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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주목한다] '계몽의 변증법'
[이책을주목한다] '계몽의 변증법'
  • 교수신문
  • 승인 2001.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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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12 16:31:59

“계몽이란 우리가 마땅히 스스로 책임져야할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계몽주의 철학의 완성자로 불리는 칸트는 계몽을 미성숙에서 성숙한 단계로 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미성년 상태’는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에 걸고 있는 칸트의 희망을 배반한다. 그들에게 계몽은 또다른 ‘야만’일 뿐이다. 그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계몽의 자기파괴’다.

저자들은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기 보다 새로운 종류의 야만상태에 빠졌는가”라는 질문으로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신화와 미몽으로부터 인류를 벗어나게 해준 계몽이 스스로 신화가 되어버리는 역설적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계몽은 이제 “신화로 돌아가지만 이러한 새로운 신화로부터 빠져 나올 방도를 알지 못”하며 그 안에 이미 “퇴보의 싹”을 함유하고 있다. 근대사회를 열어젖힌 계몽의 논리를 분석함으로써 근대사회 전체를 문제삼고 있다.

계몽의 역설에 대한 비판적 분석

이미 기술시대의 고전으로 평가되는 이 책을 새삼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계몽의 시간대에 살고 있으며, 저자들이 비판하고 있는 ‘동일화 논리’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계산가능성’에 지배받는 사회에서 ‘지식’이란 교환가능한, 상품으로서의 지식일 뿐이다. 신자유주의는 전지구적 규모로 삶을 동질화하며, 자연과 인간 그 모두를 동질성의 논리로 위계화하고 있다. 행복한 미래의 시간을 약속하는 기술은, 우리를 옭죄는 또다른 굴레일 뿐이며, 우리는 스스로 기술의 왕국에 충실한 신민으로 살고 있다.

아우슈비츠의 학살과 히틀러의 광기가 창궐하던 2차대전중 쓰여진 이 책은 1947년 암스테르담에서 초판이 출간되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다. 이 책이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계기는 월러스틴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도전이 시작되었다고 말한 1968년 학생혁명이었다. 환경파괴의 가속화, 대량소비사회의 출현, 과학기술의 발전은 ‘비판의 무기’로서 이 책의 진가를 다시한번 상기시키고 있다.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야만인 캘리번은 자신에게 문명의 언어를 가르쳐준 미란다에게 “당신이 제게 말을 가르쳤지요. 제게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저는 이제 저주할 줄을 안답니다”라고 응수한다. 식민제국의 ‘계몽’에 대항하는 ‘계몽의 계몽’의 전략. 이 책의 저자들이 노리는 바도 그것이다. “사유를 사유하라”, “정신의 진정한 속성은 물화에 대한 부정이다”, “진보는 사유의 자기망각과 쾌락의 자기망각에 저주를 내리는 것이다”라는 단상들은 ‘동일성의 지배’에서 벗어날 출구를 예시한다.

서구의 계몽주의가 1910년대 우리에게 뒤늦게 도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국역본은 지난 95년에야 출간되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이번의 번역본은 문예출판사 번역본을 다시 수정 보완한 것이다. 이 책의 국내판권을 가진 문학과지성사가 최초 번역자중의 한 사람인 김유동 경상대 교수에게 의뢰해 다시 출간한 것. 아도르노 전문가인 김유동 교수는 이 책의 수정번역을 위해 전공 학자들에게 일일이 이메일을 보내 번역의 검토를 의뢰, 수정에 참고했다.

전공학자 자문 통해 수정번역 출간

일단 출간되고 나면, 아무런 수정도 가하지 않고 재출간하는, ‘번역자로서의 양식’이 부재한 풍토에서 이런 노력은 보기드문 일이다.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을 번역한 바 있는 홍승용 대구대 교수(독문학)는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수정번역을 하는 시도는 우리 학계 현실에서는 대단히 의미있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아도르노의 저작은 이미 학계에서도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이 책의 초역에 공역자로 참여했던 주경식 강릉대 교수(독문학)는 “저자들의 문장은 독일의 사상가들 중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다. 단락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면서도 사고의 긴장을 팽팽히 유지하는 문장이다”라고 말한다. 역자인 김유동 교수는 “오역의 가능성은 늘 있다. 중요한 저작의 번역에는 관련학계가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재환 기자 weibli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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