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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지배' 대안 추상적 수사에 그쳐
'기업지배' 대안 추상적 수사에 그쳐
  • 유팔무 한림대 사회학
  • 승인 2007.02.05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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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서평]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 (김동춘 지음,길,554쪽, 2007)

김동춘 교수의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성찰의 범위는 매우 방대하다. 저자가 성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주제들은 한국사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것과 직접 연동된 미국 주도의 세계화 현상, IMF 사태, 기업과 노동, 사회과학, 지식인의 현실과 임무, 계급이론과 사회운동, 민족문제 등등 매우 폭넓고 복잡하기까지 하다.
이런 주제들은 서론과 5개의 부, 21편의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저자가 지난 10년 동안, 그러니까 1997년 IMF 상황에서부터 최근 2006년까지 여러 시점에서 쓴 논문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편집되었다.

목차를 통해 저자가 성찰하는 주제들이 어떤 것들이고 어떤 순서인지를 잠시 살펴보자면, 우선 이 책 내용을 총괄하는 서론은 87년 이후의 민주화 이후, 즉 90년대 한국사회가 ‘기업사회’, 즉 기업이 노동자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각 분야를 지배하는 사회로 변화했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두 가지 정도의 독특한(?) 주장들이 펼쳐진다. 하나는 민주화가 아직 제대로 되지 못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의 지배와 권력이 기업의 적극적인 노력과 정부, 지식인 등의 ‘아부’, 일반인들의 일상적인 살아남기 경쟁과 무관심 속에서 국가권력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두르는 시대, 이른 바 ‘기업사회’로 변모했다는 주장이다.   

본론에 들어가서는 “탈분단시대 지식인의 역할”, “한국 사회과학의 탈식민 과제” “1980년대 한국사회성격 논쟁 회고”, “IMF 위기를 한국 지식인들이 왜 못 읽게 되었는가”, 그리고 “한국의 우익과 자유주의, 자유주의자, 그리고 지식인, 지식권력”을 주제로 한 3편의 논문들이 이어진다.

제3부에는 서론에서 언급한 민주화 문제를 다시 다루면서 기업은 교체되지 않는 권력이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글에서부터 시작하여 “IMF 시기, 강요된 세계화와 한국의 국가, 자본, 노동”, “한국자본주의의 성격 재론”, 그 다음 노동자 문제를 다루는 2편의 논문들과 한국 사회운동의 위기를 논하는 논문으로 이어진다. 제4부와 5부는 “민주화의 주도세력”이라는 타이틀 하에서 80년대 계급론과 변혁론을 끌어들여 재론하는데, 민주화, 국가/시민사회의 이슈와 결부시켜 새로운 시작에서 재론하는 셈이다. 그 다음에는 한국에서의 ‘학벌주의’ ‘가족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시민운동과 민족문제 등에 대한 논문들로 이어진다. 

이 책은 이처럼 방대한 주제들에 대한 진지한 성찰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사회과학 연구자들이라면 일독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심이 가는 주제들만 뽑아서 읽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토론거리들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에 사회과학 분야를 처음 접하는 젊은 학도들에게는 좋은 교양서이자 토론 교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적극적 대안제시 없이 '대안론'만

그렇지만, 이 책의 구성상 앞 뒤 논문들 사이에 논리적 일관성이나 통일성은 부족하다. 어차피 연구서라기보다는 모음집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좀 전문적인 관심 속에서 기대를 갖고 이 책을 대하는 경우에는 책의 구성을 더 논리적으로 구성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의문이 든다.  예를 들어 왜 결론의 위치에 있는 논문들이 민족문제와 관련한 것들이고, “기업사회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 아니었느냐 하는 점이다.  저자는 또 이 책 곳곳에서 여러 가지 주제와 영역들에 대한 성찰들을 진행하는 가운데 “그러니까 사태를 새롭게 인식해야 하고, 이제 새롭게 대안을 모색해 나가려는 노력을 시작해야한다”라는 식으로 소결을 맺곤 하는데, 사실은 좀 미온적이다.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이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식이다.

