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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생생한 역사와 삶의 떨림
[서평] 생생한 역사와 삶의 떨림
  • 주경철 서울대
  • 승인 2006.12.19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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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타이유』 유희수 옮김 | 길 | 2006 | 784쪽

몽타이유는 피레네 산지의 해발 1300미터 지점에 위치한 산골 마을이다. 이단심문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힌 한 주교 덕분에 이 작은 마을에서 7백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질 수 있었다.

물질계에 속하는 모든 것들을 악마의 피조물로 보는 중세의 대표적 이단 카타르파가 압박을 피해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푸르니에 주교가 올바른 신앙의 길로 인도하겠다며 마을 사람들의 행동뿐 아니라 심중의 모든 것까지 낱낱이 밝히도록 취조한 것은 몽타이유 주민들에게는 고통이었으나 역사가에게는 행운이었다.

우리에게는 약간 식상한―그러나 프랑스에서는 별로 쓰지 않는―표현에 따르면 엠마뉘엘 르 루아 라뒤리는 아날학파 3세대의 기수이다. 이 책에서 그는 주교와 그의 심문관들의 ‘심층면접’ 자료를 역사인류학적 방법으로 독해했다. 그리하여 산골마을의 역사 혹은 기껏해야 이단의 역사가 될 법한 자료를 통해 중세사의 걸작이 탄생했다.

몽타이유의 ‘생태학’으로 명명된 이 책의 1부에서는 사회경제적 핵심 단위이자 심성의 보호처라는 이중의 의미를 가진 ‘집(domus, ostal)’을 주로 서술한다. 2부 몽타이유의 ‘고고학’에서는 아침 식사부터 밤중의 섹스까지, 그리고 몸짓부터 사후 관념까지 주민들의 사회관계와 심성에 대해 그야말로 흥민진진한 사실들을 발굴해서 제시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잃어버렸던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면밀하게 재구성되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요약해서 옮길 일이 아니라 직접 읽으면서 즐거움을 느낄 일이다. 그래도 핵심 사항을 지적해 보라면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의 한 구절을 인용해 봄직하다:

“몽타이유는 일시적인 용감한 일탈 그 이상이다. 몽타이유, 그것은 서민들의 생생한 역사요 삶의 떨림이다 … 몽타이유, 그것은 ‘집’의 육체적 따스함이요 농민적 천국의 주기적 약속이다. 집과 천국은 서로의 안에 있으면서 서로를 떠받치고 있었던 것이다.”

지상의 ‘집’과 내세의 구원이 이 마을 생활의 핵심이었다. 그 연원은 정통 가톨릭 신앙도 아니고 과격한 카타르파 이단도 아니다. 역자의 설명대로 “이 마을 농민문화는 유구한 민속문화가 깊은 토대를 이룬 가운데 기독교 문화가 피상적으로 덧씌워졌다는 인상을 준다.”

이 마을은 우리가 배웠던 통상적인 중세사 내용과 너무나도 다른 세계이다. 바로 여기에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삼포제로 운영되는 농지체계, 마을 한 가운데 군림하는 영주의 성채, 귀족과 농노들의 삶을 규정하는 장원제 같은 요소들은 이 마을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곳에서는 마을 공동체가 아니라 ‘집’이 사회경제적 구성의 중심 단위이고, 양의 이동목축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귀족과 농노 사이의 계급구분보다는 믿음의 차이가 더 큰 갈등 요소이다.

한 명 있는 귀족 부인(과부)은 평민 출신 사제를 애인으로 삼고 있다. 이 사례가 웅변하듯이 이 마을의 성적 모럴은 놀라울 정도로 자유분방하다. 교회가 사람들의 생활과 정신세계를 인도하고 지배한다는 식의 설명은 맞지 않는다. 기존의 개설서 혹은 중세사 교과서에서 그림까지 곁들여 가며 설명한 내용들이 결코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실증함으로써 이 책은 우리의 틀에 박힌 중세사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몽타이유는 당시 유럽 전체에서 어느 정도 일반적인 마을 모습이라 할 수 있는가. 만일 일반인이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이 책만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 역시 심각한 오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그려진 것들은 분명 예외에 속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저자 자신이 간헐적으로 이 점을 지적한다.

이 마을은 “북부 프랑스와는 너무나 다르다.” 예컨대 “자크리의 난 때 귀족과 비귀족 간에 벌어졌던 치열한 투쟁같은 것은 이 마을에서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몽타이유와 다른 지역 간의 비교 연구를 시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예외적인 사례를 통해 오히려 아주 내밀한 부분까지 파악한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심층적인 중세사 이해를 위해서는 앞으로 이와 유사한 연구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흔히 할법한 코멘트이리라. 이론적으로는 물론 그렇다. 그러나 주민들의 지나간 언행 하나하나를 이 잡듯 캐고 들어간 기록들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가 몇 백 년 뒤에 대가의 유려한 필치를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그런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날 수 있을까.

주경철 / 서울대·서양사


 

필자는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논문 ‘암스테르담과 쾨닉스베르크 간의 임산물 무역’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문화로 읽는 세계사’, ‘테이레시아스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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