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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새로운 씨앗을 뿌리다
창작의 새로운 씨앗을 뿌리다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7.02.05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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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 비평] ‘스페셜 갈라’ 1월 19일~20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

신년 초에는 갈라(gala) 공연이 있다. 갈라는 본래 축제의 일종이지만, 국내에서는 오페라나 발레의 절정 부분만 따로 추려서 무대에 올리는 형식으로 특화되었다. 주로 검증된 명작들이 그 대상이다 보니, 음악이나 춤의 기량을 맛보는 호사 취미로 전락한 것이 보통이다. 올해는 이러한 갈라 시장에 새로운 의욕이 돌출하였다.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발레단이 함께 손잡고 한 무대에 서는 ‘스페셜 갈라’(1월 19일-2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가 기지개를 켠 것이다. 사실 오페라나 발레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비껴나 버린 예술 장르이다. 미디어와 테크놀로지 그리고 영상 같은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독자적인 순수 영역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스페셜 갈라’ 같은 현실적인 기획은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에 가능한 새로운 예술적 종합을 갈망하는 빛이 어려 있지 않은가.

1부의 무대에는 이러한 종합의 빛이 희미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갈라로서는 나무랄 데 없는 공연이 펼쳐졌다. 검은 두건을 일제히 쓴 합창단이 <카르미나 부라나>의 서곡 ‘오, 운명의 여신’을 장엄한 저음의 합창으로 막을 밀어 올릴 때, 그 무대에는 발레 무용수들이 춤을 담당하고 있었다. 거의 읊조리는 듯 한 탄원과 기도가 있는 노래와 춤이 충분히 만나고 있었다. 물론 그 만남의 형식은 작곡자 칼 오르프의 공명 형식을 충실히 재현하는 선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오페라 <아이다>에서도 ‘개선 장면’을 극적인 음악으로 스펙터클화할 때, 발레 무용수 2명이 코끼리를 탄 여인들로 장식하였다. 아직 음악과 춤이 만나는 밀도는 매우 미미했고, 재해석도 없었다. 이쯤 되면, 창작의 가까운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지 의심이 갈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페라의 선택은 그럭저럭 구색을 갖추었지만, 갈라라고 하는 상투적인 행사의 틀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국내 작곡가의 작품으로 오페라 <천생연분>이 있었지만, 시종일관 바닥을 긁는 듯 한 노래는 가사의 전달이라는 부분에 함몰되어 있었다. 오페라에 적합한 한국어의 구사라는 음악적 언어의 문제는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비근한 예로 랩(rap)에서 동일한 문제를 해결했던 서태지 같은 음악가가 없는 상황이다. 어쨌든 오페라가 합창과 춤 사이의 균형추 역할을 해야 했는데, 그런 중개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시간이 흐를수록 장르의 벽은 허물어지지 않았고, 단지 ‘규모의 경제’ 속에서 합동 갈라를 한다는 혐의만이 짙어졌다.

이 오페라 목록을 토마스 베른하르트 같은 이가 봤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오페라에는 딜레탕티슴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 오페라만이라도 흥미롭다면야, 그러나 지금은 그 오페라도 전혀 재미가 없습니다. 작품도 나쁘고 오페라 가수도 나쁘며 게다가 교향악단도 엉망이지요.”(<옛 거장들> 중에서) 물론 연주 수준이나 음악 수준을 폄하하려는 것이 그의 발언 의도는 아니다. 단지 오페라가 아도르노가 말하는 ‘재고품 음악’ ‘신성불가침의 전통음악’이란 낡은 관념에 의해 선택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는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이 작품군이 나쁘게 다가오는 큰 요인이다. 신년 갈라라는 의례적인 행사로 회귀시킬 의도가 다분하긴 하지만, 어쨌든 춤과 합창이 있는 종합적인 갈라라면 오페라의 본령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내는 재해석이 아쉬웠다. 대체 오페라 <아이다>라든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가 발생시키는 그 무의미한 전시 효과나 통속적 감상주의는 어떻게 받아들이란 것인가. 이미 소박성을 상실한 채, 음악적 정주에만 기대고 있는 형국이다.

합창은 시종일관 <카르미나 부라나>에 기댔는데,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까. 12번 ‘구워진 백조의 노래’에서 우스꽝스런 퍼포먼스가 음악과 만나고, 13번 ‘나는 수도원장’이 해학적인 노래로 재현된 것은 재미있게 평가할 만하지만, 지나친 일색이라고 생각된다. 거의 <카르미나 부라나>의 분해와 산개에 불과하지 않은가.