저자의 이와 같은 책 구성과 처신(?)은 아마도 저자가 이념적으로 민족주의 성향에 가장 많이 기울어 있기 때문, 그리고 80년대에 진행되었던 거대담론의 해악에 대한 비판적인 자세, 거기에 뒤따르는 망령에 대한 공포와 조심스러움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성격 논쟁, 한국자본주의 논쟁이 이제 너무 늦었지만 새로운 형태로 부활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사회과학과 한국사회 미래는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이 책에서도 과거의 사회성격논쟁을 보충, 보완하면서 재연, 부활시키는 계기가 될 만한 논문들을 여러 편 싣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책 제목에 얌전히 부제로 들어간 ‘기업사회’ 론은 저자의 한국사회 성격론인 셈이며, 독자들이 간파하기 어렵겠지만, 노동자 상태를 연구한 논문이나 가족주의, 학벌주의를 논하는 논문들, 또 민족주의를 다루는 몇 편의 논문들은 다 직, 간접으로 한국사회성격, 한국의 자본주의 및 기업지배 구조, 나아가서는 사회운동의 일 구성요소들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저자가 미처 명확한 연관을 종합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이 점 이 외에도 사실 불만은 두 가지 정도가 더 생긴다. 
하나는 저자가 많은 논의를 할 때, 저자 자신은 은근히 빠지고 남들에게만 “인식을 새롭게 해라, 이제 정신 차릴 때가 되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문제를 지식사회학적으로 성찰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지 않느냐 하는 불만이다. 그래서 다른 하나의 불만도 생겨날 수 있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냐” 하는 불만이다.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라는 말만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이야기이다. 솔선수범하여 제시해야 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예를 들어 IMF 사태를 지식인들이 예상해 내지 못한 점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첫째로는 이런 사태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으므로 - IMF 사태가 발생한 지 벌써 10년이 지나 - 늦었지만, 연구를 열심히 해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 급작스런 남북통일이 IMF 처럼 닥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여기에 대해서도 21세기 통일한국 시대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에 대한 대비책, 즉 통합한국사회는 어떤 사회경제 체제와 정치체제로 가야하는지, 또 그렇게 갈 수 있도록 모델을 만들고 실현가능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식의 암시도 하고 있다. 

"저자 자신은 비판 모면할 수 있나"

이런 식의 논의들은 사실 진부한 논의이다. 우리나라 지식인, 학자, 사회과학자들은 양철냄비 체질이었고, 시류를 좇아 이슈가 되면 몽땅 그리고 몰려갔다 금세 나 몰라라 하고, 그래서 축적이 안 되고, 현실변화를 읽어내지 못한다는 등은 물론 옳은 이야기이다. 장인정신이 특히 사회과학자들에게는 부족하다는 데 대해서는 거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저자 자신은 그런 비판을 모면할 수 있을까. 그 대표적인 주제 하나가 대안논의이다.

90년대 초 사회주의 몰락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아주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저자는 그에 뒤이은 국내에서의 거시적 대안논의나 미래전망에 관한 논의는 다루지 않고 있으나, 사실 자본주의사회, 신자유주의 압력과 정책, 그 한 측면에 불과한 기업지배의 확산 등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은 이미 큰 것들이 다 제시되고 논의된 바 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은 논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기초로 서 있는 기업지배만 주로 문제 삼으며, 기업지배에 대한 대안도 몇 줄의 추상적 수사로 그치고 만다. 마비된 예속의식에서 헤어나, 다시 사회와 정치가 기업을 통제할 수 있는 쪽으로 가야한다는 정도이다.  통쾌무비한 대안의 제시, 그것을 통한 80년대적 희망의 복원은 이제 불가능한 시대로 넘어 왔는가? 

유팔무 / 한림대·사회학
필자는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이데올로기와 계급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1·2’, ‘한국의 시민사회와 새로운 진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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