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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곤 譯 권장할 만....좀더 충실한 새로운 번역필요
한형곤 譯 권장할 만....좀더 충실한 새로운 번역필요
  • 김운찬 / 대구가톨릭대·기호학
  • 승인 2006.12.2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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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 비평_최고 번역본을 찾아서 (57) 단테의 『신곡』

 

아마 ‘신곡’ 처럼 번역자를 시험하고 힘들게 하는 작품은 드물 것이다. 가장 큰 이유로 상당한 분량의 백과사전적 지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신곡’ 은 중세 유럽의 지식을 총체적으로 집약하고 있다. 수백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에피소드들, 전설, 고전 신화, 중세의 철학과 신학, 천문학과 지리 등에 대한 이해 없이 단테의 저승 여행을 뒤따라가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원본이든 번역본이든 대부분의 판본에는 많은 역주와 해설들이 덧붙여져 있다. 또한 ‘신곡’ 은 다양한 알레고리와 은유, 다의적인 표현들을 특징으로 한다. 거기에다 3행 연구(聯句), 각운, 11음절 시행(詩行) 등의 운문 형식과 음악성, 리듬까지 작품의 일부를 이룬다. 훌륭한 번역은 당연히 그 모든 것을 고려하고 최대한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쉽게도 우리 나라에는 그런 번역본이 아직 나와 있지 않다.

 단테는 개화기에 이미 소개되기 시작하였으나 ‘신곡’의 완전한 번역본이 나온 것은 1950년대 후반으로 최민순 신부가 옮긴 판본(경향잡지사, 1957-59년)이다. 그 이전에 혹시 부분적이거나 전체적인 번역본이 나왔는지 필자로서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최민순의 번역본에서 저본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탈리아어 원본이 아니라 영어나 스페인어 번역본에서 중역하였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 후 1970년에 들어와서야 임명방의 번역본이 나왔고, 뒤이어 여러 가지 번역본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거의 모든 세계문학 전집에 빠지지 않고 포함되었다. 대략 열거하더라도 유영(1972), 하병호(1974), 허인(1975), 이영숙(1976), 한형곤(1978), 강인웅(1977), 정인섭(1982), 문병선(1983), 최현(1988), 구자운(1991), 김의경(1991), 정노영(1993), 김문해(1997), 최현(1997), 유한준(1998) 등의 번역이 있는데, 출판 연도는 판본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때로는 한 번역자의 작업이 여러 출판사에서 간행되기도 하였다.

또한 대부분 번역의 저본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단테의 이탈리아어 원본에서 옮긴 것은 임명방, 허인, 한형곤의 번역뿐이다. 유영이 10여 종의 영어 번역본과 이탈리아어 원본을 참조하였다고 밝히고 있으나 여전히 모호하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일부 번역본들은 서로 비슷하거나 때로는 완전히 똑같은 경우도 있다. 가령 강인웅과 정인섭의 번역본은 분명히 번역자가 서로 다른데도 글자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다.

그 외에 번안 작품들도 많다. 유한준(1998), 김혜니(1999), 정미옥(2005)은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해 축약하여 번안하였다. 최요한(1994)은 아예 제목을 ‘소설 신곡’이라 붙였으며, 최근의 번안 작품으로 박상진(2005), 최승(2005)을 들 수 있다. 번역과 번안을 구별하는 잣대는 원본에 대한 충실함일 것이다. 번안은 원본을 임의적으로 줄이거나 덧붙임으로써 기본 골격만 유지하고 나머지 부분을 자의적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물론 ‘신곡’ 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번역과 번안을 뚜렷하게 구별하기 어렵지만 간단한 기준이 하나 있다. 번안은 바로 원본의 시행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행의 숫자를 아예 표시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기본적인 요건을 무시하는 상당수의 번역본들은 번안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탈리아어 원본에서 옮겼다고 해서 언제나 중역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다. 최민순의 경우처럼 중역본이 오히려 원본에 충실한 경우도 있다. 거의 모든 번역본이 드러내는 문제점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우선 단테의 텍스트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하다. 번역에 앞서 해석의 단계에서 이미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신곡’ 을 읽고 어렵다고 말하는데, 원본이 어려운 탓도 있지만 대부분 번역자의 이해 부족이나 미숙함이  원인이다. 그 결과 두 번째 문제점으로 우리말의 가독성이 떨어진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표현들이 많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민순과 한형곤의 번역본이 무난한 편에 속한다. 최민순 역은 멋들어진 우리말 용어들과 함께 시인으로서 번역자의 모습을 보여주듯이 시적인 표현들이 돋보인다. 한형곤 역은 이탈리아어 원본에서 옮겼을 뿐만 아니라, 자세하고 풍부한 해설과 역주를 자랑하며 단테의 저승 구조를 보여주는 도해와 그림들까지 제공한다. 둘 다 비교적 원본에 충실한 번역이지만 이따금 가독성이 떨어지는 표현들이 눈에 띄는 것이 흠이다. 원본의 자구에 너무 충실하다 보니 우리말 표현이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다른 번역본들의 경우 판본마다 차이가 있지만 번역상의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여러 번역본에서 공통적인 실수나 오류가 반복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전의 번역본이 이후의 번역본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신곡’ 의 경우 그런 경향이 너무나도 뚜렷하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지적하자면 ‘지옥’ 21-22곡의 에피소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뜨겁게 끓어오르는 역청(瀝靑) 속에서 삶아지는 탐관오리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강둑에 있는 악마들이 고통을 가한다. 그런 악마들의 형벌 도구 또는 무기를 단테는 raffio, uncino, runciglio 등 세 가지 단어로 표현하는데, 모두 ‘갈고리’ 또는 ‘갈고랑쇠’를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말 번역본들은 거의 대부분 ‘(쇠)갈퀴’나 ‘작살’로 번역하고 있다.