발레의 경우는 무난하게 <스파르타쿠스>와 <지젤>을 선택하였다. <스파르타쿠스>는 인간 존엄의 가치를 선언한 노예 스파르타쿠스가 연인 프리기아와 사랑을 나누다가 마치 혁명의 횃불처럼 그녀를 들어 올리는 아이콘을 부조시켰다. 이것은 러시아 발레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이기도 한데, 러시아의 거장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국립발레단과 합작하며 남긴 유산으로서는 최상의 문화 자산이기도 하다. 또한 신년에 볼 수 있는 갈라로서는 가장 멋진 작품이다. 반면, 낭만 발레의 대표작 <지젤>은 숲의 어둠과 환영에 시달리는 알브레히트를 구원하는 죽은 지젤의 표현력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내용을 떠나 발레가 내놓을 수 있는 정감 있는 표현의 집대성 같은 가치는 있다.

이렇게 ‘스페셜 갈라’의 1부가 각 장르의 전형적 재현을 위주로 한 부분적인 협력이 있었다면, 2부는 <카르멘>이란 텍스트가 어떻게 음악과 춤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는 것인가를 새삼스럽게 주목하게 하는 우직한 대비가 있었다.

비제의 음악은 명랑하다. 니체는 비제의 이 음악을 “사랑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비극적 장난”이 이토록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는 작품은 없다고까지 했다. 동시에 그는 유럽의 교양 있는 음악이란 한계를 전제하면서 남방적인 색채, 잘 그을린 감수성을 진단하고 있다. 확실히 오늘날 이 오페라는 무대의 변화무쌍한 역사를 다소 잊은 듯 한 맥락은 있지만, 음악은 여전히 감성이 포획할 수 없는 사랑의 공포를 현상하고 있다. 추희명이 부른 카르멘과 류정필이 부른 돈 호세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비물질적 사건이 강도 높게 다가온다는 진실을 여과 없이 들려주고 있었다.

반면, 춤은 스웨덴의 거장 마츠 에크가 안무하여 도발적인 현대성으로 가득하였다. 니체는 아프리카의 명랑성이라고 지적하며 무어인의 춤을 떠올렸지만, 마츠 에크는 동일한 비제의 음악에서 치명적인 위험을 현대 발레의 유혹으로 표현하였다. 가령, 원작에서 카르멘이 여송연을 마는 공장에 다닌 것으로 설정된 사실에 착안하여 여송연의 담배연기를 무대 가득 직접 피워올리고, 안달루시아의 강렬한 열기를 원색 의상의 발레로 조형하였다. 돈 호세는 사랑이란 이름의 액자에 갇힌 듯 벽을 보고 끊임없이 제자리 달리기를 하고, 카르멘은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동선을 해방시켰다. 그리고 죽음과 파국에 이르는 장면이 극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시각과 청각의 대비는 앞으로 이 3개 메이저 공연 단체가 복합장르 창작에 나설 경우의 예비 단계에 해당한다. 이 단순한 대비조차도 차이를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어 영감 적이다. 촉감적인, 다감각적인 향연으로 나아가게 하여 감각의 종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가령, 오페라 가수가 부대한 신체임에도 그 강도 높고 밀도 짙은 음악으로 뭇 여인들에게 에워싸인 돈 호세를 유혹하는가 하면, 동일한 장면을 발레리나는 뭇 남자들 사이로 종횡무진 몸짓의 현란한 전개로 가져간다. 이때 소리의 리듬과 몸짓의 리듬이 대비되는 효과가 정확히 하나로 겹쳐진다면? 단순한 호사 취미였던 갈라가 새로운 예술의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시간차만을 생략한다면, 이 ‘스페셜 갈라’의 2부에서 시연된 <카르멘>은 일정하게 그 요구를 수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스페셜 갈라’ 공연은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 작곡이 없는 클래식과 오페라, 안무가 없는 발레라는 정체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구음, 오케스트라 연주, 그리고 발레가 수평적 만남, 횡단적 만남을 이미 하고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음악적 리듬, 무용적 리듬이 만남의 형식을 통해 신체라는 전체 감각을 회복할 수 있는 첫 단계가 이미 조성되었다. 앞날을 기대한다.

김남수 / 무용평론가

필자는 2001년 무용예술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었고, 2003년부터 무용월간지 몸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프리랜서로서 젊은 세대의 창작을 주목하고 있으며,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안무에 관심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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