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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극장 늘려야"… 장기공연 고려해 볼 만
"전용극장 늘려야"… 장기공연 고려해 볼 만
  • 원종원 순천향대
  • 승인 2007.02.0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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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Ⅰ] 한국 창작 뮤지컬의 구조적 문제

평소 가깝게 지내는 공연 평론가가 요즘 우리 뮤지컬 산업이 르네상스기를 맞는 것 같다고 해 이야기꽃을 피운 적이 있다. 모 일간지에 다달이 볼 만한 뮤지컬 10여 편을 소개하는 기획물을 함께 작업하고 있는데, 매월 늘어나는 작품의 수적 증가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지난해 12월 우리나라 무대에 오른 뮤지컬의 작품 수는 무려 44편에 달했다. 전통적으로 비수기로 구분되던 1월에도 막을 올리는 뮤지컬은 30여편이 훌쩍 넘는다. 매일같이 뮤지컬을 본다 해도 한 달에 채 다 볼 수 없을 만큼 수적인 증가는 가히 폭발적이다. 물론 이들 모두가 관객 동원에 성공하거나 소위 ‘짭짤할’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뮤지컬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손 치더라도 이렇게 많은 수의 작품이 일시에 경쟁을 벌이며 동시에 무대에 올려지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극히 보기 드문 현상이다.


그러나 뮤지컬 시장의 급속한 팽창이 자연스레 뮤지컬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아직 의문부호다. 뮤지컬을 문화산업으로 정의하자면 그 안에는 단순한 소비 뿐 아니라 일련의 창조적인 역할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 그리고 작곡자, 작사가, 기술 스텝 등 전반적인 창작 인력이 고루 갖춰져 공급과 수요의 탄력성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뮤지컬 시장은 늘어나는 수요에 비해 질적으로는 안정적인 공급이 이뤄지지 못하는 기형적 성장의 과도기적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뮤지컬 시장의 이면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 같은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통상적으로 뮤지컬 작품들은 크게 창작 뮤지컬과 수입 뮤지컬로 구분된다. 이중 수입 뮤지컬은 다시 저작료를 지불하고 한국어로 번안해 한국의 현지 연출가와 한국 배우들에 의해 우리말 무대가 재구성되는 라이선스 뮤지컬(혹은 번안 뮤지컬)과 배우와 스텝 모두 외국인으로 구성돼 짧고 한정된 기간 동안 무대를 올리는 투어 뮤지컬로 나뉘어 진다. 한국 뮤지컬 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서울에 올려진 뮤지컬은 총 1백15편에 달한다. 이중 수입 뮤지컬은 전체의 36% 수준인 44편이었던 반면, 창작 뮤지컬은 64%인 71편이다(이중 투어 뮤지컬은 15%인 6편이고, 라이선스 뮤지컬은 85%인 34편에 달한다).

수적으로만 본다면 창작 뮤지컬이 수입 뮤지컬의 두 배에 육박하는 규모이다. 그러나 질적인 평가에 이르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대부분의 창작 뮤지컬들이 대학로를 중심으로 한 소극장에 올려진 반면, 대극장 은 거의 수입 뮤지컬들에 의해 독식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즉, 라이선스 뮤지컬 중 약 62%가 5백석 이상 규모에, 투어 뮤지컬은 세 작품에 두 작품 꼴로 1천석 이상 규모의 공연장에서 막을 올린 반면, 창작 뮤지컬은 78%가 5백석 미만 극장에서 상연됐으며, 특히 이들 중 절반에 가까운 38편이 2백석 미만의 공연장에 올려졌다. 우리 대형 극장들에서의 수입 뮤지컬로 ‘쏠림’현상을 여실히 체감할 수 있다.


