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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출판사의 인수합병, 본격적인 팩션의 지배"
"대형출판사의 인수합병, 본격적인 팩션의 지배"
  • 이구용 임프리머 코리아
  • 승인 2007.01.2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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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출판동향-문화 지식 흐름의 개괄적 진단

최근 수년 사이에 어떤 책들이 세계 독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돌아보고, 또 앞으로 어떤 책들이 관심 대상으로 떠오를 것인지를 예측해 보는 작업은 전 세계의 지식과 정보 문화의 흐름을 가늠해 보게 한다는 차원에서 유용성을 지닌다. 따라서 세계 출판시장의 흐름을 이끌고 있는 해외 출판 선진국들의 출판시장 동향을 짚어본다는 것은 출판 산업 측면에서의 시장점검이라는 차원을 넘어 전 세계의 문화와 지식의 흐름을 진단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본 졸고는 미국 출판시장을 중심으로 지난 1, 2년 사이에 그곳에서 어떤 변화와 현상들이 있었으며, 또 올 한 해에는 어떤 분야의 책들이 세계 독자들의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를 것인가를 몇 권의 책을 통해 전망해 보는데 한정한다. 우선, 작년 한 해의 세계 출판시장의 분위기를 크게 두 가지로 압축했다.

첫째, 대형출판사들의 초거대화 경향이다. 작년 2월에 프랑스의 아쉐뜨 출판그룹이 타임워너북그룹의 인수합병을 공식 선언했다. 그럼으로써 아쉐뜨 리브르는 피어슨과 맥그로힐 출판그룹에 이어 매출규모 세계 3위의 자리에 올라섰다. 그리고 바로 지난 11월 중순에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경제, 경영, 학술서를 펴내는 와일리 출판그룹이 영국을 대표하는 학술전문 출판사 중 하나인 블랙웰출판사를 공식 합병했다. 인수 가격은 5억7천2백만 파운드(한화 1조295억원 가량). 이처럼 세계 출판시장은 더욱 거대한 프로젝트를 꿈꾸는 대형출판사간의 인수합병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세계 출판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외에도 리버딥(Riverdeep)은 휴튼미플린(Houghton Mifflin) 출판사를 17억5천만 달러에, 리플우드 홀딩즈(Ripplewood Holdings)는 리더스 다이제트를 16억1천만 달러에, 그리고 인터미디어 파트너즈(InterMedia Partners)는 종교서적 전문출판사인 토머스 넬슨(Thomas Nelson) 출판그룹을 4억7천3백만 달러에 사들이는 등, 한화로 350억원대 규모의 인수합병이 미국에서 작년 한 해에만도 10여 건에 달했다. 세계 출판시장에서 더 큰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진행되는 이와 같은 거대 규모의 인수합병은 올 2007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게 세계 출판 전문가들이 내놓는 공통된 전망이다.

둘째, 팩션소설에 대한 세계 출판계와 독자의 관심은 작년에도 계속되었다. 그 중심에 선 타이틀은 스페인에서 나왔다. 일데폰소 팔코네스(Ildefonso Falcones)의 ‘바다의 성당(La Catedral del Mar)’이 바로 그것이다. 이 소설은 스페인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뒤, 작년 9월 초까지 무려 17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지켰으며, 그 후에도 작년 말까지 줄곧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고수했다. 이 소설은 그간 스페인에서만 팔려나간 부수가 무려 150만 부에 달한다. 해외 번역판권 역시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에 거액의 판권료로 10여 개 나라에 팔려, 영미권 출판시장에서 작년 한 해 동안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해외 타이틀중 하나가 되었다. 이 소설의 저자 팔코네스는 약 4년여 기간에 걸친 작품 구상, 자료수집, 다양한 내용에 대한 고증을 거쳐 이 소설을 창조해 냈다. 14세기 초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의 스토리는 한 시골 지역의 농노 베르나가 새로 맞이한 신부 프란체스카와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시작으로 전개되며, 본격적인 사건의 발단은 그 지역의 영주가 그 결혼식장에 느닷없이 들이닥쳐 새 신부를 납치해 간 후 그녀를 겁탈하고 다시 귀가시키는 데서 비롯된다. 사건의 배경은, 당시 모든 농노의 신부는 반드시 영주와 먼저 첫날밤을 치러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악습을 기반으로 한다. 이 외에도 작년 한 해 동안 미국시장을 비롯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팩션소설로는, 템플 기사단을 통해 중세와 현대를 넘나들며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진실과 이면을 들여다본 역사 스릴러로, 전 세계 32개국에 판권이 팔린 레이먼드 커리의 ‘최후의 템플 기사단(The Last Templar)’, 그리고 4년여에 걸쳐 성서와 신학서적을 탐독한 뒤 예수의 어린 시절을 소설적으로 복원해 낸 앤 라이스의 ‘어린 예수(Christ the Lord)' 등이 있다.

