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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實부터 틀려 … 반공·시장경제 지상주의의 오류
史實부터 틀려 … 반공·시장경제 지상주의의 오류
  • 박한용 / 민족문제연구소
  • 승인 2006.12.0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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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_ 교과서포럼의 근현대사 교과서, 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교과서포럼의 ‘한국근현대사 대안교과서’는 근현대사에 대한 시각, 서술 체제, 사실에 대한 기술, 사실에 대한 해석 등 다방면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교과서 포럼 집필자들은 다음과 같은 인식에서 출발한다 : “대한민국은 60년의 건국사에서 원식민지 국가 중에서 비견할 예를 찾기 힘들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이 같은 지난 60년간의 놀랄만한 성취”의 역사적 동력은 “대단히 활발하고 우수하고 풍부한 기업가 능력”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또 이러한 문화능력은 17~19세기의 소농사회에서 “가정경제의 계획과 규율과 실행의 능력”이 축적된 데로 그 연원을 거슬러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일제의 조선 지배는 조선인의 입장에서는 수탈당하는 역사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식된 근대를 주체적으로 소화하고 나름의 형태로 정착시키는 문명 전환의 과정이었음을 강조했다. 해방 후 대한민국은 이렇게 접합하기 시작한 근대문명을 소중히 보존하고 발전시켰으며, 북한은 일제가 제정한 모든 법률과 기구를 폐기해버림으로써 곧 바로 문명의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간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과 그 해석에서 심각한 오류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일제가 조선을 영구 지배를 위해 다른 어느 제국주의보다도 식민지에 근대문명을 이식하는 데 열심이었다고 강변한다. 일제에 의해 초등교육의 기회가 널리 보급되었고, 근대 학술이나 문화·예술의 새로운 사조가 도입되었으며, 경성제국대학과 같은 최고교육기관이 설립되었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인구의 대다수를 점하는 조선인들에게는 초급교육의 기회만이 간신히 부여되었으며, 상급학교에로의 진학은 한줌도 안 되는 일본인 학생의 몫이었다는 사실은 지적하지 않는다. 식민지의 최고 학부인 경성제국대학 또한 조선인의 민립대학설립운동을 방해하고, 지식청년들에게 제국의 이념을 주입하기 위해서 설립된 배경을 생략했다. 이들은 일제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조선의 근대화를 촉진시켰고 일제 강점기 구축된 인적·물적 인프라가 해방 후 특히 박정희정권시기 고도성장의 역사적 바탕이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교과서포럼의 중심단체인 낙성대연구소에 한때 몸담았던 허수열 교수는 그들이 제시한 통계자료를 재분석하면서 일제강점기의 농업개발, 공업개발, 조선인 인적자본의 형성 등에서 일제 강점기 ‘개발’에 따른 외형적인 성장은 확인되지만 그 이면, 즉 경제개발의 과실이 일본인과 조선인 가운데 누구에게로 돌아갔는가를 분석해보면 실상은 “개발 없는 개발”에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8·15 해방 전후 일제가 남긴 식민지 성장의 유산이란 것도 매우 제한적인 것이었으며 이나마도 분단과 한국전쟁을 통해 거의 소멸되어, 오늘날 한국 경제 성장이 일제의 개발의 성과에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다는 주장이 허구임을 지적했다.

교과서포럼은 일제식민지를 정당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일제 강점기의 경제성장을 일면적으로 높이 평가해 사실상 식민지와 제국주의의 기본 관계마저 시야에서 사라졌다. 해방 후 한국사에 대한 인식 또한 오류와 문제투성이다. 이들은 냉전체제 하의 분단을 필연적 귀결로 전제하고 남북을 아우른 통일정부수립운동을 폄하했다.

대신 이승만의 단정노선이야말로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들은 1960년대의 경제성장마저도 일제 식민지기로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서도 정작 6·25전쟁의 원인에서는 분단체제의 수립을 외면하고 북한의 남침야욕이라는 피상적 수준에서 파악하고 있다. 이승만의 10년 독재마저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은 시기로 파악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들이 해방 이후 한국사를 보는 시각의 근저에는 ‘반공·시장경제 지상주의’가 깔려 있다. 자본주의시장경제는 민주주의와 등치되고, 북한과 대비해 자본주의를 채택한 남한은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고 따라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정통 국가이며, 박정희는 남북 통일과정에서 남한주도의 통일의 위업을 마련한 위대한 지도자로 부각한다.

그리고 이들의 성장지상주의는 인간의 모든 고귀한 가치를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둔다는 점에서 반인간적이며, 국가주의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박정희 유신체제를 “국가적 과제달성을 위한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 즉 국가총동원체제라고 규정하였다. 교과서포럼은 “(일제시기) 전시총동원을 통해서 사회 전반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통제·지배력이 창출”되었으며 이것은 “경제건설기의 한국에서 유효하게 활용”되었다고 평가했다.

교과서포럼은 이러한 총동원체제를 경제성장을 위한 효율적 시스템으로 파악함으로써, 경제 운용의 효율성이 인간적 권리마저 짓밟을 수 잇다는 논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천박한 경제성장지상주의에 있는 한 그들에게 일제의 조선공업화와 근대문명의 이식과정에서 항일운동은 경제적 비용 손실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시기 경제성장에 있어서 민주화운동 또한 경제성장의 걸림돌일 뿐이다. 그리고 국가는 곧 위대한 통치지도자와 일체가 되면서 박정희에 대한 지도자 숭배사상으로 이어진다.

반공주의와 성장지상주의에 기초해 인간의 모든 가치는 국가적 성장의 수단으로 전락되어도 무방하다는 것, 그리고 북한과의 적대적 경쟁과 대한민국 정통성 수호와 이에 입각한 흡수통일론이 이 시대의 좌표이며, 미국과 일본만이 우리의 영원한 우방이라는 것이 이 교과서의 핵심이다.

 

 

 

 

 

 

 

박한용 /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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