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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수상]번역의 중요성
[독서수상]번역의 중요성
  • 강내희 / 서평위원·중앙대
  • 승인 2000.11.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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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화 활성화 시급하다"
논문 한 편 쓰는 일과 번역 한 편 완성하는 일 중 어느 쪽이 학술적으로 더 중요할까? 이 질문은 정밀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으나 한국에서는 질문으로조차 성립하는 것 같지 않다. 정답이 미리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학문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지금 대부분 한 편이라도 논문을 더 만들어내라는 요구 앞에 시달리고 있다. 알다시피 이 요구의 중압감은 최근 대학가에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바람 속에 교수평가제도가 강화되면서 더욱 심해지고 있다. 반면에 번역은 어떤가? 예외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학문의 길에 갓 들어선 초보자의 몫 정도로 취급받고 있는 실정이다.

논문 생산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논문 생산력은 한 사회의 지식 생산력이며, 그런 생산력을 갖춘 학자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회가 그만큼 학문발전과 사회발전의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도 남의 글을 옮기는 일보다는 당당히 자기 이름으로 논문을 내는 일이 더 가치가 있어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학문발전의 관점에서 보면, 학자들이 논문만 중시하고 번역은 등한시하는 지금의 풍토와 관행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훌륭한 번역문화가 없는 사회에서 학문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일본 등 상대적으로 학문이 앞선 사회에서 번역문화가 크게 발전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들 사회는 번역문화의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학문발전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사회의 학문발전을 위해서는 번역문화의 활성화가 필수이다. 번역은 지식대중이 자국어로 외국의 문화와 지식을 수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다. 학문발전은 외국 문화와 학문을 이해하는 지식대중을 필요로 한다. ‘원서’를 읽을 줄 아는 전문가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전문가도 지식대중이 있어야 나오는 법이다. 더구나 지금은 ‘지식기반’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이다.

지식대중이 외국의 학술적, 문화적 성과들을 우리 언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번역문화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원전 번역으로 학위를 수여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 학문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학문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제도는 번역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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