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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누가 역사의 패자인가
[대학정론]누가 역사의 패자인가
  • 논설위원
  • 승인 2001.09.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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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12 17:58:39
“낡아버린 형태를 무덤에 장사지내려고 할 때는 많은 단계를 밟고 간다. 세계사의 한 형태에 있어서의 최종 단계는 희극이다. … 그것은 인류가 명랑하게 자기 과거와 결별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마르크스의 낡아버린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에서 인용한 한 구절이다. 작금의 갖가지 정세에 대입해 읽어보면, 무릎을 탁 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많은 조롱과 웃음거리, 스펙타클한 코메디를 목격하고 있다. 한 시대의 낡은 페이지가 급격하게 풍화하는 장면을 보려면 여간한 인내력이 없으면 안된다.

진흙탕 싸움을 일삼는 정치판의 책략을 탓할 생각은 없다. 정치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그렇게 평생을 추구할테니까 말이다. 그게 웃음거리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코메디를 하는 꼴이다. 정작 조롱하고 싶은 것은, 혹은 조롱당해야 하는 것은 이 책략을 난무케하는, 저 거리를 활보하는 ‘닫힌 사고’이다.

몸집 큰 일부 언론들은 연일 ‘국론 분열’이니 ‘위기’니 부르짖으면서 자신들이 ‘정치권력’에 부당하게 침탈당하고 있다고 약자연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코메디로 보인다. 이들은 ‘언론 자유’를 내걸고 자신들을 옥죄는 정부에 용감하게 대항하면서도 한 사회학자의 사고와 사상, 표현의 자유에 대해 무자비한 히스테리를 드러냈다. 정치집단도 같은 장단에 춤을 추고 있다.

우리 사회가 ‘닫혀있음’을 이것만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달리 또 있을까. 이 이율배반적인 모습 역시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역사의 단계인가.

우리는 지금 과거와 결별하기 위한 용기가 필요한 시점에 서 있다. 증오와 살육, 광기와 히스테리, 독재와 억압, 외세의존과 자기 기만의 ‘얼룩진 시대 풍경’이 백일몽처럼 되풀이됐다. 지난 8·15 평양축전을 둘러싸고 여러 말들이 난무한다. ‘남남갈등’이니 하는 그럴듯한 造語도 등장했다. 갈등이 없을 수 없다. 그게 인간사가 아닌가.

이념으로 갈린 민족이 화해와 평화를 향해 나가는 길은 가시덤불을 헤쳐나가는 荊棘의 과정일 것이다. 남북의 당국자간 대화가 평화에 크게 기여한다면, 민간 차원의 교류도 그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그것은 장차 진행될 통일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며, 또한 통일로 가는 한 단계의 좌표이기 때문이다. 평양축전 방문에서 우리가 봐야할 것은 일단의 ‘해프닝’이 아니라, 화해와 평화로 가는 실체적인 가시밭길의 전체 지도다.

이제 햇볕정책의 대명사로 불리던 주무부처 장관도 교체됐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코메디였지만, 이 또한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징후로 봐야 하겠다. 차제에 정부당국은 대북 정책과 통일 논의를 국민적 합의의 기반 위에서 투명하게 추진하길 바란다. 여·야당에겐 갈등을 성숙하게 풀어내고, 정파를 초월해 민족의 운명에 대해 긴 고뇌를 나눠가지길 주문한다. 역사의 무대에서 도대체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란 말인가. 닫힌 가슴을 열고, 희망의 등불을 밝혀보자.

희극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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