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10-21 11:07 (수)
건물과 공간의 빼어난 어울림
건물과 공간의 빼어난 어울림
  •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 승인 2006.12.07 12: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의 美 -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26) 하회 병산서원

 

하회 병산서원은 뛰어난 조형미를 갖춘 건축물은 없지만 건물과 건물, 자연과 건물 사이에 빚어지는 텅 빈 공간들의 어우러짐으로 인해 독특한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있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병산서원의 소박한 건축물들이 "뛰어난 집합적 관계를 성취했다"고 지적하면서 "명품이 없는 명작, 건물이 없는 건축"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 병산서원은 낯선 존재였다. 그저 시골 한 구석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옛 집의 하나로 여겨졌을 뿐이다. 이른바 신미존치(辛未存置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서 제외되어 살아남은) 서원 가운데 하나였고, 전시 재상으로 임진란을 극복해낸 류성룡 (柳成龍 1542 ~1607)의 기념서원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그나마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문화재로 지정한 때가 1978년으로, 같은 고장의 도산서원이 1963년에 문화재로 지정된 것에 비해 한참 뒤늦은 때였다.

그러나 1990년경부터 일군의 건축가들은 병산서원을 가장 뛰어난 한국의 건축유산으로 꼽기 시작하여 지금은 일반인들에게도 꽤 알려진 서원건축이 되었다. 현재 사적 260호로 지정된 병산서원에는 뛰어난 문화재도, 명품이라 부를 건축물도 없다. 서원의 핵심건물이라 할 수 있는 강당(입교당) 건물은 1930년대 다시 지어져 연대기적 가치도 낮고, 배흘림 기둥을 가진 부석사 무량수전 같이 특별한 조형미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건축으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때 620여 개소에 달했던 서원은 1864년 서원철폐령으로 전국에 47개만이 남게 되었고, 그 중에는 제사만 지냈던 사우들이 포함되어 정통 서원은 불과 27개소였다. 그나마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원형이 훼손되어, 조선시대의 온전한 모습이 보존된 곳은 10여개 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현존 서원들은 예학에 근거한 건축적 규범을 따르면서도 서로 다른 개성들을 가진 창조적 건축들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할까? 230여개 소에 이르는 관학인 현존 향교들은 4~5개 건축형식으로 환원될 정도로 획일화된 양상을 보이지만, 10여개 현존 서원건축들은 다양하면서도 뛰어난 건축적 가치들을 전하고 있다.

병산서원은 교육부분과 제사부분, 여타의 작업부분으로 이루어졌다. 교육부분은 강의동인 강당,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도서관이라 할 장서각으로 구성된다. 제사부분에는 사당과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전사청이 있다. 서원 유생들의 음식과 잡일을 수발하는 서원노들의 작업건물이 동편에 부속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병산서원을 병산서원답게 만들고 있는 누각인 만대루가 서원의 입구에 자리 잡았다. 건물의 종류와 기능들은 여타 서원들과 다를 바 없는 건축적 규범을 따르고 있다.

집합적 건축의 아름다움

이들 건물들은 규모가 크지도 않고 정교하거나 화려하지 않으며, 다른 서원의 건물들과 비교해도 결코 우수하다고 할 수 없다. 병산서원의 어떤 건물도 그 흔한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했다는 사실만 봐도 그 실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산서원은 현존 서원건축을 대표할 뿐 아니라, 모든 건축을 통 틀어도 조선시대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곤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뛰어난 건축이란 곧 뛰어난 건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옥시모론적 언술을 이해해야만 병산서원, 나아가 한국건축의 본질과 가치에 접근할 수 있다.

병산서원의 가치는 그 여러 동의 건물들이 얽혀지면서 만들어 내는 관계에 있다. 강당과 동서재가 만들어 내는 텅 빈 마당, 강당마당과 사당 앞마당의 절묘한 이어짐, 누각 밑을 통과하면서 나타나는 신선한 광경 등이 그것들이다. 다시 말해서 건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물과 건물 사이에 형성된 비어있는 외부공간들에 참된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마치 사군자 그림의 진면목이 유려한 선으로 그려진 난초의 잎 모양보다, 그 선들로 분할되는 흰 여백에 주목할 때 문인화의 참된 가치를 읽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건축은 건물이 아니라 건물들이 형성하는 관계이며, 그러한 건축을 집합적 건축이라 부르기로 하자.

물론 개개 건물의 형태적 우수함도 중요하지만, 특정 건물이 지나치게 두드러진다면 오히려 다른 건물과의 관계성을 약화시킬 수가 있다. 병산서원의 소박한 건물들은 뛰어난 집합적 관계를 이루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러한 집합적 건축의 성취는 비단 병산서원만의 자산은 아니다. 도산서원이나 옥산서원, 통도사나 해인사, 창덕궁이나 종묘 등 한국의 명작들이 모두 도달한 보편적 성취이다.

