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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의 순수한 세계”…‘우를루프’ 철학의 의미
“동심의 순수한 세계”…‘우를루프’ 철학의 의미
  • 박희숙 화가
  • 승인 2006.12.07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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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의 전시_장 뒤뷔페전(덕수궁미술관, 2006. 11. 10 ~ 2007. 1. 8)

□ 자화상Ⅱ, 종이에 마커, 1966
장 뒤뷔페(Jean debuffet, 1901~1985)의 작품들은 ‘그림은 아름답고 장식성이 있어야 한다’는 르누아르의 말을 반박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동심의 순수한 세계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장 뒤뷔페의 작품들은 ‘그림은 아름답다’라는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하다. 그의 그림들은 재치가 넘치고 재미있다. 

처음 우리나라에 공개된 그의 작품들은 낯설지만 삶의 풍요로움이 마음껏 표현되고 있다. 장 뒤뷔페의 예술세계는 우리를 결코 어렵거나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들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장 뒤뷔페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새로운 미술운동으로 용광로 같았던 프랑스 화단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모던 아트에 대한 아카데믹한 개념을 탈피하여 자신의 사상을 설명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또 뒤뷔페는 자신의 작업을 보급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의 작업방식을 택해 대규모의 작업실을 운영했을 정도로 실용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모자를 써 보는 여인’은 뒤뷔페의 두 번째 아내 릴리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그는 1934년에 만난 아내 에밀리 카를루(릴리)를 모델로 많은 초상화를 그렸는데 이 작품은 그녀의 초상화 중에서도 꽤 자유스럽게 표현된 작품이다.

그가 장식적이거나 가식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지양하고 그녀를 그린 초상화 연작의 하나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벌거벗은 채 붉은 소파에 앉아 있는 여인은 기쁨의 미소를 짓고 있다. 손을 들어 올려 붉은 색의 모자를 머리에서 만지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장난기를 머금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모습이다. 밝은 표정의 그녀는 이 작품 속에서 행복을 숨기지 않는다.

□ 모자를 써 보는 여인, 73×60cm, 캔버스에 유채, 1943
뒤뷔페는 당시 유행하던 미술사조를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릴리를 그렸고 그녀를 그린 연작들을 평생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작품들은 주제나 형식면에서 뒤뷔페의 예술세계가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우를루프의 정원’은 뒤뷔페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가장 긴 연작인 ‘우를루프’는 뒤뷔페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으면서도 가장 이해받기 어려운 작품이다. ‘우를루프’의 이미지는 1962년 전화를 하면서 붉은 색의 볼펜으로 아무런 생각 없이 낙서를 하던 중에 착상을 얻은 것이다. 뒤뷔페는 낙서의 형태에 매료되었다.

그는 이것을 잘라 검은 색의 배경 위에 올려놓으면서 세포조직 같은 생명체의 움직임과 조화를 발견했다. 이것이 우를루프의 시초가 된다. 뒤뷔페는 이전 작업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새로운 리얼리티를 보여주게 된다.

장 뒤뷔페는 1944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인간의 실존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던 시기를 지나 1953년부터 1960년까지 아상블라주 시기를 거쳐 우를루프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뒤뷔페는 1962년부터 1974년까지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한 ‘우를루프’ 연작에 매달렸다. ‘우를루프’는 1962년 제작된 책의 제목에서 나온 이름이다. 이 책에는 뒤뷔페가 만들어낸 방언으로 쓰여진 텍스트와 함께 하얀 바탕에 붉은 색과 파란 색으로 그린 데생을 잘라서 붙인 작품이 소개돼 있다.

우를루프 정원, 130×97cm, 캔버스에 비닐물감, 1966.
이 작품은 검은 색 테두리 안에 서로 다른 수백 개의 모티브가 얽혀 있다. 붉은 색과 파란 색은 공간 안에서 서로 변화하면서도 결코 검은 색 테두리 밖을 나가지는 않는다. 그 안에서 붉은 색과 파란 색은 융해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 속의 사물은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고유의 영역을 지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모티브가 복잡하지만 색상이 단조로워 화면이 산만하게 보이지 않고 통일감이 있다. 

뒤뷔페의 우를루프가 낙서에서 시작되었지만 주제는 인간, 풍경, 일상의 오브제들이다. 우를루프를 통해 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모습을 단순하고 즉흥적이고 꾸밈없는 순수한 형태로 표현했다. 철학적이면서도 난해해 이해하기 어려운 우를루프에 대해 장 뒤뷔페는 1972년 10월 24일 연설문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우를루프는 프랑스어로 환상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대상이나 인물을 연상시킬 뿐 아니라 비극적으로 소란스럽고 위협적인 어떤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 세계의 진정한 물질성에 대한 의심을 갖게 만듭니다. 사실 이 세계는 우리 사고의 창조물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 주요 작품을 통해 본 장 뒤뷔페의 그림

□ 금반지, 캔버스에 유채, 1958. 
  ‘앵포르멜(비정형)의 선구자’로 불리는 장 뒤뷔페는 1950년대에 주변의 물질이 만들어내는 재질감을 온전히 드러내고자 했다. 이 당시의 그는 여러 그림을 잘라서 겹쳐 붙이는 ‘아상블라주’ 기법을 많이 활용했다. ‘금반지’는 거친 붓질, 튀기기, 비정형적인 선 등으로 기이한 이미지의 인물을 형상화해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 집 지키는 개Ⅱ, 폴리우레탄 수지에 에폭시페인트, 1969 .
1962년부터 1974년까지 뒤뷔페는 우를루프 연작에 몰두한다. 이 시기에는 모든 사물이 ‘우를루프’의 세계로 들어온다. ‘집 지키는 개Ⅱ’는 발포 폴리스티렌이라는 재료를 이용한 3차원적 조형물이다. 뒤뷔페는 “자신이 보지는 못하지만 보기를 열망하는 것을 그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 미르 G3(주룽), 1983, 종이에 아크릴, 캔버스에 부착.
말년의 뒤뷔페는 “실재는 우리가 원하는 수만큼 존재가능하며 각자가 자신의 실재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미르 연작들은 자극적인 색채, 무질서한 선들로 가득 차 있다. 언어도, 개념도, 의미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이미지로 인해 많은 이들이 이 작품 속에서 작가의 허무주의를 읽었다. 이후 ‘무공간’ 연작이 이어졌는데 그 작품들은 더 어둡고 검다

박희숙 / 화가·시인


 필자는 성신여대 조형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7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저서로는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클림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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