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7:05 (토)
검찰, 학문적 저작에 실형 구형…“학문의 자유 중대 침해”
검찰, 학문적 저작에 실형 구형…“학문의 자유 중대 침해”
  • 김재환 기자
  • 승인 2001.08.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08-29 16:19:47

탈냉전의 시대에도 학문의 자유는 또다시 유린당하는가. 경상대 교양교재인 ‘한국사회의 이해’ 집필과 관련 장상환(경제학과), 정진상(사회학과) 교수에게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의 실형이 구형되자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 상임공동의장 손호철 교수 등)등 관련학계는 “학문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관련기사 3면>

지난 26일 창원지검 김호철 검사는 창원지법 형사3부(재판장 이재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정교수 등에게 실형 구형을 내렸다. 지난 94년 8월, 시작돼 6년여 동안 진행된 이 재판은 학문적 저서에 대해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을 자의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학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실형구형이 내려진 것이다.

김 검사는 검찰논고를 통해 “정부의 대북교류와 국가보안법의 적용은 별개의 문제이며 학문의 자유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면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라며 “‘한국사회의 이해’는 이적표현물이 확실하다”고 선고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피고인측 문재인 변호사는 “이 책은 한국사회의 현실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비판할 뿐 아니라, 북한사회를 찬양하거나 북한의 주장과 일치되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하고 “학문의 자유에 대한 내재적인 제약은 원칙적으로 ‘학문의 자유시장’내의 비판기능에 맡기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검찰의 구형사실이 알려지자 민교협등 관련단체들은 검찰의 시대착오적 인식을 강하고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 26일 재판에 참석, 재판과정을 지켜본 최갑수 민교협 공동의장(서울대·서양사학과)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구형”이라며 “사건을 맡은 검사들의 천박하고 후진적인 인식은 문제 이전에 하나의 코미디”라며 허탈해 했다. 동국대 조국 교수(법학)과는 “학자들의 저작에 대해 냉전적인 공안당국의 시각을 적용하여 판단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남북정상회담으로 탈냉전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됐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구형을 내린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학문활동에 대해 검찰이 국보법을 들이댄 경우는 이번 사건 뿐만이 아니다. 지난 88년 서관모 충북대 교수(사회학)가 출두명령을 받은바 있고, 서울사회과학연구소 사건(1991),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교수 사건(1997), 박지동 광주대 교수 사건(1997) 등 학문적 저서나 활동에 대한 국보법의 악용은 현실의 변화와 무관하게 계속돼왔다.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은 애초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법원이 기각할 만큼 국보법의 적용자체가 무리였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재판을 6년 동안이나 지속해왔다. 학계에서는 더 이상 학문활동에 대해 사법적 잣대를 들이미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레드컴플렉스와 학문의 자유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한 김귀옥 연구원(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은 “우리 무의식에까지 내면화돼 있는 냉전과 반공의 코드를 평화와 통일의 코드로 바꾸기 위해서는 아무리 학문의 자유가 많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건의 최종 선고공판은 오는 24일 있을 예정이다. 학문의 자유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 판결이 어떻게 결정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재환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