경쟁력을 갖춘 창작 뮤지컬의 등장을 위해서 배려되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우선 좋은 작품이란 단순히 천재의 한 끗 손길을 거쳐서만 탄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작품의 뼈대야 예술가에 의해 창조되겠지만, 그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바탕이 되는 ‘토양’을 먼저 갖춰야 한다. 뿌리 내릴 자리도 없이 열매만 바라는 것은 잘못된 기대이다. 좋은 작품의 출현을 기다리기에 앞서 그러한 ‘물건’이 등장할 수 있는 구조적인 시스템의 구축, 환경의 조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창작 뮤지컬의 육성을 위해 선결되어야할 과제 중에는 전용극장의 확충 문제가 있다. 뮤지컬 전용극장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의 필요성이 있다. 첫째는 장기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전용극장이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극장가처럼 한번 히트를 기록하면 관객이 찾는 한 쉬지 않고 막을 여는 이른바 오픈 런(open run)이 가능한 인프라의 확충은 좋은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환경이다. 또한 장기공연은 제작비의 효율적인 배분을 가능하게 해 매출액을 분산시켜주는 효과를 가져다주며, 이는 다시 티켓 가격을 안정적이고 현실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제반 환경을 조성해준다.


전용극장에 관한 두 번째 측면은 극장의 구조적인 결함에서 출발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규모 극장들은 뮤지컬에 적합하지 못한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뮤지컬에 적합한 구조란 무대와 객석이 최대한 가까워야 하며, 무대의 좌우 폭은 좁으면서도 백 스테이지 공간이 충분히 확보돼야 하고, 노래나 대사의 효과적인 전달이 가능한 음향적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대부분 서양 뮤지컬 극장들의 오케스트라 피트가 무대 아래쪽에 위치해 스테이지와 객석 사이의 물리적인 공간을 최소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요건들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우리의 대형 무대들은 덕분에 객석 앞쪽에 앉아도 무대가 멀리 보이는 열악한 구조를 만들어 낸다. 브랜드 가치가 높은 수입 뮤지컬들보다 이제 막 성장하고 있는 우리 창작 뮤지컬들에게 이 같은 결함은 치명적인 약점이자 악순환의 고리로 작용될 수 있다.


무대를 시작하고 공연하며 고쳐가는 관행도 수입에 비해 창작 뮤지컬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주요한 원인이다. 이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는 트라이아웃이나 프리뷰 제도의 한국적 도입을 들 수 있다. 먼저 트라이아웃이란 본격적인 공연의 개시에 앞서 인근 도시에서 실험 무대를 갖는 것을 지칭한다. 예를 들어 브로드웨이 공연에 앞서 시카고나 워싱턴 등지에서 무대를 꾸며본다든지, 웨스트엔드 입성 이전에 영국 지방도시에서 시범 공연을 먼저 올림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점검한다는 의미다.

반면, 프리뷰란 공연을 정식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일정 기간 무대에 적응하는 시기를 두는 것을 말한다. 프리뷰 때에도 정식 공연처럼 입장권을 판매하긴 하지만, 대부분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된다. 막이 늦게 오르거나 기술적인 문제로 극이 중단되는 해프닝도 있지만, 환불소동 같은 극한적인 상황은 여간해선 전개되지 않는다. 대부분 정식 오픈전의 실험 무대라는 것을 감안하고 공연장을 찾기 때문이다. 프리뷰 기간이 일정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다. 제작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진행된다. 흔하진 않지만 프리뷰 기간이 더 필요하고 판단되면 정식 개막을 늦추는 경우도 있다. 단단한 쇠붙이를 얻기 위해 큰 불을 피우는 대장장이처럼 완성도 있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위한 무대 예술가들의 열정은 이 같은 구조적인 장치들에 의해 담금질되어진다. 그래서 프리뷰 기간에는 언론이나 비평가도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불문율이다.


뮤지컬평론가. 필자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등을 번역했고 ‘미스 사이공’ 예술자문, ‘비밀의 정원’ 예술 감독을 맡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뮤지컬 티켓 없으면 훔쳐라’,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 등이 있다.
물론 전용 극장의 부재나 장기대관이 불가능한 한국적 시장 상황에서 우리의 창작 뮤지컬들에게 이런 시스템까지 도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창작 뮤지컬에게 중요한 것은 공연을 올리는 것 그 자체가 아니다. 수적 팽창보다는 질적 성장이 필요하다. 환경적 요인에 매몰돼 구조적인 변화와 발전을 외면한다면 수입 뮤지컬과 경쟁할 수준의 창작 뮤지컬 육성은 그저 요원한 과제일 뿐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의 성장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뼈대가 튼튼하지 못한 양적 팽창은 자칫 사상누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화려한 창작 뮤지컬의 등장을 기대하기에 앞서 그런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결과는 과정의 산물일 뿐이다.

원종원/ 순천향대`신문방송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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