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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바로서는날 꽃을받겠습니다”
“대학바로서는날 꽃을받겠습니다”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1.09.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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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10 00:00:00
지난 세월의 학문여정을 돌아보며 동고동락한 동료교수들과 돈독한 정을 나누는 훈훈한 정년퇴임식장에서 한 교수가 정년퇴임을 거부했다.

지난달 29일 숭실대 정년퇴임식장의 풍경은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여느 대학의 퇴임식장과는 달리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윤배 총장의 연임문제로 분규가 시작된지 벌써 1년, 그간 대학의 어려움을 지켜보면서 정든 교정을 떠나야 하는 퇴임교수들의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이날 행사장에서 이을형 교수(경제학)는 퇴임사 아닌 유보사를 교수들에게 전했다.

“제 퇴임식은 새로운 총장이 뽑혀 대학이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모습을 다시 갖추는 날 정식으로 하겠습니다. 그 날을 위해 오늘의 퇴임사는 아껴두겠습니다.” 이 교수는 퇴임을 기념해 전달한 꽃도 “시들어도 좋으니 대학에 정의가 바로서는 날 받겠다”며 잘 보관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단상을 내려왔다.

함께 퇴임식에 참석한 김기순 교수(철학)는 교수들에게 초심을 잃지 말기를 당부해 행사장을 숙연한 분위기로 이끌었다. “대학과 법인을 상대로한 싸움이 장기화될수록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처음의 순수한 동기입니다. 초심을 잃어버린다면 고집과 감정만 남습니다. 순간순간마다 자기를 점검하고 도덕적으로 바른 싸움을 이끌어 주기를 바랍니다.”

당일 숭실대에서는 이번 학기로 정년을 맞은 4명의 퇴임 교수를 위해 두 곳에서 퇴임식이 열렸다. 하나는 대학측이 마련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교수협의회에서 마련한 식장. 두 곳을 놓고 고민하던 4명의 교수들은 수 십년을 함께한 동료교수들이 마련한 퇴임식에 참가했다. 이을형 교수의 바램처럼 숭실대가 정식으로 이 교수의 퇴임식을 갖는 날은 언제쯤이 될 것인가.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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