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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풍경] ‘요절과 숙명의 작가전’
[예술계풍경] ‘요절과 숙명의 작가전’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09.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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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10 00:00:00

다락방, 깡소주와 줄담배, 허름한 입성으로 더욱 굽어보이는 몸피, 떨림이 멈추지 않는 곱은 손, 간간이 피를 데불고 나오는 쉰 기침, 광기와 체념이 번뜩이며 공존하는 우묵한 눈……. 어찌보면 희화화된, 관습적이며 고루한 정형화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근·현대 ‘화가’의 이미지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예술가란 모름지기, 곤궁하고 신산스러운 생의 문신을 살갗에 박음질하고 태어난 족속이라는 오해를 벗기 시작한 것이 오래지 않은 일이다. 예술을 한다는 것과 밥을 먹는다는 것은 별개의 일인 줄 예술가도 세상도 믿고 있던 그 시절에는, 천수를 다하지 못하는 삶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

예술가의 궁상맞은 풍모라는 것은 세상의 동정과 놀림의 대상이기 십상이었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은 얄궂기도 해서 예술가에게 가난하라, 괴로워라, 곤궁하라, 불행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기도 한다. 하여, 절대 빈곤을 벗고 간혹 가다 예술도 큰돈이 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에게 ‘요절’이라는 말이 주는 울림은 얼마나 매혹적인가!때로 요절이라는 드라마틱한 생의 이력이 작품 앞에 버티고 서서 작품이 작품으로 온전히 이해되는 것을 스스로 방해해왔던 이들이 있다. 얼마 전 유작전이 열린 꼽추 화가 손상기와 구본웅이 그렇고 유서 한 장 남기고 목을 맨 권진규가 그렇다. 지금까지 구구한 전설만 들어왔다면, 이제는 허상의 베일을 걷고 그들의 작품을 봐야할 때가 아닐까.

가나아트센터 개관 3주년 특별전 ‘요절과 숙명의 작가전’에서는 짧은 생애를 치열하게 살다간 17인의 작가를 만날 수 있다. 가나아트센터는 이번 작업을 준비하면서 한국 근·현대의 요절작가 70여명 가운데 ‘미술 이념 또는 양식의 선구자’, ‘극적인 생애’, ‘주목과 평가가 늦은 작가’ 등을 기준으로 정해 고민 끝에 1백여 점의 작품을 골랐다. ‘국민 화가’ 박수근과 이중섭 외에 김종태, 최욱경, 함대정, 송영수, 박길웅 등 조금은 생소한 이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사람 없이 ‘민중미술’을 이야기할 수 없는 판화가 오윤의 작품도 달력 아닌 전시장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

평탄치 않았던 짧은 생과 슬픈 운명을 맞닥뜨리게 되리라 미리 짐작하고 전시장을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편견을 걷고 그림 사이를 거닐어 보는 것은 어떨지.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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