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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말 俗談, 맛있게 씁시다”
“지혜의 말 俗談, 맛있게 씁시다”
  • 김명희 기자
  • 승인 2006.12.11 2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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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남북 속담 5만개 수록 대사전 발간한 청주대 정종진 교수

“옛날 성 속담에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번씩 두둘겨 패라’라는 속담이 있지요? 그런데 ‘남자와 멸치는 달달 볶아야 한다’라는 속담은 들어보셨나요? 하하. 이게 바로 요즘 시대에 나온 속담이랍니다.”

속담은 시대마다 새롭게 생산되고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정종진 청주대 교수(51세, 국문학). 정 교수가 말하는 속담이란 ‘조상이 관 밖에 놓고 간 지혜의 말’이라고 할 만큼 당대의 역사와 풍속이 들어가 있어 시대마다 써야 하는 말이고, 지금도 농어촌 등지에서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정 교수가 ‘한국의 속담 대사전’(태학사)을 쓰게 된 계기는 문학 연구를 위해 책을 보면서다.
“문학 연구를 한답시고 책을 읽다보니 기가 막힌 속담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우리는 속담하면 예전 고전 문학하는 사람의 것, 과거의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현대 문학하는 사람들 중에서 입담이 좋은 사람이 많지만 국어사전에는 실리지 않는 말이 많거든요. 문득 ‘아, 이것이 내가 정리해야 할 부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속담 대사전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에는 1만 5천권이라는 책을 통한 속담 수집과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정 교수는 책을 통해 속담을 찾고, 그 연원과 용례를 찾아 틈틈이 농사를 지으며 농부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장터와 들판을 찾아 발품을 팔았다. 속담을 모으는 것도 문제였지만 해석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던 것.

“속담 중에 ‘무 씨앗은 하룻밤이라도 좋으니, 그믐달에 묻어달라고 한다’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의 뜻을 찾기 위해 여러 마을을 다닌 결과 농부들이 비슷한 속담을 쓴다는 것을 발견했지요.”

‘무는 하루라도 빨리 묻어야지 서리가 내리지 않아 충분히 큰다’라는 말과 비슷한 뜻이 담겨있는 말을 찾아냈는데, 그 뜻은 무를 하루라도 빨리 심어야 충분히 굵어진다는 것으로 예전에 무를 음력 7월에 심었는데, 6월말이라도 빨리 심어야 서리가 내리기 전에 빨리 큰다는 것이다.

또한, 속담 대사전은 남한 뿐 아니라 북한, 연변 속담까지 망라하고 있어 남북 언어문화를 비교할 수 있게 되어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사전에는 5만개의 속담 중 1만개가 북한과 연변 속담이 포함돼 있다.

“보통 10개의 속담 중 8~9개는 남북한이 거의 비슷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중국 연변 속담이 북으로 오고 간 것이라고 치면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이지만 남북한이 거의 비슷한 속담을 사용하고 있어 정서적 차이를 느낄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개가 짖는다고 당장 무너지지 않는다’(연변), ‘까마귀 짖는다고 범이 죽을까’(남한) 둘 다 하찮은 것이 던져봤자 소용없다는 말. ‘미운 파리 잡으려다 성한 팔이 상한다’(남한), ‘조상 박대하면 3년에 망하고, 일꾼을 박대하면 당 일이 망한다’(북한), ‘도끼질하는데 도끼 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북한) 큰일을 하려면 작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 교수는 5만개의 속담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속담으로 ‘집안에 노인과 걸레는 꼭 있어야 한다’라는 말을 꼽았다.

“요즘은 노인을 경시하는 풍조가 많아졌잖아요. 저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노인의 지혜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속담은 노인을 걸레와 비교한 것이 좀 그렇지만 노인이 있는 집안은 대소사를 지혜롭게 처리한다는 절묘한 속담입니다. 비슷한 속담으로 ‘도깨비도 나이 먹은 도깨비가 낫다’라는 말도 있지요.”

“요즘 사람들은 너 나할 것 없이 맛있는 것은 찾아서 먹으려 하지만 말을 맛있게 하려고 하는 노력은 하지 않거든요. 속담은 말을 맛있게 해주는 지혜의 말이니 자주 썼으면 좋겠어요.” 

김명희 기자 yout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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