어떠한 곳인가를 보여준다. 바로 눈앞에는 동서 109m, 남북 69m가 되는 넓은 묘정 월대가 펼쳐 있고, 멀리 북쪽에 길이가 101m인 정전 건물이 동서로 길게 서있다. 묘정 월대는 제관과 집례관들이 제사를 드릴 때 도열하는 공간으로, 아악과 여타 의식 절차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월대는 단(壇)의 일종인데, 지면으로 부터 단을 높여 종묘가 죽은 자의 혼이 머무는 천상의 공간임을 암시한다.

 

월대는 하월대와 상월대로 구성되어 있다. 하월대의 중앙에는 남북을 잇는 신로(神路)가 신문에서 정전 앞의 상월대 아래까지 연결되어 있다. 신로와 접한 동쪽 한 곳에는 검은 전(塼)을 깐 방석 모양의 부갈위판이 있다. 부갈위판은 궁궐의 혼전에서 3년상을 치르고 종묘로 이안되는 왕이나 왕비의 신위를 종묘에 모실 때 의식을 행하는 곳이다.

종묘 정전은 상월대 북쪽에 있는 기단 위에 서있다. 정전은 묘정을 향하는 앞면에 퇴칸이 나 있고, 나머지 세 면은 벽체로 감싸 내부를 어둠의 공간으로 만들어 신성함을 높이고 있다. 앞쪽의 퇴칸 기둥 사이는 벽체가 없이 묘정으로 트여있다. 정전 내부로 출입하는 문은 각 칸마다 두 짝씩 달렸는데, 그 맞춤이 정연하지 않고 한쪽 문짝이 약간 뒤틀려 틈새가 벌어져 있다. 이 틈새는 죽은 자의 혼이 드나들게 하기 위한 상징적인 장치이면서, 공기가 통하도록 해서 내부의 습기를 제거하는 역할도 한다.

정전 내부는 전체가 트인 하나의 공간으로 되어 있으며 뒷벽에는 각 칸마다 신주를 모신 감실을 두었다. 정전은 당(堂)은 같으나 실(室)은 달리하는 ‘동당이실제도(同堂異室制度)’를 따른 건물이다. 정면 내부 뒷벽에는 제상과 감실이 각 칸마다 배설되었으며, 감실과 감실 사이는 발을 늘어뜨려 칸을 구분하고 있다. 각 감실에 모신 신주는 서측에 왕, 동측에 왕비의 위치가 되게 봉안되었고, 감실 전면에는 신탑(神榻)이 있어 제향 때 신주를 모신다. 신탑 뒤에 있는 신주장(神主欌) 좌-우에는 각각 책보장(冊寶欌)을 배설하였다. 감실 주위에는 사방과 천정으로 황색의 망건장을 쳤으며, 앞에는 따로 황색의 외면장을 쳐서 마치 생전의 침상과 같이 꾸몄다.

종묘는 전주시 풍남동에 있는 경기전과 많은 점에서 다르다. 경기전은 조선 태조의 영정을 봉안한 곳이다.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와 태조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은 이런 점에서 다를 뿐 만 아니라, 경기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본전 건물 전면 가운데에 왕릉의 정자각(丁字閣)과 같은 건물을 덧달아 내어 제사를 지내는 점이 종묘와 다르며, 둘레에 회랑을 두르고 남쪽 회랑 가운데에 내삼문을, 다시 그 밖으로 외삼문을 둔 배치 형식도 종묘와 다르다.

동서로 긴 장방형 평면을 한 맞배지붕 건물인 본전의 공포가 다포인 점도 익공으로 지은 종묘와 다르고, 건물 내부에 두 개의 고주를 세우고 그 가운데에 단(壇)을 놓고, 단 양옆으로 일산과 천개를 세운 점도 종묘 정전의 내부와 다르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다.

