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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 인사청문회가 남긴 것
대학정론 : 인사청문회가 남긴 것
  • 논설위원
  • 승인 200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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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29 16:22:40

헌정사상 처음으로 지난 6월 26일부터 이틀동안 국무총리 인준을 위한 인사청문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인사청문회의 실시는 그 동안 시민단체 등을 필두로 대다수의 국민이 꾸준히 요구해온 제도로서 이제 중요한 공직은 일단 적격자를 걸러낼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청문회는 두 가지 점에서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첫째는 이번 청문회 역시 우리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음을 드러내 주었다는 점에서 국민이 맛 본 실망은 컸다. 총리지명자의 경력이 보여주는 화려함의 이면에는 온갖 사회적 부조리와 불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청문회과정에서 당사자 자신이 인정했거나 의심스러운 부분이 지적된 사항들은 ‘전관예우’, ‘위장전입’, ‘농지계량법 위반’, ‘인권유린’, ‘의사당 내에서의 화투판’, ‘정치적 말 바꾸기’ 등 이 나라 최고지도자의 전력으로 믿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두 번째 실망은 우리 정치인들의 수준을 보여주는 청문회의 진행과정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질문과 무성의한 답변, 그리고 낯뜨거운 봐주기식 발언의 난무는 인사청문회가 공직후보자의 인준에 앞서 형식적으로 치루는 통과의례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낳게 했다.

국회가 도입한 인사청문회는 미국의 제도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첫 시도에서 드러난 사실은 겉모양은 미국의 청문회와 비슷하지만 그 내용은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서서 법무장관에 내정된 인사는 그가 법무장관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요건을 훌륭히 구비하고 있다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불법체류자를 가정부로 채용했던 단 한가지 사실이 드러나자 스스로 물러났다. 또한 인준을 위한 투표에서는 적합한 인사를 선택하기 위해 당을 넘어선 크로스 보팅이 미국의회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불행히도 우리국회의 일부 여당의원들이 보여준 아부성 발언 경쟁은 인사청문회의 실효성을 의심하게 만드는데 큰 몫을 했다. 따라서 인사청문회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정치인들의 수준이 더욱 높아져야 한다.

이번의 청문회나 과거의 여러 청문회에서 드러난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도덕적 불감증을 고려할 때, 인사청문회법 논의과정에서 삭제된 공직자의 위증처벌 조항을 살리고, 정부측의 자료제출 거부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요구된다.

또한 국회의원들의 수준이나 준비부족과 관련하여서는 청문특위의 상설화를 고려해 볼만하다. 한시적 특위의 운영은 분야별 전문지식과 축적된 정보에 기초한 청문이 어렵기 때문에 형식으로 흐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에 더하여 청문회 대상을 현행 23명에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장․차관급까지 확대시켜나가는 것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청문의 대상이 확대되고 상설화 된 청문회에서 전문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고위공직자들이 제대로 검증과정을 거쳐 임명되게되면 그만큼 공직사회는 맑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인사청문회는 반드시 제 기능을 다하도록 정착되어야하고, 그것은 이번에 드러난 문제점을 어떻게 완벽하게 보완하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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