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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풍경] 가을호 계간지 리뷰
[책들의풍경] 가을호 계간지 리뷰
  • 김재환 기자
  • 승인 2001.09.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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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12 16:09:29
계간지는 우리 시대 지적담론의 수준과 향방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최근 일제히 출간된 주요 계간지 가을호에 실린 글들은 언론개혁과 일본의 교과서 왜곡 등 첨예하고 민감한 ‘현안’에서부터 지식인과 지식담론의 정체성을 묻는 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기획들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언론매체를 통해 전개된 요란한 담론의 ‘거품 아래로 깊이’ 스며들어 그것의 허위와 수사를 거두어 내는 것일 터이다.

먼저 눈에 띄는 기획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이다. ‘당대비평’에 실린 야스마루 요시오 히토츠바시대 명예교수의 발언은 이 논의의 한 출발을 이룰 것이다. “교과서를 실증적 역사학의 입장에서 비판하는 일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그러한 비판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 현대 일본의 정신상황을 비춰보는 거울로서 혹은 그 지적 증후군으로서 깊이 독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교과서 문제를 통해 우리 내부의 “정신상황을 비춰보는” 일이다.

국가주의 장치로서의 교과서
‘당대비평’의 특집은 ‘국민 만들기로서의 교과서’. 교과서란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개입과 통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구성원들을 ‘국민’으로서 호명해내는 장치이다. 그것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며, ‘죽은 개인의 사회’를 만들어내는 기제이다. 학교규율도 마찬가지다. 오성철 청주교대 교수(교육학)는 일본과 한국의 학교규율의 유사성을 지적하며, 두 사회의 국민국가형성과정은 “인권의 주체로서의 시민의 형성을 구조적으로 배제하고 있으며 고도로 전체주의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형기 연세대 교수(국문학)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도 같은 맥락위에 서 있다. 그는 신동엽의 시에서 ‘우리들’의 이름으로 자신을 지움으로써, 책임에 대한 성찰을 불가능하게 하는 ‘군중의 정치학’을 읽어내고 있다. 그게 가능한 까닭은 집단에 부여된 ‘도덕화라는 기제’ 때문이다.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을 익명화했기 때문에 신동엽은 “의도와 다르게” 박정희와 공모관계에 놓여 있다.

‘당대비평’의 문제의식은 역사를 담론의 형성물로 파악하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에 크게 힘입고 있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집단적 동원체제’의 구축을 위해 ‘역사’는 통합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는 것. 역사적 사실은 역사서사를 구성하기 위한 자료일 뿐이다. ‘역사비평’은 이러한 실증적 역사학, 민족중심의 역사, 민중사관의 문제와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가능성을 탐문하고 있다. ‘민족중심의 역사’와 ‘포스트모던 역사’의 대립은 팽팽하다.

서의식 서울산업대 교수(한국사)는 민족사관의 유효성을 강조한다. “민족중심의 역사이해가 한국사를 왜곡으로 이끌었다는 지적은 부당하다. (…) 그것은 민족의 성장과 발전과정을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원리 위에서 체계적으로 이해함으로써 민족의 독자성과 자존심을 지키는 동시에, 각 민족의 특수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며, 공존·공영을 추구하기 위한 사관이기 때문이다.” 김기봉 경기대 교수(서양사)의 반론도 완강하다. 그는 “우리는 민족이라는 실체에 대한 이야기가 역사가 아니라 역사이야기가 민족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며 “민족담론이 막대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는, 민족이란 사회적 실재라기 보다 담론적 실재로 존재하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덧붙여 “탈민족적 연대로 문제틀을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의 역사를 구성해온 강력한 서사적 중심으로써 민족주의는 이제 안팎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역사가 역사의 끊임없는 상대화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어떻게 역사(학)의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는가가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서양사학자들이 대개 포스트모던 역사학에 우호적인 반면 한국사학자들이 그 반대인 까닭은 무엇일까.

‘사회비평’의 ‘담론의 모험’도 여전히 눈길을 끈다. 화제를 불러일으킨 ‘창작과 비평 비판’은 우리사회의 지적 담론과 실천에 대해 새로운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평론가 권성우는 ‘창비’의 ‘서평의 정치학’을 좇으며 ‘진보권위주의’와 정론성 상실을 비판한다. 소장 평론가 이명원은 창비의 ‘관조적 진보주의’와 상업주의를 문제삼고 있다. 이들의 비판은 에콜의 논리와 출판행위를 은연중 분리시키고 있는 경향을 문제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창비의 문학론에서 ‘폐쇄적 자기동일성의 논리’를 읽어냈던 권성우의 작업을 기억하고 있는 독자라면, 이번 창비 비판은 변죽만을 울리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서평 ‘태도’ 보다, 창비의 ‘입론’에 대한 비판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창비가 꾸준히 이론화해온 ‘분단체제론’을 과연 ‘관조적 진보주의’로 비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우리시대 ‘지적 실천’에 대한 문제제기
최근 지식인 논쟁과 관련, 김우창 고려대 교수(영문학)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지식인의 마음자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정치와 역사의 선택의 복잡성과 다양성 속에서 이러한 양심의 선택은 현실성에 관계없는 대로 정치의 행동의 한 전범일 수 있다. 반성적 균형, 구체적 느낌의 균형이 끝난 곳에 실존적 균형이 있고, 사실 이것은 역사의 불확실성 속에서 유일한 확실성 일수 있다.”(당대비평) 이 말은 ‘사실판단’이 사라진 채, 정치적 수사만이 횡행하는 지금 현실에 대한 그의 우회적 비판이다. 사물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균형감각을 강조하는 그의 ‘혜안’은 빛나지만, 구체적 현실에 직면해 선택과 판단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무력하다. ‘사회비평’에 실린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의 발언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점일지 모른다.

“지식인의 보편적이고 일반적 거대담론은 많은 점에서 기능적인 실천 혹은 실천적인 담론에 비교해 무의미하고 무기력하다. 혹은 그 자체로 권력담론이다.” “추상적인 비판과 공적인 담론에서 더 나아가 사적인 실천을 드러내라고. (…)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한없이 멀어져버린 지적 비판의 시대에, 우리는 다시 그 둘이 가까워지는 비판을 원하는 것이다.”김재환 기자 weibli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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