종묘 정전의 건물 배치는 개별적으로 대칭에서 벗어난 구성을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대칭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예로서, 정전 동.서월랑을 보면, 남북축을 중심으로 대칭적인 배치를 하고 있으나, 그 세부 처리는 그렇지 않다. 동월랑은 트여 있으나 서쪽 것은 벽으로 막혀 있어 대칭 속에서 비대칭을 읽게 한다. 뿐만 아니라 종묘는 대칭적인 배치 속에서도 변화를 담고 있다.

 

 

 

  정전 신로는 남문인 신문에서 시작되어 묘정을 이루는 상월대 계단에 가 닿아 있는데, 미묘하게 중심축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대칭인 듯하지만 정확하게 대칭이 되지 않게 처리하고 있다. 정(靜)을 통하여 동(動)을 느끼게 하는 배치를 해서 대칭적인 묘정 월대와 기단, 그리고 지붕에 동적인 기운이 감돌게 한다.

뿐만 아니라, 종묘건축에는 의례공간의 위계가 반영되어 있다. 건물의 기단과 처마와 지붕은 위계에 따라 높이를 달리하고 있다. 정전 신실과 좌-우 협실, 그리고 동.서 월랑 지붕, 처마와 기단 윗면의 높이는 신실, 협실, 월랑의 순으로 낮고, 기둥 지름과 높이도 마찬가지로 신실, 협실, 월랑으로 가면서 작고 낮게 처리되어 있다.

또, 종묘는 제례를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화려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종묘의 모든 건축 처리는 극히 단순하고 절제되어 있다. 묘정 월대와 기단 위의 건물은 신로를 표시하는 선, 몇 개의 판위, 그리고 장식이 배제된 건축 구조 등 과감하게 생략된 조형과 단순한 구성을 하여 종묘에 구현해야 할 건축 의도를 잘 성취하고 있고, 단청도 극도로 절제되었다. 이와 같이 종묘건축에는 신로, 월대, 기단, 담 등 꼭 있어야 할 것만 있고 그 속에 필요한 공간만 담고 있다. 이러한 구성, 구조, 장식, 색채의 간결함과 단순함은 종묘건축을 상징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종묘 정전은 동시대의 단일 목조 건축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추정된다. 하지만 유교사상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인지 규모에 비해 검소한 모습니다.

 

종묘건축에서 읽는 단순하고 절제된 건축구성은 종묘건축을 자체 완결적이고 기품 있는 건축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는 상징적인 의미까지 읽게 해준다. 그것은 마치 일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초월하여 그 속에 죽은 자와 산 자가 한데 어울려 영적인 교류를 가능케 하는 듯하다. 그것은 종묘에 신성한 힘이 항상 감돌게 하는 원천이다.

서울에 있는 종묘는 태조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한 1394년 12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인 1395년 9월 29일에 준공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선조 41년(1608) 정월에 중건 공사를 시작하여 5개월 후 광해군이 즉위한 후에 완공하게 된다. 그 후 몇 차례 중건을 거쳐 현재의 규모로 되었다.

우리나라의 종묘는 기본적으로 중국 북경에 있는 명.청 때의 태묘와 같이 엄격한 좌우대칭적인 배치를 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 지세에 순응하도록 필요한 건축물들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전체적으로 건물을 구성하는 축을 통일시키지 않고 있다. 중국의 태묘와 마찬가지로 예제(禮制)의 적용을 받아 종묘가 건립되었지만 중국의 그것과 건축 형식과 배치에서 다르다. 이는 예제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고 하기 보다는 이해는 같게 하지만 적용에 차이가 있음을 뜻한다. 이는 종묘건축제도의 한국적 수용으로 해석해야 할 부분이다. 뿐 만 아니라 북경의 태묘는 현재 그 기능을 상실하였지만, 종묘는 아직도 그 기능이 살아있어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상해 / 성균관대 - 건축학

필자는 미국 코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한국위원회 위원장이다. 주요 저서로는 ‘종묘, 서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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