안동지방의 동쪽에 자리 잡은 이황의 기념서원인 도산서원은 여러모로 병산서원와 비교된다. 류성룡은 이황의 수제자이며 정치적 계승자이기도 하다. 두 서원건축은 일단 형식적 유사점이 많다. 서원의 두 중심인 강당과 사당의 관계는 서원건축의 형식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대부분의 서원들은 사당이 강당의 바로 뒤편에 자리 잡아 매우 엄격한 중심축을 형성한다.

그러나 유독 이 두 서원만은 사당이 강당의 동쪽 뒤편으로 치우쳐 앉아있다. 피상적으로 본다면 비대칭적이고 예학적인 서원의 형식으로 어색할 것 같지만, 사당 앞의 독립된 제사마당이 강당 앞 교육용 마당과 유기적으로 연속되는 자연스러운 구성이다. 초기 성리학자들의 융통성이랄까, 또는 실용적인 여유랄까 하는 것이 두 서원에 스며있다.

그러나 도산서원의 건물들은 강당과 사당이 보물로 지정될 정도로 정교하고 견고하게 지어졌다. 투박할 정도로 질박한 병산서원의 건물들과는 다른 격식이며, 아마도 퇴계에 대한 범국가적 차원의 지원의 결과가 아닐까? 또한 경관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두 서원 모두 강변 경승지에 자리 잡았지만, 도산서원의 내부에서는 강변 풍경이나 멀리 전개되는 들과 산의 모습이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오붓하게 감싸여진 지형 속에서 오로지 학문에만 열중하는 퇴계와 제자들의 면학 분위기가 돋보인다.

자연을 수평 분할하는 누각기둥

그러나 병산서원은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집합적 관계를 이룬다. 강당의 대청에 앉아 밖을 내다보자. 양 옆의 동재와 서재는 안마당을 감싸면서 마당의 공간적 방향성을 앞으로 몰아간다. 그 앞에는 기둥과 지붕만 있는 이상한 건물 -만대루라는 기다란 누각이 걸쳐진다. 만대루는 앞에 펼쳐지는 자연의 풍경을 상하 3단으로 분할한다.  지붕 위로는 멀리 앞산의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그래서 앞산의 이름이 병산이다- 누각 아래층으로는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입구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사이, 누각 마루와 지붕 사이로는 조용히 흐르는 낙동강이 가득히 담겨진다. 누각은 7칸의 긴 건물이다. 누각의 기둥들은 다시 낙동강을 수평적으로 분할하여 7폭의 병풍이 된다.

이 광경은 우연히 얻어진 장면이 아니다. 강당 대청 가운데는 서원의 최고 어른인 원장이 앉는 자리이다. 원장과 교수진들은 이 자리에 앉아 학생들을 바라본다. 자연스레 교수진의 시선은 만대루를 향하게 되고, 텅 빈 누각을 통해 낙동강과 앞 병산의 풍경을 보게 된다. 반면 학생들은 이런 경치를 대할 각도가 없다. 늘 학생들은 원장이 계시는 입교당을 쳐다봐야지 바깥의 경치를 보게 되면 한 눈 파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성리학적 세계는 군자-소인, 스승-제자, 장-유의 수직적 위계로 이루어진 종법(從法)적 질서의 세계이다. 제자들을 스승을 바라보며, 스승들은 그들보다 더 우위에 있는 자연을 바라본다. 늘 자신들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존재들을 향하는 시각 구조이다.

만대루는 건물 자체로서는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 누각은 감상용 건물이 아니다. 그러나 만대루는 건물과 자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대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맺어주는 매개체이다. 작품의 액자와 같은 건물 -액자는 단순하고 간단할수록 좋다. 액자가 크고 화려하면 그 안에 담기는 작품이 죽는다. 카메라의 파인더와 같은 건물. 인간을 둘러싼 자연 환경은 무한하지만, 만대루를 통해 선택된 자연은 의미가 부여된 특별한 풍경이 된다.

건축은 공간을 연출하는 예술이라 한다. 공간은 눈에 보이는 실체가 아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 기둥과 기둥 사이에 존재하는 여백과 같은 존재다. 그 비어있는 공간 속에서 인간의 생활이 가능하고, 그 공간을 통해 다른 풍경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작고 초라한 정자이지만, 그 위에 오르면 비어있는 벽을 통해 온 우주가 담겨진다.” 소식이 쓴 함허정기(涵虛亭記)와 같이 비어있기 때문에 채울 수 있다는 역설을 병산서원은 더없이 친절하게 이해시켜 준다. 이런 점에서 병산서원은 건축가들의 눈과 글로써 다시 태어난 작품이 명품이 없는 명작, 건물이 없는 건축이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건축과

 


필자는 서울대에서 논문 ‘조선시대 사찰건축의 전각구성과 배치형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한국의 건축’, ‘서원건축’,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불교건축’, ‘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 1, 2, 3’ 등이 있다. 문화재청과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위원이자, 나눔문화연구소 이사장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