그렇다면 올 2007년의 출판계 흐름은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우선, 소설분야에서는 올 해에도 역시 팩션소설이 세계 독자들의 관심을 계속 이끌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그 중 ‘단테클럽’의 저자 매튜 펄의 ‘포의 그림자(Poe Shadow)'가 첫 손에 꼽힌다. 이 소설은 애드거 앨런 포가 자신의 작품에서 기용했던 탐정 뒤팽을 오늘의 작가 매튜 펄이 다시 불러내어 그로 하여금 포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파헤치게 한다는 골격을 지닌 흥미로운 소설이다. 펄은 2003년에 19세기 미국 문단의 실제 인물들을 소설 속에 대거 등장시켜 단테의 작품을 번역출판하려는 당시 미국 출판계의 움직임과 그것을 막으려고 배후에서 일으키는 연쇄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을 그린 ‘단테클럽’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작가다.

끝으로, 비소설 분야에서는 올 가을로 출간일정을 잡고 있는 세 타이틀이 눈에 띈다. 모두 아직 원고조차 탈고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각 타이틀이 담게 될 내용에 세계 출판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나는, 워너북스에서 출간될 것으로, 정치권 지도자들에게 중요한 시대적 트렌드는 물론 그들의 기호와 습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컨설팅과 자문 역할을 해온 마크 J. 펜(Mark J. Penn)이 집필한다. 책 제목은 ‘마이크로트렌즈(Microtrends)’다. 이 책은 급변하는 라이프스타일, 인터넷 문화, 그리고 글로벌 경제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발생하는 새로운 개인주의 의식이 우리 사회를 또 다른 모습을 지닌 사회로 전환시키면서 ‘마이크로트렌즈’를 생성시키고 있다는 데 기초한다. 저자는 새로운 유형의 비즈니스, 캠페인 운영, 상품 디자인과 마케팅, 나아가 새로운 운동의 전개 전략과 투자전략에 이르기까지의 우리의 미래 모습을 구성하게 될 75가지의 마이크로트렌즈를 새로운 아이디어 정보와 함께 전개할 예정이다.
관심을 끄는 두 번째 타이틀은 예일 법대와 경영대 교수인 아이언 아이레스(Ian Ayres) 와 윌리엄 타운젠트(William K. Townsend)가 함께 집필중인 ‘전문가의 종말(The End of Expert)’이다. 이 타이틀은 ‘수퍼 크런칭(Super Crunching, 초고도로 발달된 컴퓨터 대량 데이터 고속처리)’을 통한 데이터베이스 의사결정(decision making)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바꿀 메가파워를 지니게 될 것이며, 나아가 그것은 현재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전문 인력과 그들의 탐구 등을 대체하게 되면서 기존의 전문 인력들의 전문성과 그들의 직관 등이 데이터베이스 의사결정으로 빠르게 대체될 거라는 이색 전망을 내놓는다.
세 번째 타이틀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컬럼비아대학에서 조교수로 있다가, 현재 다트마우스대학(Dartmouth College) 수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댄 로크모어(Dan Rockmore) 박사의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세상의 다양한 현상들을 수학의 방정식을 응용해서 풀어 설명할 수 있다는, 새롭게 발전된 개념의 독특한 이론을 제시한다. ‘스타일로메트리(Stylometry)'가 바로 그 책으로, 이 책에는 숫자가 글쓰기 방식, 회화(painting) 방식, 작곡 방식, 그리고 사랑의 방식 등을 풀어 해명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이를테면, 각 분야의 예술가들의 영감을 일정한 방정식에 대입하여 컴퓨터에 입력시키면 컴퓨터는 기계어 방정식에 의한 전환과정을 거쳐 투입된 각각의 창조적인 영감을 일정한 패턴을 지닌 ‘숫자의 방정식’으로 변환하여 산출시킨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원하는 수식을 컴퓨터에 입력시키면 컴퓨터는 다 빈치의 ‘모나리자’나 문학작품 등을 현대에도 유사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1886년 미국의 물리학자 토머스 멘델홀(Thomas Mendenhall)은 이미 프란시스 베이컨과 셰익스피어의 글쓰기 스타일을 몇 가지 기준을 통해서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를 한 바 있었으며, 미술 분야에서도 이런 방법론은 과거 하버드대학의 몇몇 학자들을 중심으로 반 고흐 등의 화풍을 풀어보려는 시도에 도입되기도 했었다고 말한다.

이구용 /㈜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 상무이사, /출판칼럼니스트

 

 

필자는 '조셉 콘라드(Joseph Conrad)의 소설에 나타난 제국의 언어' 등의 논문으로 경희대 대학원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성공을 부르는 열두 가지 지혜',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등의 번역서를 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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