최민순의 번역본은 ‘쇠갈퀴’, ‘작살’, ‘갈쿠리’로 옮기고 있는데, 여기에서 갈쿠리는 갈고리의 사투리 표현일 것이다. 어쨌든 이 세 용어는 분명히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킨다. 한형곤은 주로 ‘쇠갈퀴’와 ‘작살’로 옮겼지만 뒤에 23곡 140행에서 ‘갈고리’로 표현하고 있다. 임명방은 ‘갈퀴’로 옮겼으며, 허인은 앞의 해설에서 ‘갈고리’로 설명한 다음 정작 본문에서는 ‘갈퀴’로 옮기고 있다. 유영은 ‘갈고리’로 번역하고 있지만, ‘쇠스랑’도 함께 사용한다. 또한 강인웅과 정인섭의 동일 판본이 ‘갈고리’로 옮기고 있지만, 지나친 생략과 축약으로 번역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그 외에는 거의 모두 ‘(쇠)갈퀴’ 또는 ‘작살’로 되어 있다. ‘갈고리’와 ‘갈퀴’, ‘작살’의 차이는 사소한 것이며 전체적인 흐름에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원본에서 벗어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때로는 사소한 차이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영어 번역본들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영어 번역본들은 여러 가지 용어로 옮기고 있는데, 롱펠로Longfellow는 rake, hook, grapnel, grappling-iron으로, 세이어즈Sayers는 prong, hook, grappling-iron으로 번역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 번역한 맨덜봄Mandelbaum은 prong과 hook으로, 코터Cotter는 여기에다 grappling-hook, fork, pitchfork 등을 덧붙여 옮겼다. 이탈리아어 원본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단어의 사용을 피하기 위하여 다양한 표현을 찾았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갈고리’보다 ‘갈퀴’에 가까운 rake와 prong을 사용하였다. 참고로 ‘신곡’ 의 탁월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꼽히는 구스타브 도레의 판화에서는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삼지창 모양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21곡 100-101행에서 악마들 중의 하나가 두려움에 떠는 단테를 가리키며 자기 동료에게 “Vuo' che 'l tocchi in sul groppone(내가 저 녀석의 어깻죽지를 건드려 볼까)?” 하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여기에서 groppone는 ‘어깨’를 가리키는데, 우리말 번역본들은 하나같이 ‘궁둥이’나 ‘엉덩이’로 옮기고 있다. ‘어깨’로 번역한 판본은 하나도 없다. 악마들의 천박하고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는 그런 저속한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분명히 원본에서 멀리 벗어난다. 이것도 분명히 영어 번역본들의 영향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영어 번역본이 ‘엉덩이’로 옮기고 있다는 점이다. 롱펠로, 세이어즈, 맨덜봄, 코터의 번역본도 하나같이 rump 또는 bottom으로 옮기고 있다.

출처가 불분명한 번역도 있다. 21곡의 137-138행에서 악마들이 자신들의 두목을 향하여 신호를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드러낸 이빨 사이로 혓바닥을 내밀어 보이는 천박한 몸짓이다. 이상하게도 허인을 비롯하여 여러 번역본들에서 “신호로 눈까풀을 까뒤집어 보였다”고 번역하고 있는데, 그 연원과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번역본들 사이의 상호 영향이나 모방 때문일 것이다. 이런 예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거의 모든 번역본에서 오역과 비틀린 문장들이 넘친다. 특히 ‘신곡’ 의 경우 기존 번역본들의 그늘에서 벗어나 좀더 원본에 충실하고, 아울러 우리말 표현에 보다 잘 어울리는 새로운 번역본이 절실히 요구된다.

김운찬/ 대구가톨릭대· 기호학


 

필자는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에서 기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대표 저술로 <현대 기호학과 문화 분석>,  <신곡 읽기의 